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芝薰(1920-1968)의 산중문답
이 시는 1968년 병상에서 어둡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남긴 시입니다.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삽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예뻐 뵈네.
비온 뒤 앞 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 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난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네.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네.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을 알만 함니더)
청산 백운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