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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인왕산)

 

2021년 7월 19일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펜더믹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친구들 모임이나 동창 산악회 모임도 갖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두 친구들과는 가끔 가까운 산에 다녀오곤 하였는데, 오늘은 아들과 함께 인왕산에 오르기로 했다.

 

낮 더위의 산행을 피하기 위해 오전 중에 하산할 수 있도록 아침 5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새벽 첫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리니 아직 6시가 되지 않았다. 사직단을 지나 인왕산 정상길과 자락길의 갈림길에서 우선 정상길을 따라 천천히 범바위를 지나 정상까지 오르니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지만,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북한산의  깨끗한 모습이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했다.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치마바위까지 가서 확인하고 싶은 흔적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낙반사고의 위험 때문인지 정상에서 치마바위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확인하지 못한 채 되짚어 내려 울 수밖에 없다.  정상길 진입로까지 내려와 갈림길에서 다시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윤동주 문학관까지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일요일이어서 인지, 아니면 코로나19의 여파인지 문을 닫은 상태여서 들리지 못하고, 길 건너 창의문 아래에 도착하니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다. 최규식 경무관 동상 옆에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이 있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오늘에야 확인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1939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대일본 청년단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치마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2월 서울시가 "민족정신 앙양과 자주정신 고취에 미치는 바 영향이 많다"며 82만 원을 들여 이 글씨 삭제 공사를 했다고 한다. -유영호 작 '서촌을 걷는다'에서 발췌- 그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東亞靑年團結'

                                                '皇紀二千五百九十九年九月十六日'   

                                                          '朝鮮總督南次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