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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長岩山과 太靑山)

2009년 12월 23일

鄕愁에 이끌려 달려간 故鄕 山行

 

강감찬 장군과 안중근 의사가 호국정신의 표상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간성을 길러내는 상무대 정문 앞에 서 계신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詩 鄕愁는 내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꿈속으로 이끌곤 한다. 광주에 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상무대)가 우리 마을로 들어와, 고향을 잃게 된 사람들은 서울로, 광주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지도 벌써 15년이 넘게 지났다. 고향이라고 찾아와 봐야 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해버렸으니 꿈에 그리던 옛 고향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저기에 우리가 살던 집이 있었고, 논과 밭은 저기 저기 있었고, 친구들과 고기 잡던 시내가 있던 곳은 저기이고, 마을을 지키고 있던 당산나무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비록 척박한 산골 넉넉하지 못한 몇 마지지 논밭에 목줄을 메고 살던 너나없이 가난하던 사람들이 四寸보다 더 가깝게 情을 주며 살아가던 곳이었고, 우리를 걱정 없이, 욕심 없이 자라게 해 주었던 곳이 지금은 우리 국토를 지키는 병사들의 교육의 전당이 되어 있다.

 

눈 내린 고향 산을 보니 옛 생각이 그립다. 그 시절엔 유별나게 눈도 많이 내렸고, 태청산 골짜기에서 불어닥치던 매서운 눈보라 속을 헤집고 토끼몰이 다니던 일들, 친구들과 사랑방에 모여 생고구마 깎아 먹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의 숙소 및 연병장으로 변한 내 고향마을 모습

지난주 인천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竹馬故友와 관악산에 오르면서 고향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음 주 같이 다녀오자는 약속을 했었다. 우리가 해를 더해 갈수록 고향과 옛 시절을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삶이 한가로워진 여유에서 일까? 아니면 남은 생에 대한 애착? 아무튼 우리는 그 시절의 친구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우리가 함께 오르내리던 長岩山과 太靑山 등반을 겸해서 고향을 방문키로 했었고, 약속한 12월 15일 출발 전에 서울에서 볼 일이 있었던 친구가 출발하기로 한 오후 1시 30분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승용차로 왔다.

 

오늘은 영광군 묘량면 월암리에 사는 친구의 동생집에서 쉬고, 16일은 長岩山(482m)과 太靑山(593m)을 그리고 17일은 佛甲山(516m)을 오르기로 계획을 세웠다. 3박 4일 일정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달려가는  고향길은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뚫려있었다. 근래 겨울 날씨치고 퍽 따뜻하다 싶더니, 어젯밤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오늘은 한 낮인데도 기온은 영하 5도로 금년 들어 첫추위다.

 

오후 5시 가까이 되어서 도착한 영광읍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시장에서 친구는 돼지고기 몇 근을 뜨고, 말린 생선과 새우젓에 모싯잎 송편까지 한 보따리를 사는 동안 흐리던 날씨에 어둠이 더 일찍 내려와 조용하던 시골길을 더 적막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난 후 경섭이네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다.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는 어두운 길을 달려 친구의 동생집에 도착하니, 혼자 살고 있는 동생이 미리 연락을 받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직장에 다니는 아직 미혼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가 광주에 나가 있어서,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하다며 금방 저녁상을 마련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소 몇 마리를 기르고 있어서 농한기에도 불편한 대로 두 집 살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동생이 금방 송아지가 태어났다고 좋아한다. 우리도 반가워서 카메라를 들고 우사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장암산에 오르기 전 마을 뒷산에서 촬영한 내가 살던 집이 있던 곳, 마을 앞 저수지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6일 아침 늦은 조반을 먹고, 10시 30분 임도를 따라 장암산 정상 가까이 까지 갈 수 있다고 하여 배낭에 먹을 것들을 대충 챙겨서 길을 나섰다. 골프장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어서 상무대 후문 쪽으로 가서 우리들의 고향마을 여기저기를 사진에 담았다. 골프장을 한 바퀴 승용차로 돌아 나오면서 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한다.  11시 40분쯤 차를 골프장 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서 산행을 시작할까 생각했지만, 태청산까지 완주하려면 아무래도 5시가 지나서 하산하게 될 듯하여 어두워질 것을 대비하여 승용차로 임도 종점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마을과 논, 밭은 이렇게 군인들의 숙사와 연병장이 되어있다.
어린 시절 꿈에도 생각 못했던 곳에 골프코스가 들어서 있다.
장성군 삼서면에서 영광군 묘량면으로 넘어가던 사동재에는 클럽하우스와 주차장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이 해동제, 고향마을 천수답의 목마름을 적셔주던 저수시설이었다.

 

12시 15분 임도 종점에 차를 세워두고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에 올라가니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멋진 팔각정을 지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의 쉼터를 겸한 이륙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하다. 다시 반대편의 장암산 정상에 오른다. 여기에 서면 靈光郡의 넓은 들도 시원스럽게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高廠郡의 들판과 멀리 칠산바다까지도 볼 수 있던 곳이다.

임도 종점에서 올려다 보이는 장암산 정상의 팔각정(장암정)
패러글아이딩 이륙장에는 이런 안내문도 부착되어 있다.
장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40년도 더 지난 세월을 건너 이곳에 올라오니 마당바위(너럭바위)는 그대로인데, 그때 없던 장암정이 나를  맞이한다. 만세! 만세! 만세! 어린 시절의 나를 항상 포근히 감싸주고 힘과 용기를 주던 그 산에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다시 돌아왔다. 12시 40분 장암산 마당바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어서서 태청산 정상을 향해 장암산 능선을 따라 4.2 km의 길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작은 마치까지는 평지와 다름없이 걷기 좋을 만큼 낙엽이 쌓여 있는 토산이다.

 

작은 마치를 지나 마치까지는 수월한 길이지만, 마치에서 태청봉까지는 급경사가 이어지는 힘든 코스이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보니 두 사람의 휴대폰이 모두 사용 불능이 되어버렸다.  군사시설 때문에 전파 방해를 받고 있어서 인지 모른다. 시간을 모르니 서두를 수밖에 도리가 없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올라 다시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부지런히 사진만 몇 장 찍고 되돌아 내려오면서 그제야 허기를 느꼈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모싯잎 떡과 홍시를 두 개씩 먹으니 밥생각이 없어 준비해 간 도시락은 그대로 두고 약주만 두 잔씩 마시고 일어섰다. 약주 덕분에 뱃속이 따뜻하고 다리에 힘이 솟는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올라 앉아 놀던 마당바위(너럭바위)에는 전설도 많았다.
마치에서 태청봉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가 700여 미터나 계속된다.
태청산 정상(593m)
태청산 정상에서 촬영한 상무대의 일부 (내 고향마을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
태청산 정상에서 직선거리 80리라는 광주의 무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맑은 날은 무등산 아래의 하얀 건물(조선대학본관)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오늘은 무등산 아래 아파트들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태청산 정상에서 뒤로 내가 지나온 장암산이 멀리 보인다.
누군가 조상의 묘를 찾아가는 길목에 푯말을 세웠지만 한쪽 귀퉁이가 파손되었다.
뒤에 영광군 대마면과 고창군 대산면쪽이 보인다.

 부지런히 되돌아와 차를 세워 두었던 임도 종점에 도착하니, 아직도 저무는 해가 한 뼘 정도 남아 서해 바다 위에 걸려 화려한 모습으로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천히 내려와 동생네 집에 내려오니 광주에서 친구의 제수씨가 와서 저녁으로 팥죽을 끓여 대접한다. 저녁 식사 후 목욕도 할 겸 광주로 나와서 잠을 자고, 내일은 불갑산행을 하기로 했다.

 

17일, 아침에 일어나니 밤사이 내린 눈이 발목을 덮을 정도인데, 오늘 오후부터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다. 불갑산에 오르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지만, 내일 눈 쌓인 고속도로를 올라갈 걱정이 태산 같다. 조반을 먹으면서 우리는 오늘의 산행을 접고 바로 상경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조반을 마치고 부랴부랴 상무대 정문 앞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마을을 떠나면서 조성한 망향의 동산에서 사진도 남겼다.  좀 더 쉬다가 점심을 먹고 가라는 친구의 만류에도 눈이 내리기 전에 떠나야 한다며 출발을 서둘렀다. 섭섭해하는 친구는 기어이 자기가 수확한 단감을 한 박스씩 차에 실어주었다. 

 

상무대 정문 앞에 조성한 망향의 동산에서 기념 촬영
여기 선친의 함자 뒤로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나의 아명은 휘재였었지.
뒤로 보이는 산이 어제 올랐던 장암산이고, 마치 오른쪽에 태청산이 이어진다.
뒤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태청봉이다.
마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장암산, 오른쪽이 태청산이다.

돌아오는 길은 적설량이 적은 경부고속도로를 택한 것이 다행이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다음날 전화를 하니 어젯밤 적설량이 30cm가 넘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한 2박 3일의 고향 산행과, 고향마을 앞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던 즐거움이 좋은 추억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