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
1991년 5월12일
1991년 3월 12일 나는 어머니를 잃게 되었고 또 고향을 잃게 될 슬픔에 고향을 찾아 서글픈 마음을 메모했었다. 故鄕은 내게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永遠한 내 마음의 故鄕이다.
능금 꽃 흰 떨기에 달빛 부서지는 밤
허물어진 돌담 위 옛 꿈 서려 서러운데
寂寞江山 텅빈 고향에 子規 너만 남았느냐
푸르던 날 여린 꿈이 미소로 손짓함에
人間의 當然之事 잠시 뒤로 미룬 것이
때 늦은 後悔는 哀痛으로 저려오다.
太靑은 그 자리에 예 그대로 푸르르고
藏巖山 흐른 물은 앞내에 넘치건만
그리운 이 정겹던 터전 꿈에서나 찾으리.
내가 늘 남보다 幸福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다른 사람보다 크게 成功을 했다거나, 남들이 부러워 할만큼 좋은 職場을 가져서도 아니고, 또 돈을 많이 모아서 좋은 곳에 잘 쓸 수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언제든지 時間을 내서 찾아갈 수 있는 故鄕이 있고, 또 그곳엔 언제나 健康하신 모습으로 늘 반겨주시는 父母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누구인들 고향에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사람들이 없을까마는 그들이 다 나처럼 그것을 幸福의 條件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느 봄 날이던가 世上살이에 지치고 힘들어 갑자기 故鄕을 찾았을 때 사립문은 물론 방문까지도 열린 채 두분 모두 出他하신 집에는 花壇에 갖가지 꽃이 예쁘게 피어있고 꿀벌소리 잉잉거리는 집에는 햇볕만 가득할 때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혼자서 마루에 누어 幸福을 만끽하던 때가 있었다.
어린時節의 親舊들은 다 都市로 떠나버린 故鄕이지만, 그래도 수없이 오르내리던 太靑山, 藏巖山이 변함없이 옛 그대로 나를 반겨주었고, 봄이면 풀 냄새 향기롭던 들길과 여름 밤 풀벌레소리 요란하던 팽나무거리의 개울에서 멱감기 할 때는 그 총총한 하늘의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만 같던 추억과,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들판을 자랑하던 가을엔 사이다 빈 병 들고 메뚜기 잡으러 논둑 길을 누비던 일, 그리고 눈보라 속을 달리던 십리길 登 下校 길의 그 겨울의 追憶은 그 때의 親舊들을 내 回想 속에 불러 주곤 했었는데, 이젠 그 故鄕이 없어지게 되었고, 어머님 世上을 떠나 신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제 머지않아 고향 집은 헐리어 軍人들의 宿舍가 세워지게 될 것이고 논밭은 練兵場이 될 것이다. 光州에 있던 陸軍 敎育司令部가 하필 내 故鄕에 터를 잡아 옮기게 되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失鄕民이 될 運命이 되었고, 平生을 흙냄새와 순박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故鄕에서만 살아오신 어머님은 그 失鄕의 아픔을 이기시지 못하시고 각박한 都市에서 살아가실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의 病이 되어 갑자기 世上을 떠나셨다.
故鄕 周邊의 땅값은 약삭빠른 서울의 투기꾼들이 몇 배씩 올려 놓아서 報償 받은 金額으로는 도저히 代土를 잡을 수도 없어서 이제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져 都市로 나가거나 먼 他關에 移駐하여 살아야 한다는 消息을 접하신 後, 항상 故鄕에서 돌아가시어 先塋 下에 묻히시기를 그렇게도 所願하시더니 病席에 한번 누어 보시지도 못하신 채 할아버님 祭需를 準備하시다가 갑자기 가셨으니 子息들의 그 哀痛함을 어디에 견줄 수 있을까? 失鄕으로 나는 갑자기 幸福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평소에 잘 웃으며 살던 내게서 어머님의 別世와 失鄕은 웃음을 앗아가 버렸다. 어쩌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를 해도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 후 나는 꿈에서라도 뵙고 싶은 어머님을 꼭 한번 뵈었는데, 내가 고향에 가는데 어머님이 마을 앞 당산나무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꿈에서도 나는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하며 어머님께 어머님이 가 계신 곳은 어떻습디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님 대답은 여기보다 훨씬 좋더라고 하셨는데 그 후 아무리 꿈에 뵙고 싶어도 고향 집은 가끔 옛날 그대로 보이는데 어머님은 그 후 꿈에서도 전혀 뵈올 수가 없어 그리움이 더한다.
孝道는 못하고 살았을 망정 남들 다하는 칠순잔치도 못 해 드린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후회로 남는다.
不孝父母死後悔 라는 朱子의 가르침은 헛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故鄕은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永遠한 내 마음의 잃어버린 故鄕이 되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