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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항사(陋巷詞)

운중풍월 2023. 2. 27. 11:10

2021년 8월 28일

누항사(陋巷詞)

(1611년에 박인로(朴仁老1561~1642)가 지은 77행의 가사.)

 

노계집 蘆溪集에 실려 있는 이 가사는 임진왜란 후, 그의 나이 51세에 경기도 용진에 은거할 때, 친구 이덕형이 찾아와 사는 형편을 묻자 이에 화답하는 뜻으로 지은 가사다. 가난에 시달리지만 자연을 벗 삼아 충성·효도·우애·신의를 노래하고 안빈낙도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에는 임진왜란 이후 작가가 당면한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사대부로서의 지위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농민으로서 살아갈 여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작가의 현실이 묘사되어 있어 양쪽에서 소외되어 있는 괴로움이 절실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

현대어로 바꾼 전문을 여기 옮겨본다.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둡기로는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겨 두고 누추한 깊은 곳에 초가를 지어 놓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세 홉 밥 다섯 홉 죽을 만드는데 연기가 많기도 많구나.

덜 데운 숭늉으로 고픈 배를 속일 뿐이로다.

생활이 이렇게 구차하다고 한들 대장부의 뜻을 바꿀 것인가?

안빈낙도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을 적을망정 품고 있어서,

옳은 일을 좇아 살려하니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을에도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주머니가 비었는데 술병에 담겨 있으랴.

가난한 인생이 천지간에 나뿐이로다.

배고픔과 추위가 몸을 괴롭힌다고 한들 일편단심을 잊을 것인가?

의에 분발하여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죽어서 그만두겠노라고 마음먹어

전대와 망태에 한 줌 한 줌 모아 넣고,

전란 5년 동안에 용감하게 죽고 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 몇 백 전쟁을 치렀던가.

 

내 몸이 겨를이 있어서 집안을 돌보겠는가?

늙은 종은 종과 주인의 분수를 잊어버렸는데,

봄이 왔다고 나에게 일러 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밭 가는 일은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지만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몸소 농사를 짓는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줄을 알겠도다.

잡초 많은 들에서 밭 갈던 늙은이와 밭두둑 위에서

밭 갈던 늙은이를 천하다고 할 사람이 없지마는,

아무리 갈려고 한들 어느 소로 갈겠는가?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이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갠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근원 없이 흐르는 물을 반쯤 대어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 없는 저녁에

허둥지둥 달려가서 굳게 닫는 문 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 거기 누구신가?' 묻기에 '염치없는 저올시다'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무슨 일로 와 계신고?‘

'해마다 이러기가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궁핍한 집에서 걱정 많아 왔소이다.'

'공짜로나 값을 치거나 간에 빌려줌 직도 하다마는,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에 사는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에 구워내고,

갓 익은 좋은 술을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은혜를 어떻게 갚지 않겠는가?

내일 주마하고 굳게 약속을 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하기가 어렵구료.'

사실이 그렇다면 설마 어쩌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물러나오니

풍채 보잘것없는 내 모습에 개가 짖을 뿐이로다.

누추한 집에 들어간들 잠이 와서 누워 있겠는가?

북쪽 창에 기대앉아 새벽을 기다리니

무정한 오디새는 나의 한을 북돋우는구나.

아침이 끝날 때까지 서글퍼하며 먼 들을 바라보니,

즐거워 부르는 농부들의 노래도 흥 없이 들리는구나.

세상 물정 모르는 한숨은 그칠 줄을 모른다.

아까운 저 쟁기는 쟁기의 날도 좋구나.

가시 엉킨 묵은 밭도 쉽게 갈 수 있으련만,

빈 집 벽 가운데에 쓸데없이 걸려 있구나!

봄갈이도 거의 다 지났다. 팽개쳐 던져 버리자.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꿈을 꾼 지도 오래 더니,

먹고사는 것이 누가 되어, 아아 잊었도다.

저 물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많기도 많구나.

교양 있는 선비들 다, 낚싯대 하나 빌리자꾸나.

갈대꽃 깊은 곳에서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의 벗이 되어

임자가 없는 자연 속에서 근심 없이 늙으리라.

욕심 없는 갈매기야, 오라고 하며 말라고 하랴?

다툴 이가 없는 것은 다만 이뿐인가 생각하노라.

 

보잘것없는 이 몸이 무슨 뜻과 취향이 있으랴마는,

두어 이랑의 밭과 논을 다 묵혀 던져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겠노라.

내 가난과 천함을 싫게 여겨 손을 내젓는다고 물러가겠으며,

남의 부귀를 부럽게 여겨 손짓을 한다고 오겠는가?

인간의 어느 일이 운명과 상관없이 생겼으랴?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는 것을 어렵다고 하지마는

내 삶이 이렇다 해서 서러운 뜻은 없노라.

가난한 생활이지만, 이것도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노라.

평생의 한 뜻이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는 없노라.

태평천하에 충효를 일삼아, 형제간에 화목하고

친구가 신의 있게 사귀는 것을 그르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밖의 나머지 일이야 타고난 대로 살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