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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양평 청계산)

2010년 1월 21일

淸鷄山, 兄弟峰, 芙蓉山 從走記

서울 근교에서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같은 이름의 청계산이 셋이 있다. 나름대로 다 특색을 지니고 있겠지만 서울의 청계산은 서울 사람들의 접근성이 쉬워서 週中, 週末 상관없이 각 등산로 입구마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청계산은 산세가 우람하고, 주변에 강씨봉, 귀목봉, 길매봉 등 많은 산들이 이어져 있어 다양한 산행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군의 서쪽에 위치한 양서면과  서종면의 경계에 있는 청계산은 해발 658미터로 서울의 청계산 보다는 조금 높고, 포천의 청계산보다는 조금 낮은 편이다. 한강을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가르는 용문산(1157m)의 줄기에 솟아 있으며 정상에 올라서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발아래 펼쳐지고 두물머리 일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내려다 보인다. 또 형제봉(605.8m)과 부용산(365.9m)이 이어져 있어서 장거리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약 7시간이 소요되는 이 세 봉우리를 종주하는 코스를 곧잘 선택해 산행의 진수를 맛보기도 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용문까지 개통된 중앙선 전철을 이용해서 이러한 청계산 산행의 즐거움을 같이 하자는 김 교수의 제의에 정달화, 이인환과 필자까지 넷이서 같이 오르기로 일주일 전 약속이 있었다. 며칠 전까지도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던 혹한이 엊그제부터 풀리더니 어제는 눈 대신 겨울비가 내렸고, 오늘은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푸근한 날씨다.

 

어제 저녁때 동문회의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다가 갑작스러운 상처(喪妻)의 고통을 겪게 된 친구를 조문하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왔지만, 4시간 정도 잠을 자고 7시에 일어나 조반을 마치고 배낭을 챙겨 8시 20분 집을 나섰다. 

국수역 앞에선 정달화, 이인환, 그리고 김명환 동문.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10시 27분 이인환,  정달화 동문과 셋이서 국수역에서 내리니 김 교수 역시 같은 전철의 다른 칸에서 내린다. 가을 국화꽃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닮아서 이름이 국수인가? 菊秀驛은 아직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고, 타고 내리는 승객들도 많지 않아서 한산해 보이지만, 새로 지은 驛舍만은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보인다. 앞으로 청계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번성해지리라 생각된다. 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등산로 입구 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니 청계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여기서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 컷을 남겼다.

이인환, 정달화, 그리고 이휴재도 함께
등산 안내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표지판의 화살표방향을 따라가니 시멘트표장도로가 이어지고, 농가와 음식점이 보인다. 산오름 초입에는 온통 빙판으로 덮인 넓은 공터가 있고, 거기에 비닐 천으로 바람막이를 한 음식점도 있는가 하면 등산장비를 파는 노점상도 하나 있다.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꾀나 많은 모양이다. 우리 일행도 다른 등산객들처럼 이곳에서 아이젠을 장착하고, 응달진 곳에 아직도 녹지 않은 미끄러운 빙판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청계산 올라가는 길을 표지판이 알려주고 있다.
표시해 준 길만 따라가면 됩니다.
1월 날씨치고는 퍽 포근한 날입니다.

산은 부드러운 육산이어서 날씨가 맑은 가을 산행에는 최적일 듯싶다. 지금은 한겨울철이지만 오늘같이 포근한 날씨에 양지바른 길은 녹아서 질척거리고 응달진 곳은 미끄러운 얼음이 아이젠을 벗을 수도 없게 한다. 평지와 급경사가 몇 차례 반복되는 길을 올라간다.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중간에 작은 봉우리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바라보니 동쪽에 백운봉과 동북쪽에 용문산의 정상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국수역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난 11시 30분,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왔는데 그 거리가 겨우 3.8km, 곧 형제봉이 나타난다.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고 2.2km 전방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 청계산 정상을 향해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첫 번째 형제봉에 도착했습니다.

급경사로 이어지는 길을 40여분 올라가니 12시 20분, 드디어 658m 청계산 정상이다. 꾀나 넓게 평평히 다듬어진 정상에는 정상석이 두 개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조그마한 오석으로 또 하나는 커다란 흰 돌로 북쪽과 서쪽에 세워놓았다. 

 

먼저 올라온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양지쪽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점심을 먹는다. 사진을 몇 컷 찍고 한 바퀴 돌며 멀고 가까운 경치에 도취된다.  정상부근의 경치도 동쪽과 서쪽은 판이하다. 한낮의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는 동쪽 비탈의 나무들은 벌써 새봄을 기다리며 가지에 새움이 돋아나게 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데, 서쪽 비탈의 나뭇가지들은 아직도 그 가지에 하얀 상고대를 둘러쓰고 한 겨울의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러나 나무들은 그들이 서 있는 위치를 원망하지 않는다. 봄을 조금 늦게 맞을 뿐이고, 겨울 추위의 고통을 조금 더 길게 인내할 뿐이다. 서쪽 응달에 있는 나무들도 동쪽 양지의 나무들처럼 일 년에 한 번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더 천천히 단단하게 자라서 더 귀한 곳에 재목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우리도 햇볕이 밝은 곳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펴 놓는다. 보온병에서 따르는 따끈따끈한 오미자차와 잣죽, 검을 깨를 입힌 주먹밥에 약식과 빵, 찐 고구마에 야콘, 농익은 홍시, 쑥 인절미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에 집에서 담근 오디술, 복분자 술, 노간주나무 열매 술, 거기다 위스키까지. 준비해 올 음식을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술과 음식을 준비해 왔다. 

모두들 아직은 힘들이지 않고 잘 올라왔습니다.
내려다보는 경치가 어때요?
정달화 동문 두 번째 목표지점 청계산에 올라왔군요.

모두들 이렇게 정성껏 준비해 준 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며 기분이 좋아 얼큰하게 취할 정도로 마시며 포식을 했다. 하산길은 다시 형제봉을 거쳐, 부용산을 지나 양수리로 잡았으니 올라온 길보다 내려갈 길이 훨씬 멀다. 1시쯤 일어나 하산을 시작한다.

 

형제봉까지는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길이지만, 형제봉에서 부용산으로 향하는 길은 표지판을 보고 따라간다. 경사진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포장도로 위에 녹다 다시 얼어붙은 눈 위를 걷는 우리들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마치 대 부대의 행군 시에 들리는 소리처럼 사각사각 사각사각 요란하다.

 

임도에서 다시 좁다란 등산로를 따라 부용산을 오른다. 658미터의 청계산 정상에서 2 시간 가까이 내려왔다가 다시 366미터의 부용산에 오르는 길은 왜 이리도 힘이 드는가? 진땀을 뺀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오후 3시 40분 드디어 부용산 정상에 섰다.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하여 부용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부용산 정상은 어떤 집안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넓은 평지가 있고,  그 앞 언덕 끝에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을 설치해 놓은 넓은 전망대도 세워져 있다. 묘역에 앉아 쉬다가 망원경에 눈을 붙여보니 두물머리와 강 건너 검단산도 눈앞에 다가온다.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니 조금은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다시 하산길을 서두른다.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목표인 부용산 정상입니다.
김명환 동문 등산화 끈을 조이는 동안 잠깐 쉬었다 갑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에 합쳐진다.
산 따라 강 따라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오손도손 살아갑니다.
형제봉, 청계산 그리고 부용산까지 완주하고 만족스런 모습을 하고 있군요!

부용산에서 양수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이제 오르막길은 없다. 내려오는 길에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하계봉을 우회하는 길을 따라 양수리에 내려오니 오후 5시 15분, 6시간 45분의 힘든 산행을 마치는 순간이다. 오르막 길에서 그렇게 힘들던 피로가 내려오면서 다소 회복된 듯 평지를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모두들 점심을 잘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지는 않다고 말했지만, 양수리에서 모교의 선배님이 운영하는 연밭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연잎차의 은은한 향기를 안고 6시 33분발 서울행 전철을 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