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몽수리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서 생각치도 않았던 시테 엥테르시오날 위니베르시테르(CITE INTERNATIONALE UNIVERSITAIRE)를 둘러볼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 주었던 폴(Allard Jean Paul) 과 자클린느(Jacqueline) 부부 생각이 났다.
그날 벼룩시장을 구경하려는 우리를 자동차로 태워다주기까지하면서 자기들의 집을 꼭 한 번 방문해 달라고 전화번호와 자기집을 찾아오는 교통편까지 메모해 주었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이 진실된 것 같아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그들이 그날 밤(5월 16일)이 '미술관의 밤 행사'이기 때문에 전 유럽 42개국 2,750군데의 모든 미술관이 무료로 밤 12시까지 개방한다는 정보도 알려주어서 우리는 15 유로(약 27,000원)를 들이지 않고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할 수도 있었다.
집에 오기 전에 꼭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그동안 그들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딸에게 다녀왔고, 그 사이 우리는 파리 시내 구경, 지베르니의 모네정원과 오와르의 빈센트 반 고흐가 살던곳을 다녀왔고, 5월 23일 이후 4일동안은 아무곳에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어서 오늘에야 전화로 오후 우리의 방문이 괜찮겠느냐고 물으니 환영이란다.
그들이 살고있는 곳은 파리 시의 외곽 일드프랑스의 이베트 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알이알 (RER) 이라고 하는 시내를 관통하여 외곽까지 가는 전철은 메트로라고 하는 시내만 운행하는 전철과 연계되기는 하지만 명칭은 구분되어 있다. 시내버스와 시내 전철을 같이 활용할 수 있는 표가 1.6 유로인데 비하여 그 값이 거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상당히 비싼 편이다. 서울에서 수원정도의 거리에 1인당 4.2 유로이니 우리 돈으로 7,500원쯤 하는 셈이다. 1시간 걸려 내린 곳이 Gif Sur Yvette 역이다.
역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면 차를 가지고 나오겠다고 하였지만, 휴대폰을 갖지 않아서 공중전화를 이용하려는데, 공중전화가 카드로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전화카드도 없어 망서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니 자기 휴대폰을 사용하라고 한다. 전화를 끝내고, 휴대폰의 사용 요금을 주려는데 한사코 사양을 한다. 고마운 마음만 전하고 보냈다.
오래지 않아 나온 장 폴씨의 차가 작은 숲을 지나 역시 숲속에 있는 마을 그의 집에 도착하여 안내하는 거실로 들어가니, 이건 거실이아니라 하나의 작은 화랑이다. 눈이 둥그레진 내가 미술관처럼 무슨 그림이 이렇게 많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고하며 이층에 있는 그의 화실을 보여주는데 또 놀랐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고 해서 은퇴 후, 한가하게 놀고 있으면서 요가로 건강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인 줄만 알았었다.
내 눈에는 그가 아마추어의 수준을 훨씬 벗어난 중견 화가쯤 될듯 싶다.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서도 그의 아내를 그리면서 배경으로 한국의 전통가옥을 그려 넣을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물론 동양에서는 인도를 제일 좋아하여 2년 전 5개월동안이나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스케치도 해 와서 그 후 그린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때 스케치 했거나, 받았던 영감들이라고 한다.
자클린느는 베트남의 호치밍시에서 태어나 두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파리로 오게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부부가 모두 동양의 종교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는 일년에 한 두 차레씩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에게 자기의 집을 오픈시켜 자기의 작품을 평가하게 하고, 토론을 즐기는데 금년에도 6월 15일부터 2일간 개방을 한다고 한다. 나는 그의 그림 한 점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가 자기의 그림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느끼고,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다만 멀지않은 장래에 당신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해주고, 그때는 나도 당신의 그림 한 점쯤 갖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더니 그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거실과 화실 그리고 2층 화실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에도 지하 침실로 내려가는 계단에도 모두 그림들로 채워진 집안은 말 그대로 미술관이다.
집안 구경을 하고, 그의 집 주위에 있는 아름다운 숲길을 자랑하겠다고 하여 함께 나가 그가 자랑하는 산책길을 산책하다가 전망이 좋은 곳에서 건너편 숲속의 아름다운 마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마을다운 그림 같은 풍경이다. 숲길을 돌아나오니 한 시간쯤 소요된 듯하다.
다시 그들의 집으로 돌아와 차와 쿠키를 대접받았는데, 우리가 가지고 간 홍삼차를 내왔다. 건강에 좋은 차라고 자랑을 했더니,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홍삼차는 외국인들에게도 홍보가 많이 된 모양이다. 차를 마시는 도중에 인도여행때 그곳에서 샀다는 한국의 둥굴레차를 보여주면서, 사용설명서나 상품명이 모두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한글을 모르는 자기들은 어느나라 제품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상품 포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문제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