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Geneva)에서의 日記
2012년 11월 15일(목요일)
미술역사박물관(Musee d'Art Histoire) 관람
며칠 전에 딸이 박광진 화백의 작품전시회 초대장을 주면서 시간을 내서 한 번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분이 어떤 화가인지 평소 몰랐던 분이었지만, 제네바에 와 있는 때 그분을 아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주소가 적힌 초대장을 들고 집을 나섰다. 모르는 주소를 찾아가려면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서 미술역사박물관부터 관람을 한 후 찾기로 했다.
미술역사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내 앞에 들어가던 사람이 안내원에게 인터넷으로 예약했다며 입장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왔다가, 그냥 나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나는 예약을 하지는 않았는데 들어갈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이쪽은 유료로 예약해야 되지만, 이쪽은 예약하지 않아도 입장이 가능한 무료라며 각각 다른 입구를 가리킨다.
예약하고 돈 내고 들어가는 전시실에는 귀중한 작품들만 있나 하는 생각에 무료 전시실을 관람하고 나와 알아보니, 유료인 쪽은 지금 미국의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이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찍은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피카소의 작품 전시회인 셈이다.
박광진 화백의 전시회 관람
미술역사박물관을 나와 박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를 찾느라고 제네바 구시가지를 한참 헤매다가 찾고 보니, 몇 번이나 지나친 생피에르 성당 옆 구시청 건물과 같은 주소였다. 어떤 주소를 찾아갈 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묻다간 낭패보기 일쑤라는 것을 체험했다. 친절한 척 잘 모르면서도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반드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거의 실수가 없다.
The Sound of Nature라는 주제로 Galerie Daniel Besseiche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박광진 화백은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58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여러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도 하였고, 1980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작품 발표를 한 분으로 소개되고 있는 한국의 현역 원로 화가이다.
미술역사박물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갤러리를 40분을 돌아다니다 찾아 들어가니 관람객은 없고, 예쁜 여자가 혼자서 갤러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화백을 잘 아느냐고 묻길래 그렇지는 않고, 여행 중인데 어떻게 초대장을 얻게 되어 왔다고 말하니 친절하게 안내한 후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물론 좋아하고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치켜세워주었다. 기념으로 당신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2012년 11월 23일(금요일)
몽쥬라 최고봉(1,700 M) 등정에 도전했지만...
지난번 창문으로 빤히 바라보이는 몽쥬라의 한 봉우리에 다녀온 후, 쥬라산맥 큰 줄기의 최고봉에도 올라보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그 후, 몽쥬라는 일주일이 넘도록 운무 속에 깊이 숨어서 내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를 않고 있었다. 초행에 운무 속에서 잘못 길을 잃고 헤맬까 저어 되어 날씨가 맑아지기만 기다리고 있기가 너무 답답하기도 하여서 그제는 1시간, 어제는 1시간 30분쯤, 길을 물으며 찾아가다가 돌아왔었다. 가시거리가 50 미터도 되지 않아서 그 길이 확실한 등산로인 것만 확인하고, 돌아선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정상을 얼마나 남겨놨었는지도 모른 체였다.
오늘은 집에서 편하게 쉴 생각으로 읽을거리를 찾아 책상에 앉았는데, 아침 11시쯤 정말 오랜만에 햇빛이 비친다. 산 쪽으로 눈을 돌리니 희미하게나마 산의 윤곽이 나타나 보인다. 이때다 싶어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배낭에 주섬주섬 몇 가지 먹을 것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버스가 페르네 볼테르에서 정확히 25분을 달리면 Gex 마을의 우체국 앞에 도착한다. Gex 시청사를 지나 산 쪽으로 경사 20도의 포장도로 가에 마을이 이어지고, 마을 끝에서도 포장도로는 계속되어 띄엄띄엄 있는 넓은 목장과 산속의 별장 같은 예쁜 집들을 보면서 30분을 더 걸으면, 우측 산 쪽으로 꾀나 넓은 포장되지 않은 등산로가 보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오늘은 정상의 선명한 모습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전륜구동 자동차라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은 15도 내지 20도의 경사를 유지하면서 작은 모퉁이를 돌고 돌아 ‘之’ 자를 만들며 올라간다. 어제 왔던 곳에서 산 정상을 바라보니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어제 안갯속에서도 상당히 멀리까지 왔었던 셈이다. 1시간을 더 올라온 길에 급경사가 없어서 숨차지는 않았어도 다리가 아프다. 연이어 3일을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리를 잡아 쉬면서 점심을 먹는다. 꾀나 늦은 점심이어서 별것 아닌 음식도 꿀맛이다. 하잘것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점심 후 한 시간쯤 더 올라가니 오후 3시 반, 1,172 미터 봉우리다. 봉우리라기보다 평평한 초원이다. 대피소 같은 집이 한채 있다. 사람이 있나 기웃거려 보니 문이 잠겨있다. 겨울철 폭설이 내릴 때를 위한 것인가?
정상이 바로 눈앞에 보이지만 길은 돌아 돌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얼마를 더 올라가야 할지 미지수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더 올라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마을에서도 5시만 되면 어두워지는데 산에서야 더 빨리 어두워질 것도 걱정이 되고, 더구나 지난번 일찍 오겠다고 나갔다가 어두워진 후에 돌아와 걱정시킨 전력도 있었고...
아내는 외국에서 모르는 산길에 혼자 나서는 것이 늘 불안한 모양이다. 돌아서서 남쪽을 보니 하얀 융프라우, 서쪽에는 샤모니 알프스의 몽블랑이다. 뒤에는 엎드리면 코가 닿을 것 같은 몽쥬라를 두고 앉아서 쉬면서 하산을 결정했다. 이제 눈감고도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니, 아쉽지만 다음엔 아침 일찍 출발하여 반드시 정상에 오를 것을 다짐하면서 내려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등산복 차림의 부부로 보이는 50대 남녀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산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었는데, 그들은 어느 길을 갔었을까 하고 몽쥬라를 갔다 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들은 올 때도 같은 버스를 타고 왔었다고 나를 기억하지만, 내가 차에서 내려 승강장의 시간표에서
돌아갈 버스시간을 확인하는 동안 먼저 다른 길로 올라갔던 모양이다.
그들의 구사하는 영어가 유창하여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역시 예상대로 미국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며 인사를 청하니 웃으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동양인은 동양인인데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ILO(세계노동기구)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자기 이름은 Claig이고, 미시간이 미국의 고향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추수감사절 휴무기간 동안 부부가 같이 산에 갔다 온다며 내게 퇴직했느냐고 묻길래 퇴직한 지 아주 오래되었다고 말하며 나이가 70이 되었다니 깜짝 놀란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산행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기에 나도 그러길 바란다며 따뜻하게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헤어졌다. 낯선 곳에서 미소로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