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06) 썸네일형 리스트형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 정독도서관 4) 2022-04-02 20:28:58 갑신정변의 풍운아 송재 서재필(松齋 徐載弼) 교육박물관 뒤편에서 김옥균의 집터 표석을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지만, 김옥균의 집과 인접해 있었다는 서재필의 집터 표석은 찾지 못했다. 다만 1899년(광무 3년) 4월 4일 고종황제의 칙령 제11호로 중학교 관제를 선포하여 1년 반에 걸친 준비 끝에 1900년 10월 3일 우리나라 최초로 4년 제인 관립중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관립중학교 시절 단층 짜리 학교 건물은 서양식으로 지은 서재필의 빈 집을 고쳐 쓴 것이라는 기록을 참고한다면 옛 경기고등학교의 운동장 어디쯤에 그가 살던 집이 있었겠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1880년대 초 개화파가 쓰기 시작한 '개화(開化)'라는 말은 유교 경전인 계사(繫辭)에 나오는 '개물성무 화민..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정독도서관 1) 2022-04-01 21:54:39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 뒤뜰에서 박규수, 홍영식, 이상재, 최린 등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址) 터에서 주시경 선생을 그리고 윤보선 가(尹潽善 家)에서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 윤보선까지 만나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들을 되짚어보면서 발길을 돌려 다시 찾아간 곳은 종로구 북촌로 5길 48 (화동)에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옛 경기고등학교의 건물을 1977년 부터 도서관과 서울시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본래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과 서재필 등의 집터였고, 을사 5적 박제순의 집터도 있었으며, 이웃하여 김홍집의 집도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 훨씬 이전에는 집현전 학사였으며,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의 집터도 있었다는 표석이 입구에 있는 것을 ..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 정독도서관 2) 2022-04-01 22:44:33 불운한 혁명가 고균 김옥균(古筠 金玉均) 고균 김옥균(古筠 金玉均 1851~1894)은 충남 공주 정안의 안동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병태(金炳台)는 시골의 양반 후예로 겨우 생활을 꾸려나가는 처지였다. 김옥균의 가계는 김상용(金尙容)을 중시조로 꼽는다. 김상용은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했고, 우의정으로 있을 적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김상용의 아우 김상헌(金尙憲)은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청나라와 싸우기를 주장한 척화파의 거두였다. 김상용의 아들 김광현(金光炫)은 이조참의를 지냈지만 그 후예는 겨우 양반의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충청도 일대에서 살았다. 이와 달리 김상헌의 후예는 문벌세도정치를 주도하여 서울에서 큰 세력을 잡고 흔들었다..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정독도서관 3) 2022-04-01 23:38:21 조선의 운명과 함께한 총리대신 김홍집 김홍집의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굉집(宏集), 자는 경능(敬能), 호는 도원(道園)이다. 숙종의 장인인 김주신(金柱臣)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김영작(金永爵), 어머니는 성혼(成渾)의 자손이다. 한마디로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애국지사 이시영(愛國志士 李始榮)의 장인이다. 1867년(고종 4) 경과정시(慶科庭試)에 급제. 1868년(고종 5) 승정원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에 임명.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체결 (불평등 조약으로 일본의 침략 의도 노골화-조약 내용 개정을 위한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 1880년(고종 17)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 당시 예조 참의였던 김홍집은 58명의 수행원과 함께 ..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정독도서관 5) 2022-04-02 22:15:41 경술국적 박제순(庚戌國賊 朴齊純) 박제순(朴齊純)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1858년 12월 7일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반남. 호는 평재(平齋). 아버지는 참정(參政) 홍수(洪壽)이다. 1883년(고종 2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주사, 천진주차종사관(天津駐箚從事官)·홍문관부교리, 사헌부장령, 동부승지 등을 거쳐, 1886년 주차천진독리통상사무(駐箚天津督理通商事務)가 되었다. 이듬해 귀국해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그 뒤 호조참의, 형조참판, 예조참판, 한성부윤 등을 지냈다. 호조참판에 재임하던 1893년 동학 교도들이 보은집회를 열자, 위안스카이[袁世凱]와 청나라 군사를 파병하는 문제를 의논했다.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에는 충청도 ..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세 번째 - 정독도서관 6) 2022-04-03 00:47:35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호머 베절릴 헐버트 1886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헐버트는 1900년 10월 3일, 우리나라 최초로 개교한 관립중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헐벗 또는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 허할보(許轄甫)였다.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미국 버몬트 주 미들베리 대학교 총장이었던 ‘칼빈 헐버트’ 목사였다. 어머니는 다트머스 대학교 창립자 엘리..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네 번째) 2022-04-03 10:59:49 청백리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 집터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급진적 개혁가 김옥균과 서재필, 그리고 온건주의 개혁주의자 김홍집과 매국노 박제순도 만나보았고,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과 한글을 더 사랑했던 미국인 헐버트도 만났다. 다시 황희와 함께 세종시대를 꽃피운 청백리 명재상이었던 고불 맹사성을 만나기 위해 그의 옛 집터가 있는 종로구 북촌로 11길 76을 찾아 북촌 한옥마을을 지나 '동양문화 박물관'이라는 카페를 찾아간다. 맹사성(1359~1438)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성지(誠之), 호는 동포(東浦)·고불(古佛). 온양 출신. 아버지는.. 북촌에서 만난 사람들(다섯 번째) 2022-04-04 22:25:23 고불 맹사성 집터를 둘러보고, 다시 큰길로 나와 종로구 북촌로 39(종로구 가회동 170-4)의 '손병희 선생 집터'의 표지석을 찾았다. 길 가에 세워진 표지석 뒤에 '북촌 박물관' 간판이 있는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선생은 1861년 4월 8일 충북 청주군 북이면(北二面) 대주리(大舟里, 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에서 아버지 손두흥(孫斗興)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상현(相鉉), 호는 소소(笑笑)이다. 초명은 응구(應九), 개명은 규동(奎東), 천도교에서 사용하는 도호(道號)는 의암(義菴), 이명은 이상헌(李祥憲)이다. 동생 손병흠(孫秉欽)도 동학에 입도하여 ..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