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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서양철학

개요

19세기의 철학은 주로 대학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밖에서 일류 철학자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국립철학학회, 좁은 범위의 전문 잡지 등 전문화를 매개하는 요인들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철학자들은 전문용어를 채택하고 전문문제를 다루며 광범위한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글을 쓴다. 철학적 마르크스주의와 몇몇 개별 철학자를 제외하면 현대 철학의 주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논리 실증주의와 언어분석을 2가지 주요분야로 가지고 있는 분석철학이고, 둘째, 실존주의와 현상학을 2가지 주요분야로 가지고 있는 대륙철학이다.

앙리 베르그송(1859~1941), 존 듀이(1859~1952),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는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20세기 전반의 가장 중요한 3명의 사변 철학자로 불렸다. 프랑스인 베르그송과 미국인 듀이는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정신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도구로서 진화했고, 따라서 인간의 정신기능은 주로 행동의 공리적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베르그송과 영국인 화이트헤드는 제각기 현실은 강처럼 흐르는 것이며 궁극적 실재는 유동적·역동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 3명의 철학자는 철학이 특별히 서로 다른 일을 한다고 보았다. 철학관으로 볼 때 베르그송은 직관적이었고 화이트헤드는 사변적이었으며 듀이는 실용주의적이었다. 베르그송은 전혀 다른 2가지 인식방식을 구분했다. 하나는 과학의 인식방식인 분석의 방법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대상과 인격 속으로 몰입하여 그것들과 하나가 되는 지적 공감인 직관의 방법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형이상학의 모든 기본 진리는 철학적 직관에 의해 파악된다. 이러한 직관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깊은 자아를 인식할 뿐 아니라 세계의 신비한 창조 요인인 생명의 정신도 인식한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철학은 1차적으로 형이상학이며 "우리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할 수 있도록 일반 관념들의 정합적·논리적·필연적 체계를 짜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아주 폭넓고 일반적인 이해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조망하려는 시도였으며, 이러한 이해력은 그의 위대한 3부작 〈과학과 근대세계 Science and the Modern World〉(1925)·〈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1929)·〈관념의 모험 Adventures of Ideas〉(1933)이 지향한 목표였다.

듀이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윤리학·형이상학·방법론 분야를 지배했다. 그는 모든 지식 형태의 통일성과 상호연관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윤리적·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도 과학적 판단과 똑같이 주장의 근거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철학은 전문적인 자부심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지향해야 한다. 듀이는 의식적인 지적 개입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주공동체의 목표를 밀고나가기 위한 계몽된 대중행동의 지침으로 사회문제에서 새로운 '실험주의'를 제안했다.

 

마르크스주의 사상

19세기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기본틀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의 철학적 주장에 의해 보강되어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에서 모든 철학활동의 출발점으로 쓰였다. 사회세계가 대립물의 성장소멸을 통해 진보한다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견해에 대해 레닌은 물질적 사물과 그들의 관계체계가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자연법칙은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색인 : 유물론). 또 레닌의 많은 사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굳히기 위한 폭력전술과 공산당의 역할 등 매우 실천적인 문제들에 이바지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이론은 항상 계급이해를 표현하며 철학의 주된 과제는 프롤레타리아의 지적 무기를 단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철학은 이데올로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분석철학

현대 분석철학의 한 가지인 논리실증주의는 데이비드 흄과 〈수학원리 Principia Mathematica〉(3권, 1910~13)의 저자인 버트런드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새 논리학에서 함께 영감을 받았다. 이 학파에 따르면 철학은 과학적이어야 하고 내용보다는 기능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철학은 복잡한 세계상이 아니라 명료한 사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2)에서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철학의 목표는 사유의 논리적 명료화이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해명으로 이루어진다. 철학의 결과는 많은 '철학 명제'가 아니라 명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을 순수활동으로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실증주의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혁명적 명제도 제시했다. 첫째, 모든 유의미한 논술은 논리학과 수학의 형식적 문장과, 특수과학의 사실적 명제 중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 사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언표는 어떻게 그 언표를 검증할 수 있는지를 밝힐 수 있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셋째, 형이상학적 언표는 무의미하다. 넷째, 도덕적·미학적·종교적 가치에 관한 모든 진술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무의미하다.

논리실증주의가 형이상학과 가치에 관한 언표의 유의미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자 처음에는 일종의 철학적 스캔들이 일어났다. 그동안 러셀과 그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이민)도 영국에서 비슷한 학설을 제시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략하고 빈 학파의 많은 철학자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이 철학은 영미세계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일상언어분석은 주로 20세기 전반의 2명의 철학자인, G.E. 무어(1873~1958)와 비트겐슈타인의 산물이었다. 무어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검토하는 일, 즉 같은 시대 사람들의 잘못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철학적으로 대중화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윤리학과 인식론이었다. 그의 사상은 항상 실재론적·상식적이었으며, 매우 정확하고 자세하게 적용된 분석방법을 철학에 도입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견해는 처음에는 러셀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그뒤 수학과 논리학의 기초에 대해 점점 더 의심하게 되면서 그의 관심은 논리학과 인공언어체계에서 일상 자연언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주로 〈철학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 기록되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뒤 1953년에 나와 언어분석의 성서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일 철학의 초점을 세계가 아니라 언어사용의 메커니즘에 맞추면 철학 활동을 괴롭혀온 대부분의 어려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보고, "모든 철학은 언어비평이다"라고 주장했다.

 

유럽 철학

1950, 1960년대의 유럽 대륙철학은 현상학과 실존주의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이 구분이 엄밀한 것은 아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1905~80), 모리스 메를로 퐁티 같은 사상가들은 두 사조에 모두 관여했다. 철학자로 전향한 독일 수학자 에트문트 후설(1859~1939)은 현상학의 아버지였다. 그의 주된 업적은 일찍이 개발한 현상학적 방법과 후기의 글에서 나타나는 생활세계라는 개념이었다.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은 경험의 직접성을 강조하며 경험을 존재나 인과적 영향에 대한 모든 가정에서 떼어내어 그 실제적인 내재적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색인 : 현상학적 환원). 왜냐하면 바로 이 구조가 경험의 본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현상학은 철학자의 관심을 형이상학적 이론이나 과학적 가정의 때가 묻지 않은 의식의 순수자료에 제한한다.

후설을 지지한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존재론적 실존주의자 마르틴 하이데커(1889~1976)였는데, 1927년에 그의 유명한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이 나왔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의 존재·불안·심려·죽음을 향한 존재 등 인간의 실존에 대한 놀랄 만큼 독창적인 연구에서 현상학적 방법의 영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하이데거는 모든 탐구과정에서 철학이 경험적 학문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에 대한 매우 자명한 통찰이라는 현상학 원리를 끝까지 지켰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뿌리를 둔 유럽 대륙의 실존주의는 2가지 주제, 즉 존재의 분석과 인간 선택의 중심성에 대한 연구를 지향한다.

독일의 카를 야스퍼스(1883~1969)에 따르면 철학함이란 개인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이 되어가는 내면활동이다. 또 철학함은 존재의 계시이며, 인간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답하려는 시도이다. 이 활동은 과학의 활동과 전혀 다른 순수 사유활동이며 이 활동의 내면성을 통해 인간은 존재의 가장 깊은 차원들을 깨닫게 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철학은 '실존의 해명'에 전념하며, 인간의 실존이 인간의 조건을 규정하는 '한계' 상황들, 즉 갈등·범죄·고통·죽음 등에 대한 경험 속에 가장 깊이있게 드러나 있음을 깨달을 때 이러한 해명은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극작가인 장 폴 사르트로도 인간의 존재와 무(無)의 위협 앞에 선 인간의 불안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 존재의 본질이 인간의 자유, 즉 스스로 결정하는 의무와 선택의 자유라고 보고, 그래서 '잘못된 신념'을 향한 인간의 성향을 기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성향은 인간이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벗어날 수 없는 자유의 진리에서 도피하려는 비뚤어진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은 인간이 의식적 결정행위를 통해 장소·과거·환경·동료·죽음 등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자유행위 속에서만 인간의 실존은 진정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인 : 자유의지).

 

결론

20세기 중엽 이래 철학활동은 언어·상징체계·의사소통 등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철학은 주로 상징체계와 언어의 특성을 통해 자신의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분석철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듀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에 관심이 있었다. 화이트헤드는 상징체계에 관한 짧은 책을 썼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밝히기 위해 시가와 어원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독일의 신칸트주의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상징 형식의 철학'을 만들었으며 야스퍼스는 인간의 말과 몸짓 속에 나타나 있는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썼다. 여러 철학이론들이 통합할 전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과학적 기질과 형이상학적 기질은 여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실존주의의 주관성과 논리실증주의의 객관성은 아직도 서로 경멸하면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의 철학계에는 다양성과 분열이 여전히 버티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