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5일 오후 4시 10분, 정 달화 동문과 승용차로 잠실역을 출발하여 오후 6시 40분 정확하게 1시간 30분만에 우리는 원주의 김 명환 동문이 봉직하고 있는 학교 그의 집무실에 도착하였다. 그는 보직 때문에 방학 동안이지만 주중에는 집무실에 나와 근무를 하고 있다. 1월 16일 한라산을 같이 다녀왔고, 또 지난 주말에도 54산악회 100번째 산행으로 불암산을 같이 다녀왔는데, 엊그제 다시 눈덮인 소백산의 비로봉을 가자는 그의 연락을 받았었다. 정 달화 동문과 내가 아직 소백산을 올라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지금 한창 눈덮인 소백산의 아름다움에 우리를 안내하고싶은 마음이 동했었던 모양이다.
-김 명환 동문의 집무실 책상. 두 번째 맡은 보직이지만 책상위에 있는 명패가 빛나보인다.-
겨울 산행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엊저녁 친구의 집무실을 나와 그가 안내하는 원주 시내의 이름난 추어탕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봉화산 아래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 돌아와 11시까지 이야기를 하다 늦게야 잠이 들었지만, 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었다. 다시 자리에 누어 잠을 청해보아도 잠은 오지 않고, 처음 가는 산에 대한 여러 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옆에서 자고 있는 정 달화 동문은 곤히 잘도 자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일찍 일어나 잠을 설치는 것을 알았다니 잠을 설치기는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친구 부인이 정성스럽게 끓여주는 떡만두국으로 조반을 마치고, 7시 10분, 옅은 안개가 깔려 있는 사이로 희미하게 먼동이 트이기 시작 할 무렵, 친구의 부인까지 우리 네 사람은 원주를 출발하여 북단양 톨게이트를 지나고, 남한강의 빙판위에 고즈넉히 앉아 있는 단양팔경의 제일경 도담삼봉을 옆으로 보면서 천동계곡쪽으로 달려가, 다리안국민관광단지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시각이 8시 정각이었다.
소백산 유스호스텔 앞 작은 공원에는 '청량산악회'라는 산악회의 회원들이 세운 고산자 김정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비의 뒷면에 새겨진 글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이가 지도 위에 찍은 점 하나는 우리민족의 한 방울 눈물이요, 그이가 그은 한 줄의 선은 우리민족의 핏줄이다' 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고산자 비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동안 앞서서 가고 있는 친구들을 따라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또 한사람 우리가 기억하는 산악인의 기념비가 새워져 있다. 이 지역 제천 출신인 허 영호의 기념비. 그는 세계 최초로 3 극점, 7 대륙의 정상을 정복한 자랑스런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소백산을 오르면서 산악인을 넘어 탐험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가 이 비에 남긴 글에는 "여기 알피니스트를 꿈꾸던 한 젊은이의 영광과 도전을 무한히 포옹해 주었던 나의 오랜 우정을 바칩니다. 오르기 힘든 산은 있어도 결코 오를 수 없는 산은 없듯이 산은 끊임없이 도전과 인내의 정신을 일깨워준 나의 소중한 스승이었습니다. 내 어머니와 같은 산에서 새로운 꿈이 일어나 나는 끝없는 미지를 향하여 도전의 길을 떠납니다. 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 -"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천동계곡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이 길은 그의 이름을 따서 '허영호의 길'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렇다. 오르기 힘든 산은 있어도 결코 오를 수 없는 산은 없다고 한 그의 말은 그가 아니면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허영호기념비 바로 옆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국립공원 북부지소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 이어지다가 국립공원북부지소를 지나면 큰 돌과 조그만 자갈로 만들어진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부터 천동야영장까지가 3.7km인데 경사가 좀 심하긴 해도 야영장 휴게소에 필요한 짐을 실은 짚차가 다니기도 한다고 김교수는 일러준다.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다시 얼어붙어 응달진 곳에는 빙판길을 이루고 있었다. 정 달화 동문과 나는 아이젠을 장착하고 조심조심 올라가는데 김교수는 아이젠을 장착하지도 않고 그냥 잘도 올라간다. 우리는 얼음길이 아닌 자갈길을 아이젠을 장착한채로 걷기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지만 군데군데 곧바로 이어지는 빙판길이 있어 아이젠을 벗었다 신었다 하기도 번거로운 일이라서 힘들지만 참고 걸을 수밖에 없다.
오전 10시. 우리가 천동쉼터(천동야영장)에 도착한 시각이다. 올라올 때까지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따뜻하던 날씨가 여기에선 장갑을 착용했지만 손이 시리고, 부는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스친다.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쉼터의 야외휴게소에서 우린 따뜻한 오뎅(?) 국물에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10여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소백산의 비로봉을 향해 출발한다.
빙판길과 눈이 쌓여있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서도 주변의 설경에 정신을 빼앗긴다. 중간중간 계단길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구상나무 군락지가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지나니 넓다란 평지다. 거기에서 나고 자라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고, 또 죽어서도 몇 백년을 외롭다는 생각을 잊은채로 거기 홀로 서 있었을 고사목이 있다. 사람들은 거기 나무판을 깔아 휴식처를 마련해 놓았다. 오고 가는 산사람들이 이 고사목을 보면서 저마다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아름다운 눈꽃을 피우고 있는 상고대가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가다가 소백산의 비로봉으로 가는 문을 지키고 서 있는 듯한 수 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주목 두 그루를 만난다. 다시 사진을 찍고 완만한 눈길을 10분쯤 걸으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 길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이란다. 좌측의 길은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고, 우측의 길은 제1연화봉에서 희방사나 제2연화봉을 거쳐 죽령매표소로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우리 네 사람이 같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모처럼 한 사람의 등산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계단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비로봉 길을 향하는데 짙은 안개가 세찬 바람에 흰 눈가루와 함께 몰아쳐 내 뺨을 때린다. 추위와 피로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이는 저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 상고대와 설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을 찾아온 우리가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늦은 봄이면 철쭉과 기화요초가, 여름은 여름대로 초원에 원추리꽃, 한국의 에델바이스인 솜다리꽃이 군락지를 이루어 그 아름다움을 천상의 화원에 비유하기도 하며, 가을에는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산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라고 소백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랑을 한다.
11시 20분 드디어 1439.5 미터의 비로봉 정상에 섰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소백산이라고 불리운다는 소백산의 정상 비로봉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를 접하고 있다. 꾀나 넓은 정상에는 돌 탑을 쌓아 놓기도 했고, 표지석을 단양군과 영주시에서 각각 따로 새워놓았다. 천동계곡을 통해 우리가 올라올 때는 내려오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만난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20 여명의 선행자들이 안개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정상에 선 기쁨에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아마도 우리와 다른 코스를 통해 올라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5, 6 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1420.8 미터의 국망봉을 향한다.
국망봉으로 향하는 길은 올라오던 길보다 쌓여있는 눈도 많고, 길도 더 위험하다. 30분쯤 가다가 김교수 부인이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김교수가 천천히 부인과 뒤따라 갈테니 두 사람이 먼저 갔다 되돌아 오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부지런히 국망봉을 향해 가다가 생각해보니 김교수 부인을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여 중간에 되돌아 왔다. 국망봉에서 신선봉으로 해서 구인사로 하산하려던 첫번째 계획을 접고, 국망봉에서 되짚어 오다가 어의계곡으로 내려가려던 두번째 계획도 접었다. 이젠 올라왔던 천동야영장을 통해 다리안국민관광단지로 하산키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12시 20분, 되짚어 올라오던 길에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커다란 바위밑 길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이곳은 온통 우리가 전세를 낸 듯하다. 따뜻한 컵라면국물이 차가와진 속을 풀어준다. 과일과 빵, 따뜻한 차까지 마시고 나니 피로도 풀리고 다시 기운이 솟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 하산 하기는 전혀 힘들지가 않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천동야영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서둘러 내려오니 오후 3시에 출발점인 주차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총 7시간의 산행이다.
설악산의 공룡능선 종주를 시작으로 월악산, 지리산 종주, 한라산 그리고 이번 소백산까지 나와 정 달화 동문의 초행 산길의 길잡이가 되어준 김교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고, 항상 힘든 산행의 동반자가 되어준 정 달화 동문께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