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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눈보라 속의 智異山)

崇古(숭고)한 山(산)의 Esprit(정기)는

모두 이 山頂(산정)에 集約(집약)되어 있고
象徵(상징)되어 있다.
-하여
神(신)은 거기에 내려오고
사람은 거기 오른다.                   

– 신 석정님의 시 智異山(지리산)의 序詩(서시) -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2월 25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지리산 종주를 결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터라, 밤 10시 50분 용산 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 호 열차를 타기 위하여 집을 나설 때,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가벼이 바람에 흩날리던 눈발이 버스에서 내리니 진눈깨비로 변했다. 동행할 친구는 백두 대간을 몇 차례 종주한 경험이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등산의 베테랑 金明煥(김명환) 교수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雨水(우수)가 지난지도 벌써 일주일 이건만 기상대 예보에 의하면 곳에 따라 5 센티미터 정도의 눈이 내릴 것이라 했는데, 이 정도의 봄 눈은 오히려 우리의 산행에 즐거움을 더해줄 것으로 생각을 했다. 출발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용산 역 대합실에서 기다리니 시간에 맞게 친구가 도착했다. 달리는 밤 열차에서 산행 구간을 의논하면서도 친구는 내심 지리산의 날씨가 걱정인 모양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이 산에 머물면 지혜로워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智異山(지리산)이라 했건만, 아직 어리석음을 떨쳐내지 못한 탓인지, 나는 이쯤의 눈이 얼마나 대단하랴 싶어, 출발 전에 계획을 미루었으면 하던 친구에게 3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봄철 산불방지기간”의 탐방로 통제가 있음을 기화로 은근히 친구의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이다.

 

새벽 3시 23분 구례구역에 도착하면 역전에서 간단히 해장국으로 조반을 때우고 새벽 4시 30분쯤 구례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 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로 성삼재까지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는 코스를 성삼재-노고단 대피소-임걸령-토끼봉-연하천 대피소-백소령 대피소-세석 대피소-장터목 대피소-천왕봉-대원사로 잡고, 벽소령 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구례구역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택시기사의 말에 의하면 역전의 식당들이 4월까지는 새벽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얻은 정보는 토막 정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오늘 새벽에 성삼재로 가는 모든 차량이 눈 때문에 통제되었단다. 잠시 망설이고 있다 친구가 결단을 내렸다.

 

화엄사 쪽은 운행이 가능한지를 물으니 택시기사는 화엄사 뒤쪽 영지암까지는 택시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결정은 빨랐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고 어둠 속에서 눈 쌓인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하는 어려움만 각오하면 문제는 해결이란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평탄한 길이지만 화엄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좀 힘이 들 것이라는 얘기다. 일단 결정을 했으니 새벽 눈길을 오르자면 속을 따뜻하게 다스려야 한다며, 이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이 있는 구례 읍까지 택시로 간다.

 

구례로 가면서 김 교수가 求禮口驛(구례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구례구역이라는 역 이름을 듣고, 나는 漢字(한자)로 된 역 이름을 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새마을호나 KTX가 정차하는 신역이 새로 생겨서, 비둘기 호나 무궁화 호가 정차하는 옛 역쯤으로 생각하여 新(신), 舊(구), 하는 舊字(구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入口(입구)를 의미하는 口字(구  자)를 쓴다는 것이다.  택시기사가 끼어들어 설명을 보탠다. 해방 이전에는 그냥 구례 역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에 구례구역이라는 새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역이 있는 지점이 행정 구역상 구례군 땅이 아니라 순천시의 땅인데, 해방 이후에 순천 사람들이 역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구례 사람들과 합의하여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의 口(구) 자 한 글자를 추가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구례를 찾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철도 驛(역)이지만 내 땅에 있는 것에 왜 네 이름을 썼느냐는 지역 이기주의의 산물인 듯하여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새벽 4시쯤 구례 읍에 와서 해장국 집에 들어가니 먼저 온 등산객 5,6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눈 쌓인 산길을 오르기 위한 복장 준비를 마무리하고, 대전에서 왔다는 젊은이 두 명과 택시에 합승하여, 화엄사 뒤쪽 영지암 부근까지 가서 내린 시각이 새벽 5시 17분, 구례에서 내리던 진눈깨비는 이제 싸락눈이 되어 내린다. 어두움과, 쌓인 눈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려운데, 랜턴과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등산로를 찾아 조심조심 발길을 옮기는데, 방금 지나간 한 사람의 발자국이 우리를 반갑게 했다.

 

바스락바스락 길 가의 산죽 잎에 싸락눈 내리는 소리, 쪼르륵 돌돌 계곡의 눈 속 얼음 밑에서 가끔씩 방울을 튀기며 물 흐르는 소리와, 눈길 위를 걸어가며 우리 네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각사각하는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산속 여명의 靜寂(정적)을 깨운다. 한참을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친구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발자국이 자꾸 계곡 돌 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가던 길을 멈추고 멀리 앞을 바라보니 가히 멀지 않은 곳에서 불빛이 움직인다. 쉬면서 조금 기다리니 길을 잘못 들었다가 되돌아온 사람은 益山(익산)에서 혼자 왔다는 중년의 등산객이다. 전에 지나가 본 길인데도 눈 때문에 30분 이상을 고생하다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내려온다는 것이다.

 

다시 본래의 길을 찾아 올라가면서 나는 옛날 우리의 큰 스승이었던  西山大師(서산대사)의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하신 교훈의 글이 생각났다. 踏雪野中去하야(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이라. 今日我行跡은(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이라.

 

아침 6시 30분이 되니 날이 밝아지고 불빛 없이도 등산로가 보였다. 그러나 길은 올라갈수록 가파르고 쌓인 눈이 점점 많은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무래도 김 교수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모양이다. 자꾸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쉬기가 갑갑하다는 것이다. 걱정 때문인지 나도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간 밤의 수면부족에다, 평소와 다르게 새벽에 조반을 서둘러 먹은 것이 탈인 듯싶었지만, 준비해 간 소화제는 없고, 대신 청심환 한 알을 권했는데, 한 참 후에 심한 구토를 하더니, 그제야 속이 시원하고 머리도 맑아졌다는 것이다. 안심이 되어서인지 나도 다시 힘이 솟는다.

 

힘겹게 겨우 능선에 올라서니,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평평한 도로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올라올 때 

조용하던 날씨가 갑자기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험한 눈보라를 몰아치기 시작한다. 길은 50센티미터가 넘는 

바람에 쓸려온 눈이 군데군데를 막아섰고… 그러나 겨울 산행의 즐거움을 위해 선자령을 택했다가 눈이 내리지 않아 아쉬웠던 1월 정기 동문들 산행을 생각하며 惡戰苦鬪(악전고투)인들 이겨내지 못할까 하는 생각으로 눈보라 속을 헤치며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아 8시 15분, 산행을 시작한 지 3 시간 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대피소 수면실에는 우리 말고 2 사람이 쉬고 있었지만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자다가 추위를 느껴 일어나 보니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금방인 것 같은데 2 시간을 잤다. 관리자가 청소를 하겠다고 비워달래서 옆에 있는 취사실로 가니, 식탁, 식수는 물론 난방도 제공되고 있어서 각자 준비해온 식량을 조리해 먹을 수 있어서 몇 사람이 조반인지 빠른 점심인지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과일로 갈증을 해소시키고, 하참을 기다려도 날씨가 맑아지지를 않는다.  나는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내일 출발하자고 했으나 친구는 연하천 대피소까지 5 시간 정도 걸릴 셈 치고 강행하자는 것이다.

 

大田(대전)에서 온 두 젊은이들은 날씨를 더 관망하겠다고 하여 남겨두고, 益山(익산)의 중년 친구와 세 사람이 연하천 대피소를 목표로 하고, 노고단 대피소의 취사장을 나선 시각이 11시 10분.  그러나 굳은 각오로 출발한 지 5분도 채 되기 전에 세 사람이 동시에 안 되겠다는 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쌓인 눈은 많지 않지만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 5 시간을 강행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잠시 이 산에 머물러 있음으로 조금은 지혜로워졌을까? 무리하지 말고 하산하는 쪽으로 마음을 모으고, 올라온 길보다 멀기는 하지만 위험성이 낮은 성삼재 쪽을 택하여 내려온다. 오늘 우리의 지리산 종주 계획의 실패는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변화무쌍한 지리산의 날씨를 감안하지 않은 나의 어리석은 주장에 책임이 있어 친구에게 미안했다.  12시쯤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따뜻한 난로에 젖은 옷을 말리며, 내려갈 길을 의논한다. 구례까지 가려면 앞으로 이 험한 눈보라 속을 4시간은 걸어야 한다. 곁에서 옷을 말리고 있던 젊은이는 금년에 중학교에 입학할 아들과 함께 어제 승용차로 대전에서 여기까지 왔다가 발이 묶여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내려갈 방법을 문의하니, 마침 공단 직원 한 사람이 오후에 구례에서 체인을 장착하고 올라온다고 하여, 오는 길에 체인을 한 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잘되었다 싶어 동승을 부탁하니 안전문제로 걱정스러운 듯하면서도 승낙을 한다.

 

오후부터 날씨가 풀릴 것이라는 예보에 눈보라는 멈추는 듯하지만, 다시 되짚어 올라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오후 2시가 넘어 도착한 체인을 장착한 후, 시속 10KM의 저속으로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쌓인 눈에 차가 움직이지를 못한다. 모두 내려서 쌓인 눈을 치우고 다시 움직이는데, 뒤따라오던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근무자 교대 차량이 두 사람만 자기들 차에 옮겨 타라고 친절을 베푼다. 김 교수와 나는 관리공단 차량에 옮겨 타고, 앞차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관리공단 직원으로부터 방사했던 지리산 반달곰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 그 외 서식 동물들의 겨울나기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산자락에 내려오니 눈은 언제였더냐 싶다. 길은 깨끗하고 전형적인 초봄의 다사로운 햇볕이  한가로운 도로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대전에서 온 젊은이와 익산에서 온 중년의 친구와도 언제 또 산행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불과 몇 시간 동안이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서 힘든 길을 동행했다는 것으로 서로 친해질 수가 있는 것이 우리의 정서이다.

 

화엄사 입구에서 데려다준 관리공단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택시로 구례 버스터미널까지 와서 서울의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차표를 사니,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부근의 기사식당에서 재첩국에 소주 한잔씩을 하며 오늘 우리의 실패는 더 멋있는 성공을 위한 한 과정일 뿐이라 자위를 한다. 5월에는 좋은 날을 잡아 지리산 종주를 꼭 성공하자고 다짐을 하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