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3일
夕汀 古宅
겨울 날씨 같지 않게 따뜻한 햇볕이 포근하게 비춰주던 아침 10시쯤, 관선헌 주인 부부의 안내로 부안읍 선은리에 있는 목가시인 신석정 선생의 고택 靑丘園을 찾기 위해 마을에 들어서니 담벼락에는 페인트로 써 놓았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유치 반대의 구호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젊은 군수가 의욕적으로 방폐장의 유치를 신청했다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시끄러웠던 기억을 잊고 있었는데, 평온하고 한적한 이 고장의 복잡한 현대사를 다시 보는 듯하여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골목을 지나 사철나무와 대나무가 섞여있는 울타리 옆으로 작은 사립문을 들어서면 道記念物로 지정한 안내문이 새워져 있고, 그 옆에 文人들이 새운 돌 비가 靑丘園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집 주변이 수선스러운 것은 시인의 탄생 100 주년을 맞아 부안군에서 예산을 할애, 청구원 주변의 부지를 매입하여 2008년 개관을 목표로 석정문학관을 건립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안채 앞에 있던 우물은 모습만 복원되어 있고, 지금은 두레박으로 퍼 올려 쓸 수 있는 물이 없음이 안타깝다. 초가 삼간 안채는 옛 모습대로 복원한 듯 하지만, 새로 지은 현대식 화장실은 옛 모습이 아니다. 아직 복원공사 중이기 때문에 내년쯤 멋진 문학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원래 시인이 태어난 곳은 여기서 1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중동리의 군청 옆이었다. 8세 때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선생이 26세 되던 해에 지금의 모습과 같은 집을 다시 지었고, 1952년 전주시 남노송동 175의 25번지 비사벌 초사로 이사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이곳에 사시면서 시집 “촛불”과 “슬픈 목가”를 탄생시켰다. 또한 이곳은 당시의 많은 시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문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붕의 이엉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철재 비계 틀이 집 주변에 새워져 있었고, 마당은 어지러이 작업 부산물들이 널려 있다. 비계 틀 사이로 열린 창문 안쪽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꽃을 보며 사색에 잠긴 듯한 시인의 멋진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작은 방과, 액자에 장식된 시인의 대표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가 유난히 빛나고 있는 건넌방이 옛 시골의 전형적인 초가삼간 규모 그대로이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 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청구원을 나오면서 나는 시인이 노래한 “그 먼 나라” 는 400 년 전 蛟山 허균이 꿈꾸던 “율도국” 이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발길을 磻溪 遺積地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