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술' 또는 '문답술'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dialektikē technē 에서 유래)
한 가지 사물을 대립된 2가지 규정의 통일로 파악하는 방법.
변증법이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보통의 형식놀리학에서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이므로 이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A는 B이다"이면서 동시에 "A는 B가 아니다"가 되므로 두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변증법은 이 모순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과 대립하는 논리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헤겔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전혀 그러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원래 변증법이 대화술이라는 의미였으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사상이 다른 사람을 상대로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우리는 상대의 입장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가를 논증해야 한다. 즉 상대의 입장에 어떠한 모순이 포함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 입장의 모순을 밝혀낼 수 있다면 상대도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인정하고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상적인 대화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모순율이라는 원리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입장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받아도 결코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는 토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모순율의 인정은 대화를 성립시키는 전제 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대화술로서의 변증법은 본래 형식논리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논리라고는 할 수 없고, 형식논리학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이렇듯 변증법이라는 개념은 헤겔 이전과 이후에 전혀 그 의미가 달리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 그 의미의 변천을 더듬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로 불렀는데, 제논의 변증법이란 바로 토론이나 변론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유일부동이며 불생불멸이라는 자신의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계승해, 이 입장에서 '운동'이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얼마나 자기 모순을 안고 있는가를 논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논의 변증법은 소피스트들에게 와서는 논의를 위한 논의, 반론을 위한 반론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논쟁술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그 적극적 의의를 잃어버린 변증법에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대화술, 문답법으로 훌륭하게 구사한 철학자였다. 그는 아테네 시가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철학적인 문답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어떤 질문을 하여 상대방이 대답하면 그 대답을 찬찬히 짚어보면서 상대에게 모순이 있음을 자각시킴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의욕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한 플라톤은 변증법을 학문의 최고의 방법으로 중요시했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경우 변증법이 실제로 타인과 주고받는 문답 술이었던 데 비해 플라톤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사유방법으로 생각했다. 원래 사상적인 대화는 반드시 실제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찾아 사색할 때는 언제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대로 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 발전은 이처럼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플라톤과 달리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을 학문의 방법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변증법은 통설이나 추측으로부터 출발하여 추론하는 논의로서, 개연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참된 학문적 의의는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사유의 훈련으로서, 참된 인식을 하기 위한 준비의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와 중세를 통해 변증법이라는 말은 단순히 논리학의 일부인 변론술 또는 논리학 자체를 의미했지만, 근세에 이르자 칸트는 이 말에 다시금 중요한 의의를 부여했다. 칸트에 의하면 변증법이란 가상(假象)의 논리학, 즉 참인 듯이 보이는 오류를 비판하는 논리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경험적 세계 즉 현상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며 초경험적인 것, 예컨대 신이나 영혼 등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본래 개개의 판단을 종합, 통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경험을 초월한 무제약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며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칸트는 이 오류를 선험적 가상이라 불렀는데, 이를 밝히고 비판하는 것이 선험적 변증법의 임무이다. 즉 칸트에게서 변증법이란 플라톤과 같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단지 참인 듯한 오류를 비판하는 소극적인 역할로 규정되어 있었다.
변증법에 가장 적극적인 의의를 인정한 것은 헤겔이다. 헤겔은 변증법이 인식의 발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발전 논리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사물은 결국 정·반·합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존재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면, 존재는 적어도 발전의 제2단계에서는 모순적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변증법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즉 변증법은 모순의 실재를 인정하는 모순논리로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수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변증법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면 존재 속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상은 변증법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헤겔은 "만물은 태어나서 유전하며,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사물의 대립"이라고 생각했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 이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의 변증법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유물론과 결합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계승되는데,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모든 존재, 즉 자연이나 사회도 변증법적 구조를 갖고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간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은 자연변증법이며, 사회나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유물사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 [辨證法的唯物論, dialectical materialism]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에서 나온 실재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법(→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유물론은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질 세계가 마음이나 정신과 독립하여 객관적 실재성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들은 심적·정신적 과정의 실재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관념은 물질적 조건의 산물 또는 반영으로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을 관념론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물질을 마음이나 정신에 의존하는 것으로 다루거나 정신이나 마음이 물질에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다루는 이론은 모두 관념론이다. 그들은 유물론적 견해와 관념론적 견해가 철학의 발달사를 통해 화해할 수 없이 대립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철저한 유물론적 접근법을 채택하여 유물론과 관념론을 결합하거나 융합하려는 모든 노력은 혼란에 빠지고 정합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 개념은 헤겔에게 많이 의존했다. 사물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개별 사물을 따로 떼어서 마치 고정된 속성을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처럼 다루는 '형이상학적' 사유 양식과는 반대로, 헤겔의 변증법은 사물을 운동과 변화, 상호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고찰한다.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과정 속에 있고 이 과정에서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사물은 변하고 결국 지양된다. 모든 사물은 자기 안에 서로 모순되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측면들 사이의 긴장이나 갈등이 변화의 추진력이고 결국 그 사물을 변형하거나 해체한다. 그러나 헤겔이 변화와 발전을 자연과 인간 사회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세계정신 또는 이념의 표현으로 생각한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화와 발전을 물질세계의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헤겔처럼 어떤 '변증법 원리'에서 사건의 실제 경로를 연역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 원리를 사건에서 추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인식론은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나온다는 유물론적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주어진 감각 인상만을 인식의 근거로 삼는 기계론적 견해와는 달리, 그들은 실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얻는 인식의 변증법적 발전을 강조했다. 사람은 사물과 실천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관념을 실천에 알맞게 형성함으로써만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관념과 실재의 일치 즉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은 사회적 실천뿐이다. 이러한 인식론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모습만 인식할 수 있을 뿐 물자체는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다는 주관적 관념론에 반대하고 우리가 초감각적 실재를 감각과 독립된 순수 직관 또는 사유로 인식할 수 있다는 객관적 관념론에도 반대한다.
추론방법의 이론적 기초인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유물론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본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고 주로 논쟁과정에서 그들의 철학적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