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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의 世態 詩 (哀絶陽)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自恨生兒遭窘厄(..
안동 임청각(臨淸閣) 석주 이상용선생 생가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입니다. 종손인 석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기지를 세워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서양의 정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나라가 망하자 석주는 조상의 위패를 없애고 노비를 해산시켜 근대사회로 길을 열고 독립전쟁만이 나라를 되찾을 길임을 밝히고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세우려고 나섰다. 임청각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빼어나고 장엄하다. 경학사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의 안정을 이루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만주에서 자금이 떨어져 하루를 견디기 힘들자 석주는 임청각을 팔기로 했다. 몇 차례 매도..
도덕경(道德經) 중국 도가 철학의 시조인 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으로, [老子] 또는 [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총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德經]이라고 한다. 老子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諸子百家의 시조 격인 인물로, 당대 최초로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인물이다. 대표 저서로는 [道德經]이 있으며, 이 때문에 도가의 창시자로 불린다. 도교에서는 신격 화 하여 太上老君이라고 부른다. 그의 사상은 ‘백성들을 시켜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無爲自然’과, ‘권력과 재산을 가지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지 말라’는 ‘功遂身退(공수신퇴)’로 요약되는데, 이는 [老子道德經]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쓴..
死六臣墓 사육신묘(死六臣墓)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묘지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朴彭年 · 兪應孚 · 李塏 · 成三問의 묘만 있었고, 河緯地와 柳誠源의 묘는 없었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년)에 민절서원을 세웠고, 정조 6년(1782년)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전해오다가,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들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영혼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3,240평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문, 비각(碑閣)을 새로 지어 충효사..
영화 [오디세이아] 방랑의 시작과 귀향의 염원[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험난한 여행을 그린 서사시 이다. [일리아드]가 전쟁의 비극과 영웅의 분노를 다루었다면, [오디세이아]는 모험, 인내, 지혜,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한 귀향의 서사시 이다.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도 여러 신들의 노여움과 자연의 역경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표류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서사시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고향 이타카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며 수많은 구혼자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무기력하게 왕궁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상황이다. 둘째, 오디..
인천 근대사의 지표 월미도
20세기 - 대한민국의 역사와 직결되는 제물포의 역사 사진.
스위스와 이탈리아 여행 사진(5) 보울리 옹-로망모티에 집에서 자동차로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역사가 오랜 교회가 있다고 다녀오자고 하여 비좁은 산길을 구불구불 달려 도착하니 낮으막한 산에 둘러싸인 옛 수도원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로망모티에의 첫 번째 수도원은 450년에 성 로맹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수도원은 7세기 초에 클로비스 2세의 봉신인 펠릭스 크람넬렌 경의 유언에 따라 세워졌으며, 928년에 부르고뉴의 루돌프 1세 왕의 여동생 아델라이드가 클뤼니에게 맡겨 세워졌고, 966년부터 981년 사이에 클뤼니와 확실히 연관되었으며, 992년부터 1030년 사이에 '클뤼니 2세' 때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들은 992년 이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1536년 종교개혁 이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