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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寧大君字說

祖上의 얼을 생각하면서

효령대군께서는 1396(태조5)년에 태종대왕의 둘째 아드님으로 나시어 1486(성종17)년까지 수 91세를 사시면서 건국 초기 왕실의 안녕과 조선 건국이념인 崇儒排佛政策에 의한 民心離反을 수습하시기 위하여 불교에 대한 탄압이 심하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儒彿調和論을 주장하시면서 많은 불사와 불경의 번역을 통하여 민심을 순화하였을 뿐 아니라,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심으로 아우님이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 보급에도 크게 기여하신 우리 全州李氏孝寧大君靖孝公派 50만 後孫들의 파조(派祖)이심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 옮겨 실은 孝寧大君字說은 1419년 대군 24세 때 大提學 卞季良이 대군의 자를 선숙(善叔)이라 짓고 해설을 한 글입니다. 이 글은 成宗代에 王命으로 徐居正이 쓴 東文選(新羅 以後 朝鮮 初기까지 詩文을 모은 책)에 수록되어 있던 것을 우리 全州李氏孝寧大君靖孝公派世譜에 수록한 것을 필자가 轉載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 大君  19代孫 休宰-                                                                                                          

효령대군 자설(孝寧大君字說)

효령대군이 계량(季良)에게 이르시기를 “이름에 반드시 자(字)가 있음은 예부터 그러하다. 내 이름은 보(補)이다. 그대는 내 자(字)를 짓고 또 해설해 주게. 내가 보아서 스스로 경계하고자 한다.” 하시었다. 

계량(季良)이 감히 사양하지를 못하였다. 일찍이 주역(周易)의 계사(繫辭)를 보니 이르기를 “선()으로써 허물을 바로잡는다.” 하는 것이 있고, 또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에는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오직 중산보(仲山甫)가 이를 바로잡았다.”라고 하였다. 자기의 허물을 바로잡은 다음에야 능히 임금의 잘못도 바로잡을 것이니, 그 순서를 문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군(大君)의 자()를 선숙(善叔)으로 하기를 청한다

대개 선()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본연 그대로의 것으로서 사람에게 본디부터 있는 것이고, 밖에서 들어와 나를 아름답게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요순(堯舜)과 같은 성왕(聖王)이나 속세의 보통 사람이나 다 다를 것이 없다. 비록 그러나 기품(氣稟)이 앞에서 구애 받고 물욕은 뒤에서 가리우는데, 이로 하여 그 행하는 바에 능히 허물이 없지 아니하며 중인(衆人)이 면치 못하는 바이다.

공자(孔子)께서 이를 마음 아파하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역경(易經)을 저술하셨는데, 후세(後世) 사람을 위한 생각이 지극하시었다. 아아 사람이 누군들 허물이 없으리오.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탕왕(湯王)이 덕()을 칭찬하면서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라고 하였다. 주공(周公)도 허물 있음을 면치 못하였고 공자(孔子)는 남이 자기의 허물을 앎을 다행으로 여겼으며, 또 스스로 이르기를 “큰 허물을 없게 할 수가 있다.” 하시었다

성인(聖人)도 오히려 이러 하시거늘 하물며 범인(凡人)에 있어서랴. 처음에 선()으로써 허물을 바로잡으면 마침내는 허물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대저 그런 연후에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하늘의 명()을 품부(稟賦)해서 있는 곳 마다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어서 천하(天下)를 아울러 착하게 하기에 이르나, 그 신화(神化)의 묘()함이 바로 위아래 천지(天地)와 더불어 같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데, 대군(大君)은 온화하고 아담하며 문명(文明)한 자질(資質)로써, 효제충신(孝悌忠信)의 행실을 돈독히 하시었다. 높은 지위(地位)에 있으면서도 학문(學問)을 좋아하시어 게을리 아니하시며, 자기 자신을 낮춤으로써 스스로 그 덕()을 길러 털끝만큼도 교만함과 과장하는 빛이 없으시다. 아아! 어지시도다. 그런데도 오히려 만족해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말을 구하시어 스스로 경계하고자 하시니, 옛사람이 이른바 “높은 이는 겸손 함으로서 더욱 빛난다” 라고 한 것과 또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고 한 것이 바로 대군(大君)을 두고 한 말인가. 대군(大君)의 나이 30이 못되어서 그 학문(學問)과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으시니 후일에 성취(成就)하실 바를 어찌 짐작하겠는가.

이는 태상전하(太上殿下)의 자애(慈愛)하심과 주상전하(主上殿下)의 우애(友愛)하심이 마땅하여 종실(宗室)의 모범이 되며, 성상(聖上)의 덕()을 도와 길이 부귀(富貴)를 지켜서, 국가(國家)와 더불어 기쁨을 함께 하기를 무궁(無窮)토록 할 것이 의심이 없다.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내가 성인(聖人)이 찬한 주역(周易)을 비록 일찍이 완미했으나 능히 그 근처도 엿보지 못하였다. 어찌 감히 한마디 말로 그 뜻을 부연할 수가 있으리오. 다만 남과 같이 착함을 하겠다는 심정은 하늘에서 타고난 본성(本性)에 근본(根本)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군(大君)께서 물으심에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자()와 그 해설을 드리고 시()로써 끝맺었다 

 

人苟有過善以補之(사람이 진실하고 허물이 있으면 선으로써 바로잡고)

過之旣補格君之非(허물을 이미 바로잡았으면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體用一源先後則宜(본체와 작용이 한 근원이지만 선후 있음이 마땅하나니)

勳業之盛聖賢同歸(공덕을 훌륭하게 이룩한다면 성현과 같은 결과로 돌아가리라.)

自天福祿來下來爲(하늘로부터 복록이 아래로 내려오고 와서 좋게 되리니)

賢哉大君維善是師(어지시다 대군이여 오직 착함을 스승 하셨다.)

維忠維孝念玆在玆(오직 충성하고 오직 효도하여 이를 생각하고 마음을 두었다.)

學問之勤惟日孜孜(학문을 부지런히 하시어 날마다 애써 힘쓰셨다.)

心乎愛矣出於秉彝(마음으로 사랑함은 본 성품에서 나온 바라지만)

愛莫助之袛以矢詩(사랑하되 도울 길 없어 다만 시로써 맹세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