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프랑스에서 등장한 톨레랑스(tolérance)라는 말은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관용(寬容)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1562년에 발생한 바시 학살로 시작하여 1598년까지 36년 동안이나 계속된 위그노 전쟁, 즉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의 종교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국력은 크게 소진되었으며, 국민의 갈등은 치유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신, 구 기독교 간의 종교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그노의 수장이었던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1598년 프랑스의 왕위에 올라 극에 달한 종교 갈등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이외에도 칼뱅주의 개신교 교파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선포하면서 도입된 관용(寬容) 즉, 톨레랑스도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36년 동안 이어온 신구 기독교 간의 종교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며 국민들의 갈등 역시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갔다.
그러나 할아버지인 앙리 4세가 선포한 낭트칙령을 손자인 루이 14세는 로마 교황의 지지를 얻어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퐁텐블로 칙령을 선포함으로 폐지(1685년)시키고, 수십만의 위그노를 국외로 추방함으로 프랑스의 산업발전은 크게 위축되고 국민들 사이의 갈등은 다시 심화되어 갔다. 그러나 다시 그의 손자인 루이 16세는 관용칙령을 통해 낭트칙령을 복원시켜 백성들의 갈등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였지만, 국민들의 삶은 더욱 심화된 빈부 격차에 의한 갈등이 고조되어 18세기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 연이은 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갈등을 또 다시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기 다른 그들의 신분과 사상의 차이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 국민들은 진정한 톨레앙스만이 프랑스를 살리는 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어 오늘의 톨레랑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톨레랑스(tolérance)와 연관되는 교훈의 말들을 생각해 본다.
"I cannot agree with you, but I will fight with you if you are persecuted for your right to assert that opinion".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주장할 권리를 박해받는다면 함께 싸울 것입니다".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자유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폭군의 피로 때때로 새로워져야 한다"
True human rights awareness should include respect for human rights as well as my human rights.
"참된 인권의식은 나의 인권과 함께 남의 인권의 존중도 포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