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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날의 追憶 旅行

2017년 11월 15일

  나이 70이 넘은 친구들 5명이 추억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2017년 11월 11일 아침 8시 구로 전철역 광장에 모여 9인승 승합차에 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번잡한 서울을 빠져나갔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오늘을 농업인의 날로 정한 첫날에 농촌으로 향하는 우리의 여행길이 그 취지에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대화의 문을 열면서...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에 있는 감농장의 가을
탐스러운 대봉이 익어가고 있는 가을은 우리에게 풍년을 보는 느끼게 한다.
우리 일행을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하는 산 속의 궁전이다.
역시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은행나무의 노랗게 물든 단풍이다.

   혹자는 노인들이 무슨 추억여행이냐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2015년 유엔이 새로운 [인간의 생애 주기별 연령]을 18세부터 65세까지를 청년, 66세부터 79세까지를 중년, 80세부터 99세까지를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 세대라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우리는 지금 김형석 교수가 말한 것처럼 바야흐로 ‘인생의 황금기’를 살아가고 있다. 훗날 우리가 정말 노년이 되면 여기저기 몸에 불편한 곳이 생겨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고,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는 친구들도 생길 것이다. 그때가 멀지는 않았지만, 그때에 오늘을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함께 떠나는 우리 5명의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문들이지만,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지닌 친구들이다. 인연으로 말하자면 學緣으로 만났지, 地緣과는 거리가 있다. 55년 전 우리는 경기도 용인, 충청북도 청원, 충청남도 부여, 경상남도 고성, 그리고 전라남도 장성 등, 거리가 먼 다른 지방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다가 서울의 같은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그리고 청년시절엔 모두 바쁘게 살면서 동창회에서나 가끔 만났지만, 느긋한 나이에 동기동창 산악회 회원으로 자주 만나면서 오랫동안 산행을 통해 힘든 때도 즐거운 때도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다. 그렇지만,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각각 개성이 뚜렷하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도 하다. 대화 중에도 사회적 현상이나 시국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의견에 부딪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 얼른 화재를 바꾸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바가 같지 않지만, 서로 상대를 인정하며, 자기와 같게 하려 억지를 쓰지는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공통적인 즐거움을 함께 찾으려고 노력하는 좋은 친구들이다. 우리 모두가 君子까지는 못되더라도 和而不同하는 사이의 친구들이 되려는 노력을 하는 사이다.

 

   가을 행락철의 주말이지만, 고속도로 사정은 예상보다 나쁘지 않아서 한 시간 조금 더 걸려서 오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조반을 마치고, 다시 달려 탄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구례 읍까지 달리는데, 지리산에 가까워질수록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 양편의 산들은 그야말로 千山萬壑이요, 滿山紅葉이다. 지금쯤 설악산 쪽에서는 이 아름다움도 색이 바래고 시들어지기 시작했을 텐데 여긴 지금이 한창인 듯하다.

   

   오후 1시쯤 구례 읍에 도착하여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러 저녁과 아침 먹거리, 그리고 거기에 곁들일 소주 2병, 맥주도 큰 것으로 한 병을 준비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직원에게 이 지방 별식을 잘하는 식당을 물으니 평사리 가는 도중에 다슬기 수제비를 잘한다는 집을 소개한다. 평사리 쪽으로 가다가 민족의 영산 지리 산문을 좌측으로 보면서 조금 더 달리니 도로 오른쪽에 조그만 주차장까지 마련된 소개받은 식당이 있었다.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한다는 다슬기의 시원한 국물 맛이 나쁘지 않았다.

 

  식후 한 시간쯤 더 달려 평사리 마을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의 김 응구 씨의 대봉 감 농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게 지정된 Slow City이다. 2007년에 아시아 최초로 완도의 청산도, 담양의 삼지대마을, 신안의 중도, 그리고 장흥의 반월마을에 이어 이 마을 또한 느리게 사는 마을로 지정되었다. 빨리빨리를 미덕으로 알고 살던 시대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미풍양속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의 행사는 이 마을의 특용작물인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어낸 악양 대봉 감 따기 행사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한 박홍근 동문으로부터  미리 연락이 되어 있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농장주인 부부의 환대 속에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았던 홍시를 맛보면서 홍시의 그 달콤한 맛에서보다 아직도 남아있는 농촌의 후덕한 인심에서 더 진한 맛을 느낀다.

 

   서툰 솜씨들이지만 탐스러운 감을 하나하나 똑똑 따면서 우리는 농부의 수확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게 배정해 준 한 그루의 감나무에서 몇 친구들은 감을 따고, 또 몇 친구들은 따 주는 감을 상자에 담으면서 그렇게 2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우리가 딴 감을 차에 싣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골길을 더듬거리며 숙소로 향한다.

 

   숙소는 몇 년 전부터 우리가 지리산 산행을 할 때마다 신세를 지고 있는 박홍근 동문의 인척이 되는 이 병기 씨의 別墅인데, 주인이 부산에 살고 있어서 위층에 세를 놓고, 아래층은 비워있는 때가 많아서 주인의 승인 하에 금년 가을 우리의 추억여행 목적지로 다시 선택한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성제봉 줄기 아래 그야말로 청정지역에 아름답게 지어진 집이다.   

 

    짐을 풀고 가볍게 몸을 씻은 후 저녁을 준비한다. 야채를 씻고 찌개를 끓이는 친구, 밥을 안치는 친구, 삼겹살을 굽는 친구, 모두들 한몫씩 거드니 금방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우리 일행이 마련한 저녁 상에는 고기와 야채가 주 메뉴이다.
두부찌개도 맛있었다.

청정지역에서 손수 만든 반찬에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는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식후 설거지까지 마치고, 우리는 깜깜한 시골길을 걷기로 하고 손전등도 없이 집을 나섰다.

 

조심조심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천천히 걸으며, 오랜만에 맑은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무수히 빛나는 별들 중에서 이름을 아는 별자리를 찾는다. 견우와 직녀, 카시오 페어와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아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깨끗한 밤공기에 몸을 씻으면서 어둠에도 차츰 익숙해진 시골길을 많은 이야기 속에 한 시간쯤 걷고 돌아와 만보기를 체크한 친구가 8 천보쯤 걸었다고 한다. 자정이 다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 내일은 일찍 조반을 해결하고 아침 9시 전에 출발하여 구례까지 가서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 뱀사골을 지나가기로 하고 모두들 자리에 들었다.

 

   11월 12일 아침, 누구랄 것 없이 일찍 일어난 것을 보니 아직도 마음들이 설레는 모양이다. 조반을 일찍 해결하고, 가능하면 빨리 출발하는 것이 고속도로에서의 고생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공통된 의견이었다. 식후 사용한 그릇을 원상대로 깨끗이 세척하여 제자리에 정리하고 잠자리 청소까지 마치고, 집 열쇠는 감 농장주인 김 응구 씨에게 반납하고 출발한 시각이 오전 9시.

   

  해발 1090 미터의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9시 50분, 주차장은 벌써 滿車다. 주차 관리자의 안내대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전망대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우리가 언제 다시 여기에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해발 1090 미터 성삼재에서 바라보이는 모습.
가을 날의 追憶 旅行에 나섰던 친구들 (박홍근, 김태병, 이휴재, 김대근, 그리고 노규경)

  전망대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들이 겹겹이 발아래 펼쳐지는데 그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그러하듯이... 나는 산행에서 이렇게 멋진 풍광을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마음껏 즐길 때마다 소동파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친구와 적벽에서 배를 타고 흔들거리며 풍광에 취하고 술에 취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천지의 사이에(且夫天地之間)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으니(物各有主)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닐진댄(苟非吾之所有)

비록 털끝 하나도 취하지 말아야 하거니와(雖一毫而莫取)

오직 강 위에서 불어오는 청풍과(惟江上之淸風)

산 사이의 명월은(與山間之明月)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而得之而爲聲)

눈을 붙이면 색을 이루어(目遇之而成色)

취하여도 금하는 이가 없고(取之無禁)

써도 다하지 않는(用之不竭)

이들이 조물주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니(是造物者之無盡藏也)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다.(而吾與者之所共樂)

                 -소식의 전적벽부 중에서-   

            

    성삼재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을 담아 간직하고 뱀사골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예상했던 대로 뱀사골의 단풍은 기대했던 만큼 우리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지리산 山靈이 그려놓은 그 아름다운 수채화 속에서 잠시나마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서울을 벗어난 우리에게 넉넉한 힐링이고, 우리가 생각하며 떠난 가을날 추억여행의 극치였다. 

지리산 뱀사골의 가을 풍경.

  오전 11시쯤 뱀사골을 출발한다. 다음 쉴 곳은 금산의 제원면 저곡리에 있는 어죽 마을이다. 점심을 그곳에서 인삼어죽으로 때우기로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인지 도로 사정은 양호한 편이다. 오후 1시에 어죽 마을에 도착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오후 3시가 가까울 무렵 우리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어제와 오늘 자동차를 운행하느라 고생한 노규경 동문의 노고와 우리의 아름다운 가을 추억여행을 위해 애써준 박홍근, 김대근, 김태병 동문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