분류 전체보기 (406) 썸네일형 리스트형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여섯 번째) 2022-04-06 14:32:16 백인제 가옥(白麟濟 家屋)의 주인들 종로구 북촌로 7길 16(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지 907평에 건평은 110평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이다. 그러나 100년 동안 한결같이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 가옥의 주인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으며, 그 주인들의 삶 또한 다양하다. 나는 그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 꽃 피는 계절 내 사진들 2022-04-09 20:53:13 33인의 여성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1) 2022-05-06 15:19:47 1. 차미리사(車美理士 1879~1955) 차미리사 선생의 본관은 연안(延安). 경기도 고양 출신. 미리사는 세례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남편이 죽은 뒤 기독교에 입교, 미국인 여선교사를 통하여 선진국의 실정 및 여성의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01년 여선교사의 알선으로 중국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되어 인천에서 떠나는 중국 화물선에 몸을 숨겨 상하이[上海]로 출국한 뒤 쑤저우[蘇州]에 있는 버지니아 여학교에 입학하였다. 1905년에 졸업하고 양주삼(梁柱三)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기울어가는 국운을 만회하기 위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였다. 그 뒤 캔자스(Kansas) 주의 더 스칼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 33인의 여성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 (2) 2022-05-06 17:13:44 6. 강주룡(姜周龍 1901 ~ 1931) 1901년경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에서 태어났다. 집안 배경이나 유년 시절 성장 및 수학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파악할 수 없다. 남편은 최전빈(崔全斌)이며, 만주 퉁화현(通化縣)에서 결혼하였다. 최전빈은 백광운(白狂雲)이라고도 불린 채찬(蔡燦)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병사하였다. 24세에 남편을 잃은 후 60대의 노부모, 15세의 어린 동생을 이끌고 귀국하여 평양에 정착하였다. 평양에서 생계를 위해 고무 공장에 취직하여 직공 생활을 하였다. 남편의 항일 투쟁 활동을 보면서 누구보다 항일 의식이 강하였는데, 1930년 평원 고무공장에서 종사하던 1,800여 명의 직공을 선동하여 한인 노동자의 권익을 외치며 대대적인 파업.. 33인의 여성 독립 운동가 에게 바치다. (3) 2022-05-08 19:31:47 11. 이화림(李華林 1905~1999) 성장기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춘실(李春實)로 숭현소학교에서 유아 교육을 공부하였고 1919년 14세의 나이로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항일운동에 열심이었던 오빠들이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전단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평양의 학생 조직인 역사문학연구회에 참가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청진의 유아원에 근무하면서 1927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오빠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무장 항일 투쟁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 이화림도 25살이던 1930년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할 길을 찾다가 김두봉의 소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 33인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게 바치다. (4) 2022-05-10 17:17:55 16. 유관순(1902 ~ 1920) 유관순(柳寬順, 1902~1920)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일제 강점기에 3.1 운동으로 시작된 만세 운동을 하다 일본 형사들에게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 옥사했다. 3.1 운동 1916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인 시애리시 부인(사부인)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장학생으로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월 1일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 33인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게 바치다. (5) 2022-05-11 06:56:19 21. 김일엽(1896 ~ 1971) (승려) 출생과 유년기 일엽은 1896년 6월 9일 평안북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기독교 목사인 아버지 김용겸(金用兼)과 어머니 이말대(李馬大)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주(元周)였다. 5대 독자였던 아버지 김용겸이 결혼한 지 6년 만에 얻은 자식이 김일엽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이말대는 17세 때 집안의 강요로 초혼에 상처한 22세 홀아비 김용겸과 억지 결혼을 하였지만 두 사람은 곧 사이좋은 부부가 되었다. 그가 태어난 뒤로도 동생이 4명이 태어났으나 모두 요절하였다. 아버지 김용겸은 개신교 목회자였다. 아버지 김용겸은 향교의 향장을 지낸 성리학자였으나 뒤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목사가 되었다. 개화인사인 아버지 덕에.. 33인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게 바치다. (6) 2022-05-11 12:39:50 26. 오광심(吳光心1910~1976)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 남만주에서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난징[南京]으로 이주하여 만주지역과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1935년에는 민족혁명당 부녀부에서 활약하였고, 1936년에는 난징의 대한애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창립될 때, 여군으로 김정숙(金貞淑)·지복영(池復榮)·조순옥(趙順玉)·신순호(申順浩)·민영주(閔泳珠)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42년 2월 임시정부 군무부 제6징모분처의 간부로서 주임위원 김학규·김광산(金光山)·서파(徐波)·박찬열(朴燦烈)·지복영·오희영(吳姬英) 등과 함께 안후이[安徽]·허베이[河北]·산둥[山東]지역에서 초모·선전·파괴 등의 항일활..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