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5일
10월 25일, 김명환, 최윤수, 정달화, 이인환 그리고 나까지 5명이 동서울터미널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백무동행 심야버스를 탔다. 개인사정으로 내가 참가하지 못했던 지난번 총동창회 산행때 김명환 동문이 제안하여 결정된 산행이다. 이번 가을의 지리산 야간 산행 코스는 백무동 야영장- 하동바위-참샘-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총 7.5km)을 돌아서 다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총 거리 15km의 코스로 정했다.
처음에는 중산리 쪽으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하산코스를 바꾼 것은 오후 6시쯤 귀경하여 오후 8시까지 할 수 있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하산 시간은 중산리 쪽이 빠르지만 중산리에서는 다시 함양까지 나가야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고, 백무동으로 내려가면 시간은 약간 더 걸리지만, 곧바로 귀경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리산 야간산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도 날씨가 좋아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봄 산행은 봄대로 좋고, 여름에는 여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산이 뿜어주는 각각 다른 정취가 산을 찾는 사람들을 감싸 안아 더없는 행복감에 빠지게 하지만, 이번 가을 야간산행에서는 백무동야영장에서 참샘을 지날 때 까지 주변의 풍광은 볼 수 없었지만, 등산길 내내 이어지는 계곡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물흐르는 소리와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깨끗한 가을 밤하늘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무수한 별들의 빛나는 모습을 올려다 볼 때마다 우리가 이런 맑은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일행 모두 다른 어느 산행 때 보다 힘들었지만, 받은 감동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컸으리라 확신한다.
새벽 3시55분 버스가 백무동 종점에 도착한다. 週末이 아니어서인지 버스에는 우리 일행외에 다른 4-5명의 산행인들이 있을 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약간은 쌀쌀한 가을 새벽 공기가 상큼하게 얼굴에 와 닿는다. 야간산행을 위해 모두들 바람막이 겉옷과 모자를 착용해서 추위는 걱정이 없다. 저마다 헤드랜턴을 장착하거나 손전등을 비추면서 새벽 4시 어둠속의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 백무동 코스는 초행인데다 어두워서 주변의 지형지물이나 풍광은 알 수도, 볼 수도 없고, 오직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만이 깊어가는 가을 새벽 산속의 적막을 깨뜨린다. 가느다란 랜턴 불빛이 희미하게 비춰주는 등산로를 따라 조심조심 발길을 옮기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얼마 만에 쳐다보는 밤하늘의 황홀함인가. 카메라를 꺼내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댔으나 집에 와서 보니 모두 어둠으로 나오고 말았다. 급히 찍느라 카메라의 기능 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움만 남는다. 평소 서울에서 살면서 거의 밤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것은 이런 황홀의 경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50분쯤 올라가다 땀도 식힐 겸, 배낭의 무게도 줄일 겸, 쉬면서 준비해간 음식들을 꺼내 간단하게 이른 조반을 때웠다. 다시 힘을 받아 참샘까지 올라가 약수를 한 종지씩 마시고 올라가니 6시쯤, 랜턴 불빛 없이도 희미하게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다시 30분쯤의 휴식을 취하고 9시쯤 제석봉 주변의 고사목지역에서 돌아보니 서쪽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통천문을 지나 9시 50분쯤 선발대 정달화, 이인환, 이휴재가 해발 1915미터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도착 했다. 지난 주 감악산행에서 무리한 최윤수 동문이 가끔 다리에 쥐가 나서 김명환 동문과 늦어지는 관계로 선발대 역시 정상적인 보통 산행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한 셈이다. 30분쯤 후에 최윤수 동문과 김명환 동문이 도착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11시쯤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정상주도 한 잔씩 마시니, 그 기분 여기 와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점심을 마치고 11시 30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하산을 시작한다. 참샘 쉼터에서 쉬면서 남은 음식들을 먹고, 어둠 때문에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풍광을 감상하면서 백무동 종점에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행복한 피로감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끝.
남김: 사진에 찍힌 2009년 10월 26일은 2011년 10월 25일이 맞습니다. 카메라의 날자 조정을 하지 않고 찍는 실수를 하고 말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