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30일
지난 일요일 한 친구와 운악산에 다녀왔다. 경기 5악 중의 하나인 이 산은 해발 935.5m.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감히 얕잡아 볼 수 없는 산이지만, 웬만큼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미륵바위에서부터 정상까지의 코스는 그야말로 산에 오르는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날은 비가 그친 뒤라서 심한 雲霧 때문에 사진으로 본 빼어난 절경을 제대로 다 감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했지만, 친구들에게 한 번씩 등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8시 30분 상봉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여 청평, 현리를 거쳐 현등사 입구까지, 차를 2번 더 갈아타며 기다린 시간을 합하여 2시간 후인 10시 30분에 운악산 입간판이 서있는 들머리 다리 앞에서 내렸다.
교통비 : 상봉동 – 청평 3,400원, 청평 – 현리 1,350원, 현리 – 현등사 입구 850원, 편도 합계 5,600원.
10시 30분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고, 천천히 10분쯤 걸어서 매표소에 도착, 입장료 1,600원을 내고, 친절한 아주머니 안내원에게서 산행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늬 산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50분쯤 오르니 미륵바위 표지가 있어서 돌아보니 미륵바위의 모습이 휘감기는 雲霧에 가려졌다 나타났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에 미륵바위를 담으려고 한참을 기다려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촬영을 포기하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여기서부터가 이름 그대로 진짜 운악산이다.
와이어로프를 붙잡고 올라가다, 바위 위에 고정시켜 놓은 격자 손잡이와 발판을 의지하며 올라가는 스릴이 도봉산의 그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고, 철 다리를 건너면서, 90도 경사 사다리를 오르며 내려다보는 절벽의 아찔한 모습도 발밑에 흐르는 안개구름 속으로 더욱 아슬아슬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정상 못 미쳐 절경의 바위 위에 수령 수백 년은 될성싶은 소나무 한 그루 푸른 잎을 자랑하고 서있다.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어 서서 만고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그 당당함은 한국 사람들의 기상일지도 모른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오다 보니 벌써 12시다. 배도 고프고 휴식도 취할 겸 여기서 점심을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내가 현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시골 할머니에게서 산 무농약 토마토와 찐 찰옥수수를 꺼내고, 송순주와 안주를 꺼내니, 친구는 찐 돼지갈비와 김밥을 꺼내 놓는다. 푸짐한 점심이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도 개이고, 김밥과 과일점심, 돼지갈비 안주에 송순주를 한잔씩 곁들이니 포만감과 얼큰한 취기에 부러울 것이 없는데, 다만 아직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주변의 경관을 확연하게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간직한 체 사다리를 내려가고 또 올라가며 겨우 정상에 도착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별 보잘것없는 정상이다.
험준한 바윗길을 힘들게 올라가서 보니, 바위 하나 없는 10여 평쯤 됨직한 평지다. 주변엔 키 작은 나무들이 둘려 서 있어서 시야는 트여있다. 한쪽 구석에 작은 정상 표지석이 935.5m를 알려주고 있고, 하산길 표지판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말았다. 입구에서 자상하게 안내해 준 아주머니의 말은 정상에서 절골길로 빠져서 하산하면 현등사 쪽으로 올 수 있다고 했는데, 결과는 전혀 엉뚱한 포천 운주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말았다.
덕분에 산행시간이 길어졌고, 계곡의 시원한 물에서 탁족을 하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했다고 생각하면 이런 걸 轉禍爲福이라고 하던가?
포천군 화현면 운악산 광장 건너편에서 일동에서 광능내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타고 내촌 베어스타운을 지나 광능내에 와서 청량리행 버스를 타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즐거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