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4 19:55:11
先入見과 偏見
고등학교 동문 송년회에서 문예반 출신 선후배들이 함께 펴낸 문예지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마음속에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사는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동문의 글을 전철 안에서 읽다가 부끄럽게도 내가 그 꼴의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先入犬과 偏犬의 두 마리 개다. 바로 그날 송년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2호선 전철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늦은 시간이어서 승객이 붐비지 않는 한가한 전철 안, 비어있는 경로석에 앉아오는데,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청년이 내 곁 빈자리에 덥석 앉더니 대뜸 "신길역을 가려면 어떻게 가요?"라고 묻는 것이다. 다른 젊은이들은 경로석이 비어있어도 앉지를 않고 서서 오는데, 이 친구는 거리낌 없이 내 곁에 앉더니 묻는 말투부터가 약간 어리광스러운 말투여서 얼굴을 바로 쳐다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정신지체자인 듯했다. 나는 조그만 동정심이 발동되어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신도림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고 가다가 두 정거장째에서 내리라고 친절히 일러주었다. 그런데 거기 말고 다른 신길역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장애인인 그가 몰라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신길역은 그곳 한 군데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내 말이 맞으니 그렇게 하라고 당부하는데 자꾸 아니라고 한다.
나는 이 젊은이가 집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 내 말대로 하라고 제차 당부를 했다. 잠시 후 이 청년 휴대폰을 꺼내더니 지하철 종결자 애플리케이션에서 [신길온천역]이라는 4호선 오이도 종점 못 미쳐 있는 역을 보여주며 거기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탄 지하철은 사당역을 막 출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친구 사당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야 하는데, 전철은 이미 사당역을 지나쳐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신도림역까지 가서 1호선 병점행이나 천안행으로 갈아타고 가다가 금정역에서 4호선 오이도행 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고 알려주었더니, 그렇게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낙성대역에서 내려 사당역으로 되돌아가서 4호선을 갈아타겠다며 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인 나보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생각을 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가 내린 후, 나는 전철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내 부끄러운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물론 [신길역]과 [신길온천역]은 다르다. 내가 가르쳐준 [신길역] 가는 방법을 듣고도 자꾸 다른 [실길역]을 물었을 때, 나는 왜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지 않고 무조건 나의 생각만을 강요한 것은 그를 깊이 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사리판단을 못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단정해버린 나의 독선(사실 그때 나는 [신길온천역]이 전철 노선상에 있는지도 몰랐었다.)에 대해 몹시 부끄러웠다.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기가 내려야 할 목적지까지 잘 가기 위하여 어디에서 어떻게 차를 갈아타야 하는 것을 몰라서 묻는 것으로만 단정하고, 나름대로는 친절히 안내를 했는데, 사실 그는 자기의 목적지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비장애인인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서 내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그의 마음을 더 흡족하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는 그 동문이 말한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는 해학적인 표현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생각과 행동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끝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