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6일
1월 16일 아침 5시 30분, 우리를 깨워주기 위한 모닝콜 벨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기상한 것은 잠을 자면서도 모두들 긴장 때문에 숙면에 들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었으리라.
아침 8시쯤 성판악 휴게소를 출발하여, 남한에서 제일 높은 1950 미터의 백록담에 올랐다가, 현재 적설량이 1미터 50센티미터가 넘는다는 용진각 대피소, 개미목을 거쳐 관음사 코스로 하산하는 총 18.3km를 주행하는데, 대략 9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계산하더라도(눈이 쌓이지 않은 평소보다 1시간 정도를 늘려 잡아), 돌아올 비행기시간에 맞춰 오후 6시까지 공항에 도착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긴장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짐을 챙기고 세수를 한 후, 6시 30분 식당으로 내려가 조반을 한정식으로 마치고 7시쯤 숙소를 나섰다. 제주시내를 빠져 나올 무렵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는 성판악 휴게소로 가는 도중 싸락눈으로 변하더니 휴게소에 도착한 7시 50분쯤에는 다행스럽게 그 눈도 그쳐주었다.
작년 5월 김 명환, 정 달화 두 동문과 지리산종주를 마친 후, 한라산도 같이 등정하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약속을 했었지만,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쉽게 기회를 찾지 못하고 지내다가, 며칠 전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김 명환 동문의 갑작스러운 제의에 1월 16일로 산행일자를 정했었다.
그러나 개별적인 일정상 우리 세 사람은 각기 다른 항공편으로 1월 15일 제주에 도착, 숙소에서 저녁 7시에 합류했던 것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김 동문의 일정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였다. 김 명환 동문이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정 달화 동문과 나는 서귀포, 남원, 삼굼부리, 성읍민속마을, 성산일출봉과 외돌개까지 다녀와서 시간에 맞게 다시 제주시내의 숙소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마치고 내일의 산행을 위해 일찍 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20cm 정도의 눈이 쌓여 있는 성판악 휴게소에는 5-60명정도의 등산객들이 먼저 도착하여 스펫츠와 아이젠을 장착하느라 북적대고 있었고, 우리 세 사람도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사진을 몇 컷 찍고 출발한 시간이 8시 10분쯤이다.
출발 이틀 전에 서울에서 이곳 관리공단에 전화로 적설량과 통제여부를 물었을 때 등산로를 뚫어 놓고 통제를 해제했다는 확인을 했었지만,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많이 쌓인 눈 속에서 다시 길을 뚫어 놓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등산로를 따라 가느다란 로프까지 설치해 놓은 관리공단의 배려가 다시금 고맙게 느껴졌다.
초입의 여기저기에서 활엽수들의 잎이 마치 소금에 절인 채소처럼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한라산의 기온은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라대피소를 거쳐 진달래밭 대피소까지의 3.6km의 길은 조금 가파르고 힘이 드는 길이다. 보통 1시간 40분정도 소요된다지만, 우리가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으니, 성판악에서 이곳까지 3시간 걸리는 길을 2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40분정도는 빨리 온 셈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이 점심용으로 매점에서 컵라면 3개를 사서 베낭에 넣었다는 것이다. 나는 출발 할 때, 심한 바람과 낮은 기온을 예상하고 옷을 너무 두껍게 입은 탓에 안에 껴입은 옷들이 흠뻑 젖어버렸다. 젖은 옷을 벗어 베낭에 넣고, 따뜻한 물을 두컵이나 마시고, 20분정도를 쉬고 다시출발한다.
겨울철에는 해발 1,500미터의 진달래밭 대피소에서부터는 낮 12시가 지나면 백록담으로 가는 것을 통제한다고 한다. 우리는 10시 40분쯤 2.3km 가 남은 정상까지의 길을 떠난다. 대피소에서 따뜻한 물과 초코렛으로 체력을 보충하였지만, 나의 체력은 급속히 저하되어 100미터를 전진하면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조금 무리를 해서 올라가면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지금까지 어떤 산행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1시간 30분 걸리는 길이니 12시 10분이면 백록담에 도착해야 하는데, 우리는 2시간만에 도착한 것이다. 12시 50분, 성판악에서 4시간 50분이 걸린셈이다. 걱정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올라간 백록담에는 구름은 없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가루를 몰아치고 있었다. 카메라마져 밧데리가 나가서 백록담의 사진을 남기지 못해서 정 달화 동문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여 그 아쉬움을 달랬다.
바람때문에 정상에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준비해간 정상주도 마시지 못하고, 급히 관음사쪽 하산길을 잡아 용진각 대피소를 향해 내려오는 길은 가히 겨울철 산행의 절정이다. 허리까지 쌓인 눈길을 내려오면서 엉덩이썰매로 마구 굴러 내려오기도 하고, 눈속에 다리가 빠져 쩔쩔 매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용진각 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이고, 인절미와 고구마로 점심을 먹으면서 준비해간 매실주를 몇 잔 마시니 다시 기운이 솟는 것 같다. 점심을 마치고 오후 2시쯤 출발한다. 이제 내가 맨 앞에서 힘차게 걷는다. 평상시와 같은 체력이 되살아난 듯 하다. 개미목, 개미계곡, 탐라계곡을 지나고 숯가마터를 지날 때, 아침에 우리를 태워다준 택시기사에게 4시에 관음사까지 와 달라고 전화를 한다. 오후 4시 정확히 7시간50분만에 우리는 관음사에 도착하여, 먼저 와서 기다리는 택시로 공항에 도착하니 걱정했던 탑승시간까지는 2시간이나 유가 있었다. 나의 체력저하때문에 걱정한 두 친구에게 미안했고, 오늘의 한라산행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함께 실행해준 친구들이 고맙다.
* 심한 한파에 갑자기 카메라의 Battery가 나가는 바람에 눈덮인 백록담의 사진과 1미터 50센티이상 쌓인 눈길을 내려오던 관음사길의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 풀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침 6시 30분 호텔에서 조반을 마치고 택시로 성판악 휴게소에 7시 50분에 도착, 스펫치와 아이젠을 장착하고 8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