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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이야기

2008년 8월 9일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28년 뉴욕 태생의 미국의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디지털 혁명, 통신 혁명, 사회 혁명, 기업 혁명과 기술적 특이성 등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하다. 뉴욕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이후에는 미국 중 서부 지방에서 5년간 노동자로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의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편 그의 아내인 아이디 토플러는 대학시절 언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일 때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중 서부지방에서 토플러가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의 간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때 노조의 지원을 받는 신문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이후 펜실바이아 데일리지의 워싱턴 지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3년 동안 미국 의회와 백악관 출입 기자를 하게 되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서 포춘(Fortune)지의 노동관계 컬럼니스트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경제와 경영 그리고 기술과 기술에 의한 영향에 대한 관심사를 넓혀갔으며 이에 대한 저술이 시작되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사회의 변혁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21세기 군사 무기와 기술의 발달에 의한 힘의 증가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 했다. 포춘을 떠나게 되면서 IBM사의 의뢰로 사회와 조직이 어떻게 컴퓨터에 의해 영향 받는지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때 그는 컴퓨터 업계의 전설적인 대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과 교류하게 되었으며 제록스사는 제록스 연구서에 대한 기사를 의뢰하고, AT&T는 전략상 자문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발전하는 통신기술에 대한 연구로 이어 졌으며 정부에 의한 AT&T의 해체를 이보다 십 여년 전에 예측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 그는 <미래의 충격>을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으로 인해 그의 작가이자 강사로서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6년에는 톰 존슨과 함께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하였으며 이 회사를 통해 그가 가진 아이디어들을 실현화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맥시코, 싱가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정부들과 비정부 민간단체, 일반 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그는 그의 아내이자 공동 저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활동하며 그들은 현재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지에 따르면 그는 "세계에서 가능 유명한 미래학자"로 불리어지고 있다.

 

경력

토플러는 현재 코넬대학의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일원이며, 러셀 세이지 재단의 객원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맥킨지 재단의 경영학 저서 활동의 공로로 상을 받았으며 다수의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그는 미국 정부의 일반회계감사 자문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과학 발전을 위한 미국인 협회의 회원이다. 또한 전략 연구 국제 연구소의 회원이다. 2006년에는 브라운 대학의 독립 상의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이상은 각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이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사상

토플러는 "사회는 노인을 공경하고 정직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병원에서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그저 인식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감성적이며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모든 재주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저 데이터와 컴퓨터만으로는 이 사회를 유지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저서 <제3의 물결> 에서 그는 세가지 유형의 사례를 설명하고 이를 "물결"에 비유했다. 각 물결은 구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제치고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그 위에 만들게 된다.

 

첫 번째 물결은 농업 혁명에 의한 수렵 채집의 문명이 농경사회로 대체 되는 혁명적 사회 변화이다.

두 번째 물결은 핵가족, 공장 같은 교육시스템 과 기업의 주요 요소를 가진다. 토플러는 " 제2의 물결의 사회는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으며 대량생산, 대량분배, 대량소비, 대량교육, 대량휴양, 대중문화와 대량 살상 무기들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표준화, 중앙화, 집중화 그리고 동기화를 통해 엮어지게 되며 우리들이 관료주의라 부르는 조직에 의해 운영된다. 세 번째의 "제3의 물결"은 후기 산업화 사회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미 제2의 물결의 사회에서 제3의 물결의 사회로의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제3의 물결은 흔히 불리 듯 정보화 사회 같은 이름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탈 대량화, 다양화, 지식기반 생산과 변화의 가속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으며 그는 "변화는 탈 선형화 되어 있으며 거꾸로도, 앞으로도 그리고 옆으로도 발전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Lifestyle,Subcults)이 존재하며 유동적 조직(Adhocracies)들이 보다 이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정보는 대부분의 물질적 자원을 대신할 수 있으며 보다 유연하게 관계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가장 주요한 자원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대량생산은 싸고, 개인화 된 소규모의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은 조합 시스템에 의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합쳐진 "프로슈머"(Prosumers)는 스스로가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의 새로운 발달로 인해 생기는 급진적인 융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21세기의 한국 비전

2001년 6월 7일 토플러는 한국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든 보고서 "21세기 한국비전"을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한국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으며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면 선택을 강요 당할 것이라고 하며 세계경제에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종속국으로 남을 것인가 경쟁력을 갖춘 선도국이 될 것인가의 빠른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은 것은 산업화시대의 경제발전모델로 발전한 7~8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창출양식이 등장하여서 이전 모델이 더 이상 들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혁신적인 지식기반 경제를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 했다. 

 

특히 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말고 혁신을 간헐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이를 잘 대우하며 보상하는 문화를 갖출 것을 제시하였으며 생명공학과 정보통신의 두 가지 강력한 추진력을 서로 융합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외 굴뚝경제시대의 교육체제를 개혁하여 지난 세기의 제2의 물결식의 산업체제로 길러지는 학교의 교육시스템을 보다 유연하고 지식기반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주는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저서

미래쇼크(Future Shock)》, 1970년

에코스파즘(The Eco-Spasm Report)》, 1975년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1980년

권력이동(Powershift: Knowledge, Wealth and Violence at the Edge of the 21st Century )》, 1990년

전쟁과 반전쟁(War and Anti-War)》, 1995년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 2006년, 김중웅 옮김, 청림출판 ISBN 893-520-658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