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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Giverny)

                  2009년 5월 21일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 쯤 떨어진 곳에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Giverny)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모네((Claude Monet1840-1926)가 노르망디 지방을 여행하다 이곳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지금의 집에 세(貰)를 얻어 살다가 얼마 후 매입하고 주변의 땅까지 사들여 오늘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43살 되던 때인 1883년부터 86살에 생을 마감하던 1926년까지 43년 동안, 정확하게 생애의 절반을 이곳에 살면서 손수 디자인하여 가꾸었던 아름다운  정원은 물론 마을 전체가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곳이다.

지베르니(Giverny)로 가는 한적한 길, 그 길을 달리면서 본 아름다운 초원과 농가

그림공부를 하거나 미술품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지만, 우리같은 보통 여행객들도 가 볼만한 곳이라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딸내미가 가자는데로  따라 나섰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시원한 초원과 여기저기 숲이 우거진 시골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목적지는 제쳐두고라도 우선 가는 길이 참 마음에 들어서 좋은 코스를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후 1시가 넘어 지베르니(Giverny)에 도착했는데, 두 군데나 있는 꽤나 넓은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 약 30분동안을 빙글빙글 돌다가, 마침내 빠져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차를 세웠다. 우선 배가 고파 주차장 옆 풀밭에서 준비해간 점심부터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마을의 넓은 진디밭에는 점심을 준비해 온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식사를 한다.

이곳 뿐만 아니라, 파리시내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관광지의 카페에서 식사를 하려면 우리같은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너무 크다. 식사가 1인당 20 유로 이상(약 36,000원), 음료수가 3 유로(5,400원)씩이니 3명이 한끼 식사를 하려면 우리돈으로 최소 12만원 이상을 써야 하니, 왠만한 사람들은 가능하면 우리처럼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 가는 모양이다.

심을 먹고 모네의 정원에 가기 위하여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줄이 약 200미터나 늘어서 있는데 그 줄이 도무지 줄어드는 기색이 없다. 다리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출입구쪽으로 가 보았더니 입장한 사람들의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의 수 만큼만   입장을 시키고 있었는데 한참을 기다려서 한 두 사람씩 들어가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입장을 하려면 어림잡아 4시간 이상 기다려야할 것 같아 모네의 집 관람은 포기하고,  가까운 곳 에 있는 '아메리캥 지바르니 미술관'과 주변에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모네가 잠들어 있는 무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네 역시 젊은 시절에는 그 예술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러던 그가 인상주의 미술의 선구자가 된 것은 낙선자 전람회(Salon des Refuses)에 출품한 <풀밭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계기로 마네(1832-18830, 드가(1834-1917), 세잔(1839-1909), 시슬레(1839-1889), 르노와르(1841-1919), 등과함께 새로운 회화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통하여 강렬한 빛과 자연을 소재로한 미술활동을 시작하였다.

1874년 그들의 첫 전람회인 '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예술가협회'전을  열었고, 이때 출품된  그의 작품 '해 돋는 인상(Impression Sunrise)의 제명(題名)을 따서 한 미술기자가 '인상파 전람회'라고 조롱 섞인 기사를 신문에 발표함으로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된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을 골목을 지나면서 사진을 찍는데 지나던 관광객 두 사람이  뒤에서 손을 흔들며 즐겁게 장난을 한다. 이들의 천진스런 모습도 여행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마을 전체가 정원이고 그림의 소재이며 관광상품이다.

마을 외곽으로 나가는 곳에 작은 교회가 있고, 옆에 지금 한창 보수공사중인 모네의 기념관의 외부에 화판을 든 만년의 모습 사진이 걸려있었다. 교회를 안고 뒤로 돌아가면 공동묘지가 있고, 그 아래 맞은편에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모네의 가족묘가 있다. 묘 위에는 그가 생전에 가꾸었던 정원의 꽃들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소 좋아하던 자연스런 꽃들이 피어 있어 그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는 듯하다. 

보수공사 중에 있는 모네기년관 앞에 화판을 든 모네의 커다란 사진이 결려있다.

강렬한 빛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시력의 손상을 가져왔지만 '시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화실에서 보다는 그 강렬한 빛 속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던 그의 정열과 영혼이 편히 쉬고 있는  무덤을 뒤로 하고 나는 또 한명의 불운했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기 위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를 찾아 떠난다.

모네의 가족묘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