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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頭陀山)

2016년 8월 23일

 "너 자신을 알라!"

8월의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두타산행에 나섰다. 김명환 교수와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왔던 산행을 차일피일하다 오늘에야 결행하게 되었다. 더위를 조금 비켜서 출발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김 교수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러다 또 언제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내가 우겨서 무리하게 더위가 한창인 때 출발을 하게 되었다. 

 

8월 17일 밤 11시 25분 청량리역을 출발한 무궁화호에 올라 자리를 찾자마자 새벽 일찍부터 산오름을 대비하여 곧바로 잠을 청했으나,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잠이 들만하면 도착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잠을 깨우기 일쑤여서 토끼잠으로 겨우 두세 시간이나 잤을까? 열차는 예정된 시간대로 새벽 4시에 우리를 동해역에 내려주었다. 

2016년 8월 18일 새벽 4시의 동해역사 모습

도착하면 역 앞 식당에 들러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날이 밝아지면 택시로 매표소 입구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할 요량이었지만, 아직 식당 문은 열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불이 밝혀진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집에서 준비해 온 쑥떡으로 산행에 대비하여 뱃속을 간단히 다독여주고 이내 택시를 잡았다.

무릉반석
두타산 삼화사의 일주문

새벽 5시 15분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매표소 입구를 지나 무릉계곡의 다리를 건넜다. 날이 밝아올 무렵 무릉반석을 보면서 삼화사 일주문을 지나니 다시 다리 건너에 삼화사(三和寺)다. 사진은 하산길에 찍을 생각으로 그냥 지나쳐 올라가니 길 가에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대(鶴巢臺) 안내판에 옛 시인의 시(詩)와 함께 세워져 있다.

 

맑고 시원한 곳에 내 배 띄우니

학 떠난 지 이미 오래되어 대(臺)는 비었네.

높은데 올라 세상사 바라보니

가버린 자 이와 같아 슬픔을 견디나니.     -최윤상-

이 시를 쓴 최윤상(1810~1853)은 일찌기 이 부근에 은거하며 삼화에 집을 짓고 살면서 복숭아나무 1만주를 심고 살았기 때문에 그곳이 마치 무릉도원과 같다하여 그 집을 '무릉정'이라 했다고 한다.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바위 학소대(鶴巢臺)

매표소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무릉반석과 삼화사를 지나고 학소대를 지나는 동안 무릉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비교적 평탄한 길을 1시간가량 걸으면 산성 갈림길이다. 아침 산속의 맑은 공기와 물소리 새소리에 햇살도 아직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갈림길에서 두타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우리의 체력을 시험하기 시작한다.  

두타산성 안내표지석 신라 때의 성터이며 임진왜란 때 왜병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산성 갈림길에서 두타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초입에서부터 바로 급경사가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깔딱 고개다. 숨차게 그 급경사를 올라가던 중간쯤에 5, 6명은 넉넉하게 쉬어 갈 만한 넓은 바위가 있고, 그 바위틈에서 자란 잎이 푸른 한 그루의 소나무를 본다.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음직한 소나무다. 산행 중에 가끔은 이런 소나무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좋은 스승을 만난 듯, 자랑스러운 친구를 만난 듯 기쁘면서도 반갑고,  또한 경애(敬愛)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 어쩌다 바람은 솔 씨 하나를 이런 곳에 떨어뜨려 싹을 틔우게 하고, 또 그 어린싹은 물 한 방울 빨아올릴 수 없는 바위틈에서도 말라죽지 않고 자랄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을 바람에 섞여 날리는 흙먼지를 받아 모아 바위틈의 뿌리를 덮고, 이슬과 빗물을 받아 적셔가며 힘들게 버티어왔을 것이다. 이런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지금은 당당한 모습으로 푸른 잎을 피워내는 여유로움마저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그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땀에 젖은 윗옷을 벗어 짜 그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옷이 다 마를 때까지 쉬면서 이 소나무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의 좋은 스승과도 같고 자랑스러운 친구와도 같은 바위 위에서 잘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강인한 소나무를 경애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다.
내 친구 소나무가 있는 두타산 중턱에서 바라본 절경
내가 본 두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다.

787 고지와 산성터, 분기점을 통과하여 정상에 도착할 동안 우리는 너무 힘이 들어 체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두타산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을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젊지 않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젊다고 착각한 것이다. 근래에도 산행에서만은 늘 스스로를 아직 젊다고 생각해 왔었다. 7, 8년 전에는 지리산의 성삼재에서 대원사까지 42킬로미터가 넘는 코스를 1박으로 24시간에 종주했고, 50 센티미터의 적설량에도 한라산의 성판악에서 관음사까지를 주파했는가 하면,  남설악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신흥사까지도 13시간에 주파했던 기억들만 간직하고, 그간 우리들 사이를 흘러가버린 세월은 잊고 있어서 간직하고 있던 추억들이 늘 엊그제 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병이었을지도 모른다.

2016년 8월 18일 12시 08분, 우리는 드디어 두타산 정상에.섰다.
1,353 미터를 그대 덕분에 즐겁게 잘 올라왔습니다.

 

2016년 8월 18일, 오늘의 인증 샷
나무는 분명 도토리나무인데, 이런 꽃을 피우다니?
꽃들도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늦어도 10시에는 도착했어야 할 두타산 정상에 우리는 2시간 이상 늦게 도착했다. 1,353 미터의 두타산 정상은 꾀나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해왔던 그 많은 산행 중에서 오늘처럼 힘든 산행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늘의 이 고행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늘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3.7 킬로미터가 남은 청옥산행은 아예 포기하고 중간의 박달재에서 용추폭포와 쌍폭포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두타산 정상의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2시간가량의 수면 보충으로 휴식을 취했지만, 아픈 다리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청옥산으로 가는 중간에 박달재가 우리의 하산 지점이다. 이 길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작은 돌들이 많아서 미끄러운 것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목은 타는데 준비해 간 물이 소진되었다. 용추폭포까지 내려가기 전에 계곡의 물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다면 이만큼 반가울까? 두타산성에서 말려 입었던 상의는 다시 젖었고, 목은 타지만,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뛰다시피 계곡으로 내달린다. 

심산유곡에 우리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흐르는 물을 받아 마시고, 물속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8시간 코스를 13시간 걸려 매표소 앞 주차장에 내려왔다. 버스로 귀경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너 자신을 알라"는 철인의 말을 되씹어보면서 서두르지 않고 느긋함을 실천하는 것 또한 젊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두타산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