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조선왕릉 40기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의 무덤을 릉(陵)이라 했고, 왕의 생모, 왕세자, 빈의 무덤을 원(園), 그리고 그 외 왕실 가족의 무덤은 묘(墓)라고 했다. 500년 이상 이어온 한 왕조의 왕릉들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예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42기의 조선 왕릉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신의왕후 한 씨( (神懿王后 韓氏)의 능인 제릉(齊陵)과 정종(定宗)과 장안왕후 김 씨( 定安王后 金氏)의 후릉(厚陵)을 제외한 40기를 200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를 신청했고, 2009년 6월 27일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 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동재가 결정되었다.
등재 사유는 조선왕조의 예제(禮制)를 따르며 정치와 문화의 상징적 요소를 담고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건축미의 표본, 풍수지리학과 유교 사상이 반영된 독특한 무덤 양식을 갖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하고, 문화재청과 조선왕릉관리소의 체계적인 보호 정책과 능역 정비, 제례 복원 등 유지 관리를 꾸준히 이룸으로 지속적인 보존 관리가 이루어졌으며, 매년 정기적인 '능행제'나 '왕릉제례'와 같은 제사를 이어오는데 후손과 일반 대중이 참여함으로써 전통을 계승하는 문화적 전통의 지속성을 인정한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519년 동안 이어오면서 27명의 왕이 있었지만, 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은 왕릉에 포함되지 않았고, 반면 덕종(성종의 부친), 원종(인조의 부친), 진종(정조의 양부), 장조(정조의 친부), 문조(헌종의 부친) 등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 5기는 왕릉에 포함되었다. 조선왕릉은 서울 시내와 인접 지역 등 18곳에 흩어져 있는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왕릉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단종의 무덤)이다.
18곳에 분포되어 있는 왕릉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1, 동구릉에 9기 (健元陵, 顯陵 , 穆陵, 徽陵, 崇陵, 惠陵, 元陵, 綏陵, 景陵)
2. 서오릉에 5기 (敬陵, 昌陵, 明陵, 翼陵, 弘陵)
3. 서삼릉에 3기 (禧陵, 孝陵, 睿陵)
4. 파주 삼릉에 3기 (恭陵, 順陵, 永陵)
5. 헌인릉에 2기 (獻陵, 仁陵)
6. 선정릉에 2기 (宣陵, 靖陵)
7. 태강릉에 2기 (泰陵, 康陵)
8. 홍유릉에 2기 (洪陵, 裕陵)
9. 융건릉에 2기 (隆陵, 健陵)
10. 영녕릉에 2기 (英陵, 寧陵)
11. 莊陵. 12. 思陵. 13. 光陵. 14. 懿陵. 15. 貞陵. 16. 溫陵. 17. 章陵. 18. 長陵 등 총 18곳에 40기의 왕릉이 대부분 서울과 가까운 주변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齊陵과 厚陵 , 그리고 추존된 穆祖, 翼祖, 度祖, 桓祖의 6기의 능이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선왕릉은 풍수와 지형, 그리고 안장되는 순서 등에 따라 6가지의 형태를 갖고 있다.
* 단릉(單陵) - 왕 또는 왕비의 능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
* 쌍릉(雙陵) - 왕과 왕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능.
* 삼연릉(三連陵) - 왕과 두 명의 왕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능. 봉분이 세 개 있는 것을 제외하면 쌍릉과 똑같다.
헌종과 효현성황후 김 씨. 효정성황후 홍 씨가 같이 묻힌 경릉(景陵)이 유일하다.
* 합장릉(合葬陵) - 하나의 능에 왕과 왕비가 함께 안장되어 있는 능.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언덕에 각각 능침을 조성한 능.
대표적으로 세조와 정희왕후 윤 씨가 같이 묻힌 광릉이 있다.
*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 하나의 언덕 위에 왕과 왕비의 능이 위아래로 배치된 능.

18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 40기를 지역별로 능의 주인공과 능의 형태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동구릉(東九陵)

| 陵域 & 住所 | 陵 | 王과 王妃 | 陵 形態 | |||||
東九陵 |
健元陵 | 太祖 高皇帝 | 單陵 | |||||
| 顯陵 | 文宗과 顯德王后 權氏 | 同原異岡陵 | ||||||
| 穆陵 | 宣祖와 懿仁王后 朴氏, 仁穆王后 金氏 | 同原異岡陵 | ||||||
| 徽陵 | 仁祖妃 莊烈王后 趙氏 | 單陵 | ||||||
| 崇陵 | 顯宗과 明聖王后 金氏 | 雙陵 | ||||||
| 惠陵 | 景宗의 元妃 端懿王后 沈氏 | 單陵 | ||||||
| 元陵 | 英祖와 繼妃 貞純王后 金氏 | 雙陵 | ||||||
| 綏陵 | 追尊 文祖 翼皇帝와 神貞翼皇后 趙氏 | 合葬陵 | ||||||
| 景陵 | 憲宗 成皇帝와 孝顯成皇后 金氏, 孝定成皇后 洪氏 | 三連陵 | ||||||
| * 東九陵에는 총 九個의 陵에 17분의 王과 王妃가 묻혀있는 능역이다. | ||||||||
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 일대 면적 약 191 ha의 숲속에 조선의 왕과 왕비 17위의 유택이 조성되어 있는 사적 제 193호 지역이다.
이곳에는 왕 6명(태조, 문종, 선조, 현종, 영조, 헌종)과 추존왕 1명(문조), 왕후 10명(문종/현덕왕후, 선조/원비 의인왕후와 계비 인목왕후, 인조/계비 장렬왕후, 현종/명성왕후/ 경종/원비 단의왕후, 영조/계비 정순황후, 문조/신정왕후, 헌종/원비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로 모두 17위의 유택으로 조영되었고, 문조가 합장릉이므로 능침은 16개이다. 능침은 조성 형태에 따라 9기가 되었다. 능의 조영 형태는 단릉이 3기(건원릉, 휘릉, 혜릉), 쌍릉이 2기(숭릉, 원릉), 동원이강릉이 1기(현릉), 동원삼강릉이 1기(목릉), 삼연릉이 1기(경릉), 합장릉이 1기(수릉)이다.
"동구릉"이란 도성 동쪽에 있는 9개의 능을 지칭한다. 동구릉이라 부른 것은 추존왕 익종의 능인 수릉이 아홉 번째로 조성되던 1855년 철종 이후의 일이며 그전에는 동오릉, 동칠릉이라고 불렀다.
1. 건원릉(健元陵)
건원릉은 조선을 세운 태조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성문신무정의광덕 고황제(太祖 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聖文神武正義光德 高皇帝, 1355~1408)의 단 능으로, 동구릉에서 가장 중앙의 깊숙한 곳 양주 남 검암산 계좌정향
(楊州 南 儉岩山 癸坐丁向)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의 무장이었던 이성계는 조선 창업 군주로 개경의 수창궁에서 1392년에 등극하여 7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는 등 500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408년 5월 24일 보령 74세로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태조의 원후는 승인순성 신의고황후 한 씨(承仁順聖 神懿高皇后 韓氏, 1337~1391)이고 능은 제릉(齊陵)으로 개성에 있다. 계후는 순원현경 신덕고황후 강 씨(順元顯敬 神德高皇后 康氏)이며 능은 정릉(貞陵)이다. 건원(乾元)은 처음으로 시작하여 형통하는 것이고 또한 만물에 의지하여 시작한다는 뜻으로 주역에서 인용된 능호이다.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의 능침인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 주위의 곡장 설치와 석물 등에는 새로운 변화를 주어 조선왕릉 제도의 표본이 되었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가 심겨 있다. 이는 태조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매년 한식날에 한차례 예초를 실시한다. 정자각과 비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양력 6월 27일 정오에 건원릉 정자각에서 친향례로서 산릉 기신제향을 올린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주관하여 전국에서 많은 전주이씨 종친들이 참반하며 장엄한 어가행렬이 펼쳐진다.
2.현릉(顯陵)

현릉은 동구능 재실로부터 우측 참도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두 번째 능으로 건원릉 제 2 청룡지지에 위치하며 문종 능은 건원릉 동남 계좌정향(癸坐丁向)하고 현덕왕후능은 대왕능 좌강 인좌신향(寅坐申向)하고 있는 동원이강릉이다.
조선 제 5대 왕인 문종은 세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1450년에 왕위에 올라 언로를 열어 민의를 파악하였고 문, 무를 중히 하여 군사제도를 개편하였다. 몸이 허약했던 문종은 제위 2년 4 개월 만에 보령 39세로 승하 하였다.
3. 목릉(穆陵)

목릉은 건원릉의 우측 참도를 따라 올라가면 동구릉에서 가장 높은 해발 70m에 위치한 건원릉 제1청룡지지에 있다.

능은 각각 다른 줄기의 산 언덕에 조영 된 동원 이강릉(同原 異岡陵)으로서 좌측 양주 건원릉 제2강 임좌 병향에 조선 제14대 왕 선조(宣祖)의 능이 있고 중심부인 대왕 능 좌강 임좌 병향에 그의 원비 의인황후 박 씨(懿仁王后 朴氏)의 능이 있으며, 우측 대왕 능 좌강 갑좌 경향에 계비 인목왕후 김 씨(仁穆王后 金氏)의 능이 있다.
선조는 중종의 일곱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서 하성군에 봉해졌다가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1567년에 조선 제1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은 선조는 전후 복구작업에 힘을 기울였으나 거듭된 흉년과 정치의 불안정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 휘릉(徽陵)

휘릉은 수락지맥의 검암산 서쪽의 제1백호 줄기에 자리한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단릉으로 건원릉 서강 유좌묘향(酉坐卯向)한다.
장렬왕후 조 씨(莊烈王后 趙氏 1624~1688)는 한원부원군 조 창원의 딸로 1638년 인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리고 왕비로 책봉되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고 효종, 현종, 숙종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으나 인조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는 못했다.
5. 숭릉(崇陵)

숭릉은 조선 18대 왕 현종과 비 명성왕후의 쌍능으로 건원릉 서남별 제4백호 맥에 위치하며 유좌묘향(酉坐卯向)이다. 현종대왕(1641~1674)은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맏아들로서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타국인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1659년에 효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명성왕후 김 씨(1642~1683)는 영돈령부사 청풍부원군 김 우명의 딸로 1651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659년에 현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현종은 병자, 정묘호란을 겪었기에 군비를 강화하고 나라의 재정구조를 정비하는 등 어지러웠던 조선왕조의 통치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숭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 42기 정자각 중 유일하게 팔작지붕의 형태로서 보물 제1742호로 지정되었다. 현종은 조선왕조의 27 왕들 가운데 유일하게 타국에서 태어났고,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았다는 점까지 세 가지 면에서 독특한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6. 혜릉(혜릉)

혜릉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원비 단의 왕후 심 씨(1686~1718)의 단릉으로 검암산 동쪽으로 뻗어 내린 제3백호 맥의 숭릉 유좌지강(酉坐之岡)에 위치한다. 숙종 44년(1718년)에 세자빈 신분으로 소생 없이 33세 나이로 승하하였다. 능역은 각 도에서 승군 1천 명을 징발하여 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소현세자의 묘제에 맞추어 소박한 형식으로 예장하였다가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추봉 되고 능호도 혜릉으로 추증되어 석물도 왕릉의 격식에 맞게 배설되었다.
7. 원릉(元陵)

원릉은 건원릉의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제2백호 두 번째 맥(健元陵西 第二崗 亥坐巳向 之原)에 조영 된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침으로 쌍릉이다.
영조(1694~1776)는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넷째 아들로 1724년 경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영조는 탕평책과 경영을 통해 붕당의 폐해를 없애고 문화정치를 펴고자 노력하였다.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세금부담을 줄여주었다. 영조 47년에 전주이씨 시조 묘인 조경묘를 세웠다. 조선조 최장수 왕으로 보령이 83세에 이르렀고, 제위 기간은 52년이다. 역대 왕 중에 최 장수하고 재위 기간 또한 최 장기로서 으뜸 인지라 능호가 원릉(元陵)이다. 정순왕후 김 씨(1745~1805)는 오흥부원군 김 한구의 딸로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1759년 15세의 나이로 66세인 영조의 계비에 책봉되었다. 노론 일파의 상소로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사도세자의 손자인 순조 때에도 수렴 청청을 하며 권력을 행사하였다.
8. 수릉(綏陵)

수릉은 동구릉 재실로부터 우측 참도를 따라가다 보면 제일 첫번째로 만나게 되며 건원릉 제3 청룡지지에 위치한다.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이다. 문조는 조선 제23대 순조의 아들로서 아버지 순조가 건강하지 못하여 효명세자 시절부터 대리청정을 하였다. 대리청정하는 동안 자신의 처가인 풍양조씨 인사를 대거 등용하긴 했으나 정치적으로 소외 되었던 남인과 소론 소북 인사까지 고루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며, 모든 백성을 이한 정책을 신현코자 아였으나 2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834년 아들 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되었다.
신정익황후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 11세의 나이로 효명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책보외었다. 1834년 호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의 차남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 하였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조선후기 정국을 주도했던 여장부였다.
9. 경릉(景陵)

경릉은 조선 제24대 왕 헌종 성황제(1827~1849)와 원비 효현성황후 김 씨(1828~1843)와 계비 효정성황후 홍 씨를 모신 삼연릉이다. 정면에서 보아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
인조 8년(1630) 선조의 목릉에서 물이 나고 불길하다는 원주 목사 심 명세의 상소에 따라 목릉을 현 경릉 위치로 천장하기 위해 현궁을 열어보니 아무런 수기(水氣)가 없자 없었던 일로 되어, 헌종 9년에 춘추 16세로 승하한 효현왕후 김 씨의 능을 이 자리에 조성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 후 헌종이 승하하자 13곳의 길지를 두고 물색한 결과 이곳이 최고의 길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1904년에 계비 효정왕후가 춘추 73세로 승하하자 우상 최 하의 왕릉 풍수법도에 따라 조영된 능침엔 난간석으로 세 능침이 이어져 있고 혼유석만 각각 노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