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4일 (목요일)
오늘은 경기 5악 중에서 개성의 송악산을 제외하고는 마지막으로 가는 화악산이다. 그러나 화악산은 군사시설이 정상 부분 전체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 통제구역으로 되어 있어 갈 수가 없고, 산악인들이 대신 중봉을 주로 오른다고 하여 함께한 친구와 나도 그 길을 택했다.
아내가 마련해 준 음료수와 간식을 배낭에 챙겨 넣고, 7시에 상봉터미널에 도착하니 친구가 먼저 와 있었다. 4,700원짜리 차표 두 장을 샀다. 7시 10분에 출발하는 가평행 버스에 올라, 구리, 남양주, 마석을 거쳐 물안개가 자욱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청평을 지나고 가평에 도착한 것이 9시 10분. 다시 가평에서 북면 관청리까지 가야 하는데, 하루 4회 운행하는 공용버스가 11시에 있단다. 2시간 가까이를 터미널에서 기다리자니 너무 지루할 것 같다.
시내구경이라도 하자며 가평천 강가 뚝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리 밑 그늘에서 냇물 따라 흘러가는 시원한 바람에 시간도 함께 날려 보내고, 시내 쪽으로 들어오면서 시내 북쪽에 유난히 큰 산이 멀리 보이길래 몇 사람에게 산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정확하게 무슨 산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이곳 토박이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우리가 목표로 하고 가는 화악산이 아닌가 하여 물어본 것인데 화악산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터미널 바로 옆 가평 경찰서와 가평 읍 사무소 중간에 영 연방참전비가 서있다.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6.25 때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병사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가평 군민의 이름으로 새워졌는데 각 나라의 참전자 숫자, 전사자, 부상자, 그리고 실종자의 숫자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다시 한번 전쟁의 참담함을 생각하게 하였다.
11시가 되어 다시 가평 터미널에서 관청리까지 2,250원씩을 내고 도마리 가는 공용버스를 탔는데, 달리는 도로 밑에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과, 주변의 경치에 도취되어 한참을 가다가 기사에게 물어보니, 이미 관청리를 지나쳤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내리면서 구경은 잘했지만, 덕분에 40분 걸려 올 길을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셈이 되었다. 오후 7시 20분에 가평까지 가는 막차가 있다는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오늘은 1,450m의 꾀나 힘든 코스를 늦게 오르기 시작하였으니 시간이 빠듯할 듯하다.
관청리 – 용수폭포 – 큰골 – 급경사 – 잣나무 – 중봉의 산행 코스를 적어 들고 들 머리를 찾았지만, 등산로 입구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다. 길 가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에게 길을 물었더니,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있는데, 계곡은 상수원 보호 구역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홍수에 파괴되어 군데군데 끊긴 길을 찾아 올라가는데, 계곡에 흐르는 물이 어찌나 맑은지 실컷 마시고, 올라가면서 먹을 물을 빈 물병에 채워 넣었다. 주말이 아니어서인지, 원래 등산객들이 자주 찾지 않는 모양으로 등산로가 전혀 다듬어져 있지 않다.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헤쳐가며 올라가기를 30분, 벌써 1시가 다 되어 간다. 아침을 간단히 때운 탓인지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허기진 배를 채우지 않으면 탈진할 것만 같다. 물가에 서있는 꾀나 큰 소나무 그늘, 바위에 앉아 그 위로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바위에 누어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그 옛날 李白이 山中問答이란 시를 쓴 곳도 이런 곳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山中問答
問余何意棲碧山 (문여하의서벽산) 무슨 뜻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빙그레 웃을 뿐 대답하지 않으나 절로 한가롭네
挑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이곳은 별천지지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네.
한가한 생각은 마음 한 자락에 접어두고, 용소폭포를 지나 다시 땀을 흘리며 잡초 우거진 숲길을 헤쳐가며, 개울을 몇 번인가 건너, 큰골을 빠져나가니 급경사의 시작인데, 표지판에 중봉이 2km로 표기되어 있다.
자갈 하나 석이지 않은 토산의 75도쯤 되는 급경사를 숨차게 올라가는데, 검으스름한 흙 길은 습기가 많아서 미끄럽기가 말할 수 없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죽어라 하고 40분을 올라가니 능선에 다시 표지판이 있는데 웬걸(?) 중봉까지 2.2km란다. 40분간을 기진맥진하여 올라오고 보니 0.2km를 후퇴한 샘이 되어 버렸단 말인가. 모를 일이라고 서로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비교적 평탄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니 중봉 정상이다.
현재 시간 4시 10분, 정상에 올라보니 누군가 표지석을 쓸어 뜨려 풀숲에 던져버렸다. 왜 그랬을까 하고 내려가 흩어보니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 산 228번지’ ‘표고 1,420m’ 라고 적혀 있다. 지도에서는 1,450m로 표기되어 있는데 30미터의 격차가 있다. 가평군청이나 관계되는 기관에서 바로잡아 다시 새워야 할 것 같다. 중봉 정상 바로 아래에도 통신시설인지 군사시설인지가 새워져 울타리가 둘러쳐 있고, 화악산 정상(1468.3미터)의 군사시설이 바로 옆으로 보인다. 그 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1,436미터짜리 매봉(응봉)이다. 화악산, 중봉, 매봉을 합하여 삼형제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내려갈 시간을 계산해 보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15분쯤 쉬면서 남긴 간식을 먹고,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급경사에서 친구는 말한다. 이 길을 우리가 올라왔단 말인가? 내려가면서 보니 정말 대단한 길을 올라왔다는 탄성이다. 계곡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쉬지도 못하고 관청리에 내려오니 6시 50분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7시 20분 버스를 기다리며 30분을 기다려도 내려오는 버스가 없다. 그제야 114에 문의하여 가평 터미널에 전화를 하니 7시 20분에 올라간 마지막 버스는 종점에서 자고 내일 첫차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도리가 없어 다시 택시회사에 전화를 하니 8시가 넘어서 택시가 왔다. 가평에 도착하니 택시요금 일금 25,000원이다. 9시에 서울행 버스가 있어서 타고 지하철 상봉역에 도착한 것이 10시 40분. 아름다운 풍광에 힘든 산행을 즐거이 마쳤지만, 세밀한 준비를 하지 못한 대가로 비싼 교통요금을 들였다.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