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정치사상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세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플라톤(Platon)이나 아리스토텔세스(Aristoteles)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궁극의 목적이었다.
기독교는 현세의 행복을 상대화하였지만 중세의 공통선(共通善)이라는 발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자의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 때 행복을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고전적인 정치사상에서는 혼의 내부에 서열을 정하여 감각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절제하고 혼의 상위부분(지성, 신앙)을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 점에서는 쾌락주의라고 비난 받았던 에피크로스파도 마찬가지이며 욕망에 현혹되지 않는 아타락시아(atraxia; 마음의 평정부동의 상태)의 경지로 정치에서 물러서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근대의 정치사상과 행복의 관계는 양극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행복이 혼 내부의 서열과의 관계를 상실하고 쾌락으로 환원됨으로써 평준화 및 양화(量化)되어 계산 가능한 것이 된다. 엘베시우스(Claude-Adrien Helvetius)를 계승한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입법의 원리로 한다.
다른 하나의 극에 있는 것은 칸트(Immanuel Kant)의 입장이다. 칸트는 전제 계몽군주가 국민의 행복을 이유로 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행복은 후천적인 것에 불과하며 도덕이나 법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없다.
19세기의 위대한 공리주의자 J. S. 밀(John Stuart Mill)은 벤담의 원리를 수정하고 행복에 다시 질적인 상위(相違)를 도입한다. 또한 위해(危害)원리에 의해 간섭주의에 의한 개입을 제한하였다.
-21세기 정치학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