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일정
7월 14일 오전 7시 40분 인천공항 출발 - 후쿠오카(福岡) - 유후인(由布院) - 벳부(別府) - 1박
아소(阿蘇) - 야나가와(柳川) - 후쿠오카(福岡) - 겐카이(玄海町) - 1박
아리타(有田) - 우레시노(嬉野市) - 후쿠오카(福岡) 에서 다시 인천 도착 코스.
-여행을 떠나면서-
일본은 현재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두 배 이상 되는 잘 사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하여, 모든 면에서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기에 바쁜 나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식민통치로부터 국권을 되찾고, 다시 국교를 정상화 한 지 50년이나 지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미국과 함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거리상 비행기를 타면 1시간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나라이지만, 그러나 어쩐지 아직도 먼 나라로만 느껴지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런 나라에 난생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첫째 날, 7월 14일 오전 7시 40분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우리 비행기는 정확히 1시간 만에 후쿠오카(福岡)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밟아보는 일본 땅. 천 년 전부터 왜구(倭寇)들은 우리 선조를 무수히 괴롭혔고, 450년 전에는 7년 동안 우리 국토를 초토화했던, 그리고 100여 년 전에는 낭인들을 시켜 우리의 국모를 시해하고, 마침내 국권을 강탈하여 35년 이상 우리 땅을 식민지화했던, 역사적으로 수없이 우리 조상을 괴롭혔던 자기 조상의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우겨대며, 남의 나라 영토를 자기 땅이라고 생떼를 쓰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과, 한류에 열광하며 정신 못 차리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땅에 내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본을 상징하는 듯, 공항 입국장에 세워진 얄궂은 모습의 신상이다.
-후쿠오카(福岡)에서 유후인(湯布院)으로-
후쿠오카(福岡)는 규수(九州) 최대의 도시로 일본 전체적으로도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에 이어 일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서쪽으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북으로는 시모노세키 해협(下關海峽), 서쪽으로는 쓰시마 해협(對馬海峽), 남쪽으로는 아리아케 해(有明海)와 접해 있으며, 1963년 모지(門司), 고쿠라(小倉), 도바타(戶畑), 야하타(八幡), 와카마쓰(若松) 등 5개 도시가 합병되어 종합산업도시인 기타큐슈(北九州)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 24명을 2박 3일 동안 안내할 여행사 직원은, 40대 중반쯤 되는 우승희 씨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공항 청사 밖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탑승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첫 행선지인 유후인(由布院)으로 향한다. 이 지방에 엊그제부터 내린 폭우로 고속도로의 통행이 전면 차단되어서 어쩔 수 없이 국도와 지방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나라는 지진, 해일, 폭우와 폭설에 의한 재난이 자주 일어나서 국민이 큰 불평 없이 통제와 제제에 절대 순응하는 편이란다. 질서를 잘 지키는 것도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훈련되었다는 것이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국도와 지방도로를 달리는 동안, 역시 그 길도 곳에 따라 도로가 차단되고, 상류에서부터 불어난 물줄기에 강의 범람이 우려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지나온 지역에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여, 수십 채의 가옥이 파손되고, 사망자가 26명이나 된다는 보도를 다음 날 아침 T. V.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엄청난 재난 지역을 우리는 불과 몇 시간 전에 통과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의 무서운 힘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후쿠오카(福岡) 공항에서 유후인(由布院)까지 고속도로를 통해 가다가 중간에서 점심을 먹고 약 4시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고속도로가 전면 차단되는 바람에 또, 국도와 지방도로 빠져 중간중간에 전면 차단된 곳이 있어서 이리저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 6시간이 소요되었다.
공항을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히타(日田)라는 마을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소고기 구이에 쌀밥과 된장국이 나오는데 불고기(燒肉)라는 메뉴다. 소고기의 질이 한우와 비슷해서 맛이 괜찮았다. 1인분이 200그램이었는데 양도 우리나라 식당보다는 많았다.
-유후인(由布院)에서 벳부(別府)로-
히타(日田)에서 점심을 마치고, 오후 1시 30분쯤 출발하여 유후인(由布院)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쯤. 아직도 비는 오락가락하면서 여기저기 도로 위에 토사가 밀려와 교통을 차단한다. 유후인(由布院)에서는 첫 번째 관광코스가 긴린코(金鱗湖) 호숫가를 산책하는 것이라는데, 호수 쪽으로 가는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비 오는 시내를 관광하는 것으로 이곳 일정은 마무리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호수 바닥에서 찬 샘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솟아나 수면 위로 물안개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긴린코(金鱗湖) 호숫가를 가족이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추억을 남겼을 것을, 아쉬움을 안고 거리의 기념품 가게 앞에서 사진을 몇 장 남기는 것으로 유후인(由布院)의 관광을 마치고 벳부(別府)를 향한다.
유후인을 한자로 표기할 때 由布院, 또는 湯布院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유후인(湯布院)의 옛 이름은 유후고(柚富鄕)였는데 이것은 나무껍질로 목면을 만들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에도시대에 조세로서 거둬들이던 곡물창고가 건립되면서 유후인(柚富院)이라고 불리다가 1955년 인근 마을 유히라(湯平) 마을과 행정합병되면서 유후인(湯布院)으로 명칭이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벳부(別府)의 지옥온천 체험-
오후 2시 반이 되기 전에 벳부(別府)에 도착했다. 온천에 지옥이란 말을 붙여 쓰는데, 이곳의 지옥(지고쿠)이란 지하 250-300m에서 100'C 전후의 열탕과 분연(噴燃)이 솟아나는 것이 마치 지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노하나(온천의 꽃) 유황재배지를 둘러보고, 안내자가 이르는 대로 볏짚 움막에서 화장품과 약용으로 생산된 유황을 손등에 조금 바르고, 온천수에 씻어보니 신기하게도 살갗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진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마토지옥을 둘러보고, 음용온천수를 직접 마셔본다. 족욕체험을 한 후, 온천수에 삶은 달걀을 먹기도 한다. 오후 5시 반쯤, 현해탄과 이어지는 벳부만과, 벳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벳부 풍월호텔에 투숙하여, 호텔의 노천탕 온천욕체험 후, 저녁 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제공하는 다다미 방에 각자 한 상씩 차려놓은 일본식 성찬으로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째 날 밤을 맞았다.
-활화산 아소산 분화구로 가는 길-
제2일째, 7월 15일 아침 5시쯤 일어나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T. V. 뉴스를 보면서 어제 우리가 지나온 강이 범람하여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희생자도 26명이나 된다는 것을 자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6시부터 개장하는 온천에 내려가 다시 온천욕을 즐기고, 조반을 뷔페식으로 마첬다.
8시 묶었던 풍월 호텔을 나와 아소산 분화구를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여 출발하려는데, 호텔의 여직원들이 호텔 문 앞에 정렬하여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를 환송한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답례를 표했는데, 그들은 우리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안내원이 말해준다. 자기 고객에 대한 그들의 깍듯한 예의는 그들만의 장점인지?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경영자의 상술에 의한 틀에 박힌 행사인지? 그 뒤에도 우리가 단체로 들른 상점에서는 어디에서나 똑같은 전송을 받았다.
아소산(阿蘇山)은 해발 1,592m로 구마모토와 오이타현에 걸쳐 있으며, 산 정상의 분화구는 남북 약 1km, 동서 약 400m의 화구가 연기를 내뿜고 있다. 넓은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소산(阿蘇山)으로 가는 길 옆으로 쿠사센리라는 평원이 펼쳐지는데, 마치 유럽의 알프스산을 오르는 길처럼 아름답고, 넓은 목장에는 살찐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쿠사센리는 말 그대로 "천리에 걸쳐 넓게 펼쳐진 초원지대"이며, 고메즈카는 아소산 곁에 있는 정상에 분화구가 둥그렇게 움푹 파인 산인데, 아소산 산신이 쌀을 저장하던 창고로 사용했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올라가는 길가에 돌을 높이 쌓아 천황이 다녀갔다는 비를 세워놓았다. 그때 보좌했던 신하가 쿠사센리를 설명하니 천황이 "아 그런가(阿蘇)"라고 말해서 아소산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말은 안내원들이 만들어낸 죠크가 아닐는지?
오전 10시 40분쯤 아소산 분화구에 올라가는 로프카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오락가락하던 장맛비는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산 정상을 향해 불어주고 있어서, 비 온 뒤의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전혀 7월의 더위를 느끼지 않게 한다.
차례를 기다려 로프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우승희 안내원은 우리는 무척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며, 만일 바람이 반대방향에서 불었다면, 정상의 분화구는 폐쇄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던 관광객도 대피소에서 대기하다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분화구를 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분화구를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유독가스가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다행히 바람을 등지고 올라가, 아소산의 여러 분화구 중 유일한 활화산의 화구에서 옥색의 유황수 위로 엄청나게 뿜어내고 있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내려올 때는 로프카를 타지 않고, 다른 휴화산의 분화구와 옛날 용암이 흘러내렸던 흔적을 보면서 약 30분이 소요되는 길을 시원한 바람을 안고 걸어서 내려왔다.
-야나가와 뱃놀이-
아소산 분화구를 내려오다가 점심을 먹은 곳은 원숭이 쇼를 하는 극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 원숭이가 한국의 T. V. 에도 출연하여 유명하다는 것이다. 점심은 일본식 주먹밥에 가락국수(우동)를 함께 먹는 간단한 식사였다.
식사 후 12시 40분쯤 출발하여 약 1시간 30분을 달려 야나가와(柳川)에 도착한다. 이곳은 수상도시인 이태리의 베니스에서 곤돌라를 타고 도시를 돌며 관광을 하는 것처럼, [돈코부네]라는 작은 보트를 타고 마을 사이에 있는 수로를 한 바퀴 돌아오는 관광 코스인데, 중간중간 수로 위에 놓인 다리 밑으로 보트가 지날 때는 관광객들이 머리를 숙여야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 흐르는 수로는 폭이 가히 넓지 않다. 사공이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우리 일행 중에서도 젊은 친구가 답가로 '비 내리는 호남선'을 흥겹게 불러 모두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춰 40여분 동안의 뱃놀이가 지루하지 않았다. 주변의 가옥들은 옛날 전통가옥 그대로다. 이 마을에는 장어구이나 장어덮밥이 유명하다는데, 이 수로에서 잡히는 장어가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캐널시티 하카타 자유관광, 모모치 해변공원-
캐널시티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재개발 프로젝트로 1996년에 새워진 현대식 도시이다. 쇼핑몰, 영화관, 공연극장, 호텔, 오피스 등 다양한 형태의 업종과 시설들이 남북으로 흐르는 운하를 중심으로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서 1시간 가까이 자유관광시간을 주어 각 가족들끼리 저녁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거나 취향에 맞는 관광을 하도록 했다.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식당가로 가서 장어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가격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다.
우승희 안내원의 제안에 따라 내일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씨사이드 모모치 해변공원 관광을 오늘 소화시키기로 하고, 달려간 곳은 유명한 제일교포인 손정의 씨가 구단주로 되어 있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의 홈 돔구장이 있는 곳이다.
돔구장의 지붕을 한 번 열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 600억 원이라니 우리나라에서도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돔구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돔구장 가까운 곳에 일본 제일의 해변타워인 후쿠오카 타워가 높이 솟아 있고, 하카타만에 접해 있는 인공 해변공원은 약 2.5km의 흰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있다. 1시간쯤 관광을 마치고, 오늘의 휴식처인 겐카이 로열 호텔을 향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현해탄을 바라보면서 한적한 일본 농촌 시골길을 달렸다.
일본 제일의 해변 타워인 후쿠오카타워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3대 도자기 마을 아리타
제3일째 - 겐카이 로열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조반을 마치고, 아리타(有田)의 도자기 마을을 향해 아침 8시 반 호텔을 출발할 때도 호텔 직원들은 호텔 문까지 나와 도열하여 손을 흔들어 우리를 환송한다.
호텔을 나설 때는 비가 올 것 같지 않던 날씨가 아리타(有田)에 도착할 무렵부터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정작 차에서 내려 언덕 위에 있는 신사에 들리려니 장대비가 그칠 줄 모른다. 모두 우산을 받쳐 들고, 1658년에 세워졌다는 도산신사를 향한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신사의 정문 격인 토리이(鳥居)가 세워져 있는데, 도자기의 마을답게 이 토리이를 도자기로 만들어 세웠는데, 이것이 지금은 아리타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도산신사의 주신은 천황이지만, 신사 주변에 있는 비석이나 자기로 만들어 세워진 상을 볼 때, 부신으로 배향된 [이삼평]을 위하여 신사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잡혀온 도공이다. 그에 의하여 아리타지역의 이즈미야마에서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양질의 도석이 발견되고부터,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일본 도자기 공예의 시작이 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자세히 둘러볼 여유가 없어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내려와 도자기 전시장을 구경하는데, 전시된 도자기의 높은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11시 40분쯤 우레시노(嬉野)를 향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우레시노의 오차 노무라-
우레시노(嬉野市) 오차노무라로 이동하다가 중간에서 점심을 먹는다. 두부전골에 밥과 된장국, 그리고 생새우가 나왔다. 생새우는 비릿하여 두부전골에 넣어 익혀 먹으니 먹을만하였다.
점심 후 오차노무라로 달리는 차창 밖으로 농촌의 풍경 속에 잘 다듬어진 녹차밭이 많이 보였다. 오후 1시쯤 오차노무라에 도착하여 녹차의 재배와 생산의 역사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과 녹차의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러 가지 녹차의 시음도 하고, 상품 구매의 시간을 거쳐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남장원을 향한다. 역시 이곳의 종업원들도 우리 버스가 떠날 때 손을 흔들어 환송한다.
-남장원-
후쿠오카현 카스야군 사사구리에 있는 고야산진언종파의 절로 1994년 청동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가 열반상 청동와불상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참배객이 들린다고 한다.
안내원 우승희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에 불교가 번성할 때, 국가에서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를 했던 것과 비슷한 사찰 철폐가 있었는데, 일본 전역에 있던 108개의 사찰 중 80개의 사찰을 보존하고 나머지를 철폐시켰다고 한다.
철폐된 28개 사찰의 흙을 신도들이 얼마씩 가져다 자기 집에 보존하였던 것을 이 남장원이 건립될 때, 신도들이 보존했던 그 28 사찰의 흙을 이 사찰에 모음으로 옛날의 28개 사찰이 다 복원된 것으로 생각했다. 신도들이 전국 사찰 순례를 하면서 전국의 80개 사찰순례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 남장원을 순례하면 108개 사찰순례를 마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108개의 사찰은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며, 신도들의 108개 사찰순례는 모든 번뇌를 잊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순례자들이 청동 와불의 발 바닥을 만지면 복을 받게 된다는 속설에 관광객들도 그렇게 흉내를 낸다고 한다.
-다자이후텐만구-
후쿠오카현 중부의 다자이후 시에 있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이다. 넓은 정원에 매화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다른 지역보다 매화꽃이 먼저 피어 매화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연간 100회 이상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오후 6시쯤 공항으로 이동하여 가깝고도 먼 나라, 주마간산(走馬看山) 2박 3일간의 짧은, 그러나 무엇인가 생각해야 할, 일본 관광여행의 일정을 마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