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5 16:03:12
年得家書(년득가서) 새해 집안 편지 받고서
歲去春來漫不知(세거춘래만부지) 해가 가고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다가
鳥聲日變此堪疑(조성일변차감의) 새소리 날로 달라 봄인가 싶네.
鄕愁値雨如藤蔓(향수치우여등만) 비 오면 고향생각 등 넝쿨 얽히고
瘦骨經寒似竹枝(수골경만사죽지) 겨울 지낸 병 진 이 몸 대나무처럼 여위었네.
厭與世看開戶晩(염여세간개호만) 세상일 보기 싫어 늦게야 방문 열고
知無客到捲衾遲(지무객도권금지) 오는 손 없는 줄 알아 이불 더디 갠다오.
兒曹也識鎖閒法(아조야식쇄한법) 무료함 없애는 법 아이들이 알았는지
鈔取醫書付一鴟(초취의서부일치) 의서에 따라 술 담가 한 단지 부쳐왔네.
千里傳書一小奴(천리전서일소노) 천리 길에 하인 아이 가져온 편지 받고
短檠茅店獨長吁(단경모점독장우) 초가 주만 등잔 아래 홀로 긴 한숨짓누나.
稚兒學圃能懲父(치아학포능징부) 어린 아들 학포(學游)는 아비 탓했건만
病婦緶衣尙愛夫(병부편의상애부) 병든 아내 옷 꿰매 보냈으니 아직 남편 사랑하네.
憶嗜遠投紅糯飯(억기원투홍나반) 내 식성 생각해 멀리 찰밥 싸서 보내고
救飢新賣鐵投壺(구기신매철투호) 굶주림 면하려고 철 투호 팔았다니
施裁答札無他語(시재답찰무타어) 답장 바로 쓰려하니 달리 할 말 없어
飭種壓桑數百株(칙종압상수백주) 뽕나무 수백 그루 심으라고 채근했지.
이 詩는 1802년 茶山(1762~1836)이 유배지를 장기에서 강진으로 옮긴 다음 해 정초에 집에서 보낸 약술과 편지를 받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썼던 시이다. 그때 다산에게는 學稼와 學圃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인 학포가 어린아이들을 놓아두고 천리 밖에 귀양 사는 아버지를 탓했건만, 아내는 남편 옷을 꿰매고 찰밥까지 챙겨 보내는 정성을 보였으니 눈물겨워했으리라. 뒤에 학가는 學淵으로 학포는 學游로 개명했다.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건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행각하라.
아무리 매서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1926~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