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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

2021-07-16 08:28:35

 

노사(蘆沙 奇正鎭, 1798-1876) 선생은

화담(花潭 : 徐敬德, 1489-1546),

퇴계(退溪 : 李滉, 1501-1570),

율곡(栗谷 : 李珥 1536-1584),

녹문(鹿門, 壬聖周, 1711-1788),

한주(寒洲 : 李震相, 1818-1886) 선생 등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눈 하나가 먼 노사 선생은 8, 9세에 이미 경서와 사기에 통달했고, 유학에 전심하여 진사에 합격한 후 참봉에서 호조참판까지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고장 사람들은 흔히 '기 참판(奇參判)'으로 노사 선생을 불렀다. 幸州 奇氏로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나 長城에서 살았던 그의  大中, 호는 蘆沙, 시호는 文簡이다.

 

蘆沙 선생은 다음 일화로 더욱 유명하다조선에 인물이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중국에서 조선에 온 사신은 다음과 같은 시제(試題)를 조정에 보내 그 뜻을 물었다인물이 없으면 자신들이 조선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터 해오던 조선 조정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

직역을 하면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루 아래 석양은 붉네'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그렇다고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할 일이었다이리저리 궁리 끝에 장성에 있는 蘆沙 선생에게 사람을 보내 뜻을 물었다.

 

선생은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답을 써 보냈다.

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畵圓書方' '九月山中 春草綠'동해에 고기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도 없다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 '구월산중에 봄풀이 푸르다'(오경루나 구월산은 중국에 있는  의 고유명사) 로 직역되지만, 두 문장은 모두 해[]를 주제로 표현한 것이다. ( : )에서 뜨는 해, 낮의 길이가 짧은 것은 겨울 해를 말하고, ( : )에서 뜨는 해, 낮의 길이가 긴 해는 여름 해를 말한다.

 

그래서 용의 형태는 길어도 겨울해라 짧고 범의 형태는 짧아도 여름해이기에 길다그리고 그림으로 그리면 둥그나 글씨로 쓰면 모가 나니 즉 해[]를 말함이다선생은 이것을 ''자에서 머리와 꼬리를 뺀 ''자를 가리킨 다음 내리긋는 획''룰 다시 없애면 ''자가 됨을 말한 것이다 '오경루 아래 석양빛이 붉다.', 즉 '지는 해'의 대구로 '생동하는 봄'을 인용, '뜨는 해'로 표현하여 '구월산 중의 봄풀이 푸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시제의 답을 풀어 중국 사신을 놀라게 함은 물론 나라의 체모를 살리고, 나라님의 걱정을 명쾌하게 해결하여 주었다이리하여 '장안에 많고 많은 사람이 있어도 장성에 사는 한쪽 눈蘆沙 선생만 못하다'는 유명한 일화[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를 남길 정도로 주역에 통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