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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祭禮 2009년 9월 29일 중요 무형문화제 제 56호로 지정된 종묘제례(宗廟祭禮)는 사적 제 125호인 종묘, 국보 제 227호인 정전, 보물 제 821호인 영녕전,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제 제 1호인 종묘제례악과 더불어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우리가 영원히 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 문화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세우면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들에게, 또 백성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도록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대궐 동쪽에 종묘를 짓고 , 서쪽에는 사직단을 쌓았으며, 중앙에 원구단을 세웠다. 그리고 종묘와 사직은 곧 국가라는 인식을 할 만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지만, 국운의 쇠퇴함에 따라 그 전통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조선 시대의 종묘제례는 ..
社稷大祭 2009년 9월 30일 이 제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111호로 지정되어 있는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고 추수에 감사하는 제례이다. 즉 땅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드리는 제례이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것이 조선왕조시대에 전통 유교 예절로 정착한 것이다. 조선왕조시대는 '사직이 곧 국가'로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국가 행사였으나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사직대제도 폐지되었었고, 그 제단도 대부분 허물어 없애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거나 다른 시설물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 각 지역에 사직이라는 이름을 한 공원 또는 운동장이 1910년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땅과 곡식의 신에게 나라의 평안과 추수에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던 사직단이 있던 곳임을 ..
東洋畵 알고 보기 1. 연자노안도(蓮子蘆雁圖) 연자(蓮子)는 연 밥이다. 연꽃의 씨앗이다. 나눠진 방마다 열매들이 자리잡았다. 씨앗이 많기도 하다. 그 연자(蓮子)는 연자(連子)와 발음이 같다. 연달아 아들을 낳으라는 말이다. 연자를 연과(蓮果)라고도 한다. 이때의 연과(蓮果)는 연과(連科) 와 발음이 같다. 초시 진사 생원, 장원으로 줄줄이 과거에 급제하라는 말이다. 부귀영화 뿐이겠는가. 떡 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줄 여편네도 과거 급제에 달려있다. 그러니 죽으나 사나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속 뜻을 안고 있다. 여기에 갈대를 한줄기 그린다. 갈대 노(蘆)는 늙을 노(老)와 발음이 같다. 기러기 안(雁)은 편안할 안(安)과 발음이 같다. 결국 노안(蘆雁)은 노안(老安)이 된다.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 기러..
동작동에서의 단상 2010년 4월 16일-꽃 이야기-국립현충원의 벚꽃이 아직도 지지 않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지난 3월 26일 서해에서 침몰한 해군 함정 천안함의 참사가 온 국민들을 참담함속에 잠기게 하고 있다. 아직 그 침몰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20여일 만에야 38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8명의 젊은이들은 그 시신마저 찾지를 못하고 있다. 함수를 아직 인양하지 못하고 있으니 찾지 못한 시신들이 그곳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현충원의 벚꽃처럼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꽃들을 애도한다. 국립묘지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마치고, 갑자기 국립묘지를 다녀오고 싶어졌다.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데도 아직 한 번도 참배한 일이..
조선 초기 4대 사화는 왜 일어났을까? 2010년 6월 15일 무오사화 [戊午士禍] 1498년(연산군 4)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김일손·권오복·이목 등 사림파를 제거한 사건. 개요 사초(史草)가 계기가 되어 일어났기 때문에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한다. 배경 태종에서 세조대에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한 조선 봉건국가 체제는 성종대에 이르러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경국대전〉의 반포,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의 실시 등 법제가 완성되고, 유학이 일어나면서 유교문화가 융성했다. 1469년 왕위에 오른 성종은 세조 이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476년(성종 7) 친정을 시작하면서 신진 사림세력을 등용했는데, 이로부터 정치·경제·사상 등 여러 면에 걸쳐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갈등이 깊어갔다. 훈구세력은 예종대와 성종 ..
중국의 고대사에서 배워야 할 이야기들 2010년 7월 1일 하(夏) 나라와 은(殷) 나라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말희와 달기라는 희대(稀代)의 두 요녀 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서 사치(奢侈)와 주색(酒色)에 탐닉(眈溺)하다가 결국 폭군 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夏)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말희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을 베풀기로 했다.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난 말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조선 왕조실록은 어떻게 기록했을까? 2010년 7월 10일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사관의 차이점 조선왕조실록은 정치세력의 추이에 따라 그 내용이 수정, 보완되는 과정을 겪었다. 실록 중에서 수정본의 형태로 편찬된 것은 {선조실록}을 수정한 {선조수정실록}, 현종실록을 수정한 {현종개수실록}, {경종실록}을 수정한 {경종수정실록} 등 3종이 있다. 또한 {숙종실록}은 원책의 내용에''보궐정오(補闕正誤)''라 하여 이미 기록된 내용을 보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정본 실록은 모두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편찬된 것이 특징이다. 광해군대에 편찬된 {선조실록}은 북인(北人)이 편찬의 주체였으며, 인조대에 집권한 서인은 {선조실록} 중에서 불만스러운 내용의 일부를 고쳐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붕당정치가 치열하게 전개된 조선..
省墓 이야기 2010년 7월 16일 운중풍월 工曹判書 諱 重庚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서 며칠 전 參議公 門中 어른들 몇 분의 모임에 참석하여 朝鮮王朝 519년을 통해 唯一無二하게 直系로 連이어 五世六將을 輩出하신 나의 傍系 8代祖가 되시는 工曹判書 諱 重庚 할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할아버님의 묘소가 경기도 동두천시 동안동(창말) 亥坐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일가 어르신들과 함께 성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묘소는 駐韓 美軍이 占有한 地域 內에 있어서 後孫들이라도 마음대로 出入을 할 수가 없고, 미리 출입을 하겠다고 通報를 하고 점유자들(주한 미군)이 身分 確認節次를 거쳐 關係되는 勤務者의 引率 下에 출입이 可能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신 起文 淸權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