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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구름처럼(미국, 캐나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1. 서울 탈출. 

早老의 현상일까? 정년퇴직을 한 후 나는60을 넘겨 사는 것은 덤으로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5년 넘도록 職場에 다니며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남부럽지 않은 經濟的 富를 이루지 못한 劣等感에서 脫出하고싶은 衝動 때문인지,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日常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해보고 싶은, 貧困 속에서일망정 餘裕를 갖고자 하는 욕망의 潛在的 發露에서 일까? 아무튼 나는 내  남은 인생을 갇혀진 틀 속에서 벗어나려는 의식 속에서 산다.

 

佛家에서는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을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고 사위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데, 어차피 인생이 언제 어디에서 흔적도 없이 사위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한 조각의 구름에 다를 바 없다면 이리저리 부는 바람 따라 흐르면서 우주 만상의 자연을 다 내려다 보고 싶다.  때로는 산으로, 혹은 강으로, 바다로, 가끔은 꿈 속에서나 그려보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보고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2007년 5월 29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시계바늘을 멈추게 하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보따리를 챙겨서 택시를 타고 나가, 공항버스로 인천을 향하게 된 것은 미국에 있는 친구의 달콤한 유혹도 유혹이려니와,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덤을 더불어 즐길 친구가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즐기자는(어쩌면 분수에 넘치는 奢侈일지도 모르지만), 앞 뒤를 가리지 않은 무모하리만큼 단순하고 충동에 약한 내 성격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2시 5분에 인천을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고, 미 대륙을 뛰어넘어 뉴욕의 JFK 공항에 도착한 것이 같은 날 오후 8시 40분이다. 아하?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고 3시간30분을 기다렸는데??? 인천을 출발해서 뉴욕에 도착 할 때까지 총 3시간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지! 태평양을 건널 때 날자 변경선을 지났고, 미 대륙을 횡단할 때 숨겨진 시차 13시간을 합하면 실제 비행 시간은 총16시간 5분이 걸린 셈이다.

 

애초에 넉넉치 않은 돈에 무리한 계획이어서 가능하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인터넷을 뒤져 구입했기 때문에, 나리타 공항에서 3시간 30분을 기다리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그러나 공항 안에서 일지라도 처음으로 밟아보는 일본 땅에서 면세점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 곧 절약하면서도 즐겁게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된 듯 하여 위로가 되었다.

 

오후 7시 35분 나리타 공항을 이륙할 때 석양이 참 아름다웠는데, 2시간쯤 후 기내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하고, 조금 지나서 창 밖을 내려다보니 밝은 태양이 구름바다를 비추고 있는데, 내려다보니 마치 눈부신 설원을 보는 듯 아름답다. 나리타 공항에 정지해 있었더라면 점점 어둠이 다가오고 있을 시간인데, 지금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은 날자 변경선을 지나 과거에로의 쾌속질주를 하고 있음인가?

 

항로 표지판을 보니 고도를 32,000 피트로 유지하며 시속 1,055 킬로미터로 북태평양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다. 현지 시간은 5월 29일 오전 11시 이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눈을 뜨니 오후 1시 36분 드디어 북미 대륙으로 진입하는 비행기는 오후 4시쯤 눈 덮인 록키 산맥을 지난다. 오후 6시 30분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미시간 호반을 내려다 본다. 오후 8시 40분 드디어 아직도 어둠이 들지 않은 석양의JFK 공항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싣기 위해 수레를 갖으러 가서 겹쳐있는 손수레를 빼려는데 아무래도 빠지지 않아 끙끙대고 있는데, 아내가 오더니 돈을 넣으라고 써있다는 것이다. 작은 글씨로 써놓은 표지를 읽지 않은 나의 실수다. 1불짜리 지폐 2장을 돈을 넣으라는 구멍에 밀어넣으니 수레가 빠져 나온다. 나쁜 놈들 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다.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에서는 손수레를 사용할 때 따로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나라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달라진 것들에 대하여 익숙해지려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공항과 다른 시스템에 화가 난다. 외국여행을 하면서는 먼저 각기 달라진 것들에 대한 친숙함이 몸에 베어야 할 터인데, 아내 역시 아직 그러지 못해 투덜대는 것을 보면 역시 우리는 여행 초보자들임에 틀림없다.

 

마중 나온 觀仙軒 주인 김 일평씨 부부와 6개월 만에 반갑게 만났다. 금강산 식당은 한인 교포들이 모여 사는 플레싱에 있는 한국 식당이다. 기내에서 충분히 식사를 했다는데도 굳이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를 태우고 일부러 들린 곳이다. 식후 어둠 속에서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고 있는 세계 제일의 도시 뉴욕을 뒤로하고 커네티컷주의 햄던까지 2시간을 달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밤12시가 다 되었다. 

커네티컷의 햄던에 있는 친구네 집
활짝핀 만병초가 아름답다

2. 작아진 계획

처음 여행을 생각하고, 친구와 오고 간 전화와 e-mail을 통해 세운 여행계획은 R.V.(Recreation Vehicle)를 빌리거나, 아니면 친구의 승용차를 교대로  운전하면서 45일 동안에 대륙횡단을 할 거창한 꿈을 꾸었었다. 그렇게 할 목적으로 서울을 떠나기 전에 국제운전면허까지 발급 받아 두기도 하였고….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R.V.를 빌리게 될 경우 숙박비가 절약되기는 하지만,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지도를 보면서 찾아 다녀야 할 어려움, 또 우리가 들려 보고 싶은 지역에  R.V. Parking Area가 없을 경우에 겪게 될 고생, 거기다 R.V.내에서의 두 가족의 잠자리가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반면에 친구의 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가장 저렴한 모텔을 이용한다 하드래도 그 비용이 많아질 것 같아 결정은 상세한 검토를 한 후에  하기로 했다.

 

코스는 우선 친구의 자택이 있는 커네티컷의 햄던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 뉴포트, 보스톤으로 갔다가, 다시 하드포드로 내려와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버팔로에서 시카고를 거쳐 덴버로 내려가 그랜드케년, 라스베이거스와 LA를 거치고, 다시 요세미티, 쌘프란시스코를 거쳐 씨에틀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 뱅쿠버까지 갔다가, 엘로스톤으로 내려와 시카고 쪽으로 돌아 집으로 와서 며칠을 쉬고, 6월 30일 뉴욕에서 있을 친구의 딸 하영이의 결혼식을 마친 후에  뉴욕과 와싱톤 DC까지 다녀올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지도를 놓고 세밀한 검토를 해 본 결과, 그것은 무식한 사람의 용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획된 45일 동안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왕복 15,000마일의 거리를 관광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매일6시간씩 운전을 한다 하여도 시간이 얼토당토않게 모자라고, 원래 계획한 경비가 크게 모자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60대 영감들의 체력으로 이러한 강행군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원 계획을 대폭 수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여 수정된 계획이, 일단 서부와 캐나다의 록키산맥을 2주동안 돌아오는 코스를 여행사에 맡겨 단체관광으로 대체하고, 동부쪽 일부는 자동차로 돌아보고, 일부는 암트랙이나 그레이하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부와 캐나다 록키산맥의 단체관광은 뉴욕에서 6월 4일 LA까지 비행기로 날아가, 같이 여행할 그룹과 합류 하기로 되어 있다. 그 동안은 집에서 쉬면서 가까운 곳을 자동차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5월 30일 - 어젯밤 늦게 도착하여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하느라고 잠이 부족하여 늦게 일어났다. 친구의 집은 숲속 주택가에 있는 2층 주택인데,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고, 예쁜 꽃들이 잔디밭 끝에 있는 화단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층이 전부 우리차지가 되었는데, 방이 2개에다 화장실이 딸려있고, 컴퓨터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편하다. 아침 9시가 넘어 일어나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 네 사람이 집에서 가까운 Sleeping Giant State Park에 올라갔다. 해발 200미터쯤 되는 높지 않은 산이지만 숲이 울창하고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산책 코스로는 그만이다. 공원 입구에 Quinnipiac University라는 지역 명문대학의 캠퍼스가 있고, 주변에 작은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휴식 후 밤에 볼티모어에 살고 있는 양 현승 동문과 통화를 했다. 그가 미국으로 온 후 거의15년을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사이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며 반가와 한다. 서로간 살아온 이야기를 묻다가 빨리 만나서 얘기 하자고 한다. 대강 나의 스케줄을 이야기 하고 와싱톤 DC에 내려갈 때 다시 연락을 하여 만나기로 하였다.

 

5월 31일 – 미국에서의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 설렘 때문인지 새벽 4시쯤 잠이 깨었다. 아직 밝지 않아서 방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는데 집 주변의 숲에서 새들이 벌써 일어나 지저귀고 있다. 숲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밝아오기 시작하는 숲속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신선한 공기가 방으로 가득 밀려 들어온다.

 

늦은 조반을 마치고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차에 싣고, 친구와 둘이서 집 가까이에 있는 Pine Valley Golf Course에 나갔다.  시원한 공기, 밝은 햇빛 속에서 라운딩을 하는데, Water Hazard에서 놀던 커다란 거위들이 사람들 주변으로 놀라지도 않고 다가온다. 아마도 사람들이 해코지를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자연이 잘 보호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 후 꿀맛 같은 낮잠을 즐겼다.

땅이 넓은 나라 - 마을에 golf course가 여러개 있어서 주중엔 코스마다 한가하다. Pine Valley Golf Course에서

6월 1일 – 자동차로 15분이면 닿는 New Haven에 있는 예일 대학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New Haven은 예일 대학의 도시이다. 도시의 60%이상이 이 대학 재산이라고 한다. 1701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동부 사학의 명문들인 IVY LEAGUE중에서도 하버드 다음으로 고등학교 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학교라고 한다.

 

또한 윌리엄 태프트, 제럴드 포드,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고, 존 케리 상원의원,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도 이 학교 출신이며, 영화배우 폴 뉴먼과 메릴 스트립 또한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이 학교의 관광투어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가이드 투어가 있는데, 2주 전에 예약을 해야만 외국어 가이드가 각 나라 말로 안내를 한다고 하며, 가이드 봉사료로 미화 40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이어서 우선 거대한 공룡의 화석이 1층 전체를 차지 하다시피 한 피바디 자연사 박물관, 1천 만 권 이상의 장서가 있어 세계에서 7번째이며, 미국에서 2번째로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대학 도서관, 그리고 대학본부 구내만을 관광 한다.

 

그러나 도서관은 열람실에 들어가 보지 않았고, 열람실 앞 복도에 진열된 세계 각국의 고문서나 희귀 서적들을 둘러보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책이나 고문서들은 볼 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것들은 볼 수가 없어서 섭섭하였다. 아이비 덩굴이 건물 벽을 뒤덮고 있어 고색창연한 고전미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상상한 학교 건물들은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고, 건물 밖 도로변 화단에 심어진 아이비 덩굴은 우리나라의 시골 고구마 밭처럼 땅 바닥을 덮고 있을 뿐이었다. 

 

동부 사립 명문대학들의 대명사 IVY LEAGUE는 하버드대학(보스톤), 예일대학 (뉴헤이븐), 프린스턴대학 (뉴저지), 컬럼비아대학 (뉴욕 맨하탄), 브라운대학 (로드 아일랜드), 코넬대학 (뉴욕주),  다트머스대학 (뉴햄프셔), 펜실베니아대학 (필라델피아)으로 우리나라의 머리 좋은 많은 학생들이 이들 학교에서 세계의 수재들과 어깨를 겨루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6월 2일에는  마을에 있는 Sleeping Giant Golf Course (9 holes)를 가볍게 한 바퀴 돌았고 다음날인 6월 3일에는 아침 일찍 Sleeping Giant State Park에 가서 산 정상에 올라가 가벼운 운동을 하고 와서 서부로 떠날 준비를 했다.

 

3. 서부 (1) - LA로 가는 길

6월 4일 - 엊저녁부터 비가 내리더니 아침까지 계속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우리가 출발하는 날 이렇게 거센 빗줄기가 내릴게 무어람?  친구도 근래에 보기 드문 세찬 빗줄기라고 출발 전부터 걱정이다.  07시 30분에 아내와 나는 친구 부부와 함께 서부로 가기 위해 뉴욕의 비행장을 향해 빗속을 나섰다.  택시는 10시 30분에야 JFK공항에 도착한다.   평소 2시간이 체 걸리지 않던 거리라고 하는데, 오늘은 빗길인데다 러시아워까지 겹쳐져서 3시간이 더 걸려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 하자마자 곧바로  탑승 수속을 한다. 오전 11시 45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5시간 35분만에 4,150 킬로미터를 날아 LA 공항에 도착 한다. 현지 시간은 오후 2시 46분이다. 같은 나라에서 시차가 무려 3시간이나 난다.

 

천사의 땅이라는 LA의 날씨는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하다. 여행사에서 마중 나온 안내원의 이야기로는 오늘 같은 날씨는 1년 중 몇 날 되지 않는 보기 드문 좋은 날씨라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거대한 도시가 자동차를 달리며 보니 평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보였을까? 물론 지진을 우려해서 대부분의 건물을 낮게 지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기도 하니 서울처럼 눈에 보이는 도시 전체가 아파트의 숲을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 이다.

 

연락을 받은 어린시절의 친구 병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여행사에서 예약해 놓은JJ Grand Hotel에 짐을 풀고, 병희의 안내로 같이 간 친구(관선헌 주인 내외)와 함께 시내 관광을 한다. 친구도12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이곳 LA는 처음이라고 한다. 같은 나라이지만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다운타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한인 촌은 120만 명이 넘는 우리 교민들이 모여 산다는데 서울의 변두리 같은 느낌이 든다. 연이어 있는 일본인 촌, 그리고 중국인 촌 등을 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강 구경하고, 다시 태평양 연안을 따라 30분쯤 프리웨이를 달려  병희가 살고있는 싼타모니카로 갔다.  

 

이곳은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휴양도시로 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밀려드는  하얀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자동차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친구가 예약해둔 바닷가의 멋진 식당으로 갔다. 마이클, 글로리아, 켈리 모녀가 우리와 저녁을 같이 하기 위하여 나왔다.

어린시절의 친구 김병희와 함께
태평양의 물결이 넘실대는 배경으로
마이클과 글로리아 부부가 병희와 함께 나와주어서 더욱 고마웠다. 이들 부부는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용인 민속촌을 함께 관광했었다.
병희의 옆집에 사는 켈리 모녀는 병희의 다정한 이웃이다.

 아기였을 때부터 병희가 귀여워하여 그 가족들과도 친하게 되었다는 켈리는 이제 중학생이 된 이웃이다. 배우 배용준의 열렬한 팬이어서 병희가 모국을 방문했을 때 배용준의 사진을 구해다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모녀는 이렇게 이야기로만 듣다가 처음 대면을 하였지만 반가웠고, 마이클과 글로리아는 그들이 수년 전 병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용인 민속촌을 안내한 적이 있어서 구면이었다. 

마침 그날은 친구 부인의 생일이었는데, 마이클에게 부인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식당에 알려서 식사가 끝난 뒤에 축하 케이크을 준비하여 주었다. 여행 중인데도 처음 만난 친구들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해 줄 수가 있어서 맛있는 바다생선요리에 와인까지 한 잔씩 하고 난 멋진 저녁 식사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주었다.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하여 바쁜 가정사가 있음에도 참석해준 마이클과 글로리아 부부, 그리고 초면인 우리들을 위해 나와준 켈리 모녀, 모두들 고마웠다. 마이클 부부는 서부여행이 끝나면 한번 더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너무나 꽉 짜인 스케줄 때문에 약속을 못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병희가 우리를 호텔까지 대려다 주고 돌아갔다. 어린시절의 친구는 언제나 정이 많다. 

 

잠들기 전에 김 전평 동문과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다가 또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서부 여행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만날 수가 없고, 서부 여행이 끝나고 캐나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에 시간을 내기로 하고 아쉽지만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4. 서부 (2) –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

6월 5일 – JJ Grand Hotel은 한인 타운에 있는 우리 교민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고급은 아니고 중급정도 되는 것 같다. 아침6시 Wake-up Call을 부탁해 놓은 상태이지만 새벽 5시에 벌써 잠이 깨었다. 7시부터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는데, 조금 일찍 내려갔다. 해장국이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8시 20분 정확한 약속시간에 관광회사의 버스가 도착하였다. 첫 목적지인 서부의 3대 케년(Grand Canyon, Bryce Canyon, Zion Canyon)을 가기 위하여 켈리포니아 내륙 사막지대를 거쳐, 아리조나, 네바다, 그리고 유타 주까지 4개의 주를 거쳐 지나야 하는 대 장정이 시작된다.

 

우리의 여행을 안내할 가이드는 소피아 리 라고 하는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을 가진 아가씨다. 총 인원 33명을 태우고 출발하면서부터 그녀의 재담 섞인 안내가 시작된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LA와 켈리포니아주의 역사, 기후, 산업 등등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준다. 야무진 그녀의 설명을 대충 메모를 하면서 여행을 준비할 때 읽었던 참고 서적의 잊혀진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게 해 준다. 역시 직업인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들려준 켈리포니아의 발달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542년 스페인의 함대를 이끌고 상륙한 카브리요

1769년 스페인의 식민통치 시작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부터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고, 184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하여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31번째 주가 되었고,

1848년 새크라멘토에서 황금이 발견, 골드러쉬의 시작으로 인구의 증가와,

1869년 대륙횡단 철도의 개통으로 인구와 물자의 이동이 용이하여 졌고,

1875년 오랜지의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1892년 석유가 발견되다.

 

미국을 먹여 살리는 몇몇 주의 하나로 만든 켈리포니아주의 3대 골드가 있는데 바로

Yellow Gold (황금), Green Gold(쌀, 오랜지, 포도, 아몬드, 그리고 마초), Black Gold(석유) 라고 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괜히 가슴에 뭉클함을 느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할 때부터 켈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지만 184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이곳을 빼앗기게 된 당시의 멕시코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부른 민요는 그들의 슬프고 애절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 멕시코 민요를 우리나라에서 “제비”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리어지는데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거기 담겨진 그들의 슬픈 사연을 알기나 하고 불렀을까?

 

그리고 지금은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이 빼앗긴 자기네 땅에 불법입국을 하여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미국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며 최하위층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가 과거 자기들의 땅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좀더 살기 좋은 자기들의 故土를 찾아 끊임없이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굶주린 북한 동포들이 두만강을 건너 옛 우리의 영토였던 간도 땅에서 중국인들의 감시를 피해 다녀야 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버스는 LA 시내를 빠져 나와 한참을 달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남쪽 끝 자락을 따라 해발 4,000 피트가 넘는 사막 위에 놓여진 15번 고속도로를 달려 바스토우를 향하고 있다. 준 사막지대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모래바람이 사구를 이루는 중동의 사막과는 전혀 다르다. 민둥산에 키가 아주 작은 세이즈 브러쉬라고 하는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그런 식물이 있는데, 건조한 기후조건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룹여행을 하면서 리더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 문제이다. 모든 사람들의 시급한 문제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2시간을 달리면 휴게소(물건을 파는 상점과 화장실이 따려 있는 주유소)에 들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곳에는 다른 여행사의 버스와 겹치기가 쉬워서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 그 날의 일정에 차질을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리기 10분 전쯤 미리 화장실의 위치를 가르쳐 주고 차가 출발할 시간을 알려주면서 급한 사람만 내리게 한다. 여기서 그들의 위트 섞인 우스개소리가 나온다. “학교 갈 사람 손 드세요” “빨리 학교에 다녀오세요” 한다. 화장실을 학교라는 은어로 사용하는 이유는 학문에 힘을 쓰고, 학문을 넓히고, 학문을 닦는 곳이 학교이니, 학문을 발음 나오는 대로 항문으로 고치면 화장실이 곧 학교가 된다는 것이다. 긴 버스투어에 지루해 할 사람들을 잠시나마 웃게 하기 위해 그들이 쓰는 우스개소리 중의 하나다.  

 

바스토우(Barstow)는 켈리포니아주에서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아리조나주로 가는  40번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곳에 있는 인구 30만이 사는 작은 도시이지만, 화물 철도와 물류의 중심지이다. 지명 또한 이 도시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싼타페 철도회사의 제 10대 회장이었던 바스토우 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11시30분에 도착하여 Sizzler에서 Stake로 점심을 먹는데, 풍성한 과일이 넉넉히 제공되고, 각자 휴대하고 있는 빈 물병에 시원한 물을 리필 해준다.

 

12시 30분에 다시 출발하여 사막 위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바스토우에서 라플린까지는 40번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1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이상이 있어 갓 길에 세우고 점검을 하고 본사에 연락을 하더니. 멕시코 출신인 기사가 임시 조치를 하여 오늘의 목적지 라플린(Laughlin)까지 갈 수가 있다며 소피아가 여행객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라플린에 도착하기 전에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있는 주유소에서 급유를 하는 동안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데, 역시 사막의 더운 바람은 숨을 막히게 한다. 기온이 화씨 100도가 훨씬 넘는데다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숨쉬기도 힘들 정도이다.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한 라플린은 켈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와 아리조나주의 경계에 있는 콜로라도 강가에 세워진 연금 퇴직자들을 위한 휴양도시라고 한다. 은퇴자들을 위한 도시이기 때문에 생활비가 저렴하게 들도록 설계되어 있는 도시라지만, 이곳 사람들의 주 수입원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연금과 도박장에서 얻어지는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962년에 세웠다는 Laughlin Casino Resort에 짐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뷔폐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와인은 얼마든지 무료이다. 그러나 식탁에는 물론이려니와 와인을 따라주는 사람에게 팁을 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식당의 손님들은 관광객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70세가 훨씬 넘어보이는 노인들이다.

 

Grand Caynon을 가기 위하여 아침에 LA를 출발하여 거의 9시간을 달려왔다. 그러나  내일 또 몇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그 장엄한 경관을 보기 위하여서는 이런 고생쯤은 지불하여야 하는 모양이다. 저녁 식사 후에 콜로라도 강가를 산책하는데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이곳의 기후가 늘 이런가 하고 물어보니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오늘과 내일 특히 심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R.V. 주차장이 있는 것을 보니, 가족단위로 R.V.를 몰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R.V. 주차장은 보통 주차장과 다른 것이 전기와 수도를 연결해서 쓸 수 있도록 설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 주차를 할 수가 없다. 

 

5. 서부 (3) - 그랜드캐년

6월 6일 -  새벽 05시 15분 Laughlin을 출발하여, 어제 타고 들어간 95번 고속도로를 되짚어 나오다가 40번 고속도로를 만난다. 아침 7시 45분에 인구가 4,500명 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Kingman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불사조라는 뜻을 지닌 아리조나의 주도 피닉스에서 라스베거스로 가는 중간에 있는 곳으로 교통의 요지라고 한다Miss Kitty’s Stake House라는 한국 식당에서 북어국으로 조반을 때운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북어국을 먹는 것은 좀 어울리지는 않지만,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곳으로 가서, 주는데로 먹어야 하니 별 수가 없다. 한편 미국이라는 이렇게 큰 나라의 이렇게 작은 마을에까지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한국인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킹맨에서 조반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어제의 그 뜨겁던 사막의 날씨는 언제였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대니 추위를 점퍼로 막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2시간쯤 사막의 고원지대를 달리면 해발 7,000 피트의 고원에 세워진 도시 윌리암스가 그랜드캐년의 입구에 있다.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띄엄띄엄 사막 가운데 있는 집들과 파란 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목장에는 어쩌다 몇 마리의 소가 풀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뜯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 모양이다. 소들도 복을 타고 난 소는 먹이가 풍부한 초원의 목장에서 사는
데, 이런 목장에서 살아야 하는 소는 복도 지지리 못 타고 태어났던 모양이다.

 

LA에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버스로 15시간을 달려 드디어 목적지인 그랜드캐년 빌리지에 도착한 것이다.  SOUTH RIM 에서 옵션으로 1인당 미화 130불씩 내고 경비행기로 그랜드캐년을 한 바퀴 돌기로 되어 있었는데, 불행인지(스릴 넘치는 관광을 못한 것) 다행인지(1인 당 미화 $130이 절약된 점) 오늘은 바람이 심해서 경비행기가 뜰 수가 없다고 하여 이 옵션 관광이 취소되었다. 대신 극장에서 상연하는 아이맥스 영화를 $12씩 지불하고 관람 하는데, 나는 옛날 서울의 63빌딩에서 본 일이 있어 관람하지 않고, 역사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Grand Caynon

년 중 5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이곳 Grand Caynon 은 1540년 스페인의 탐험가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버스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그랜캐년의 여러 전망 포인트 중에서도 그 경관이 제일 아름답다는 MATHER POINT로 간다. 100여년 전에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서서 구경하던 자리에 내가 서서 감회에 젖어 보기도 한다. 책을 통해서 그리고 말로만 듣던 장관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을 한다. 지금은 작가가 누구였던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고등학교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행문 “그랜드캐년”.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 난다. 찰칵찰칵 수도 없이 카메라의 샷타를 눌러댄다. 발 아래 수천길 깊은 계곡에 실낱같이 흐르는 줄기가 보인다. 이 물줄기가 미국의 7개 주를 관통하여 흐르는 “붉은 물의 흐름” 이라는 뜻을 지닌  콜로라도강의 시발점다.

그랜드캐년 앞에서
발 아래 수천길 깊은 계곡에 실낱같이 흐르는 줄기가 보인다. 7개 주를 관통하여 흐르는 붉은 물의 흐름 이라는 뜻 을 지닌 콜로라도강의 시발점다.
Bryce Canyon
브라이스 캐년앞에서
Zion Canyon 앞에서
자이언 캐년 천국의 문

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45억 5천만년이라고 하는데, 이 협곡의 밑바닥 바위의 나이가 18억 4천만년이며, 이 협곡은 2억 천만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신비스러운 신의 조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12시 40분 마을로 내려와 Great Restrants 라는 뷔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쪽으로 약 40킬로미터까지 이어지는 이스트 림(Desert View Entrance)으로 가서 또 다른 캐년의습을 본다.  Bryce Canyon과 Zion Canyon을 가기 위하여 페이지라는 마을을 향해 간다. 그랜드캐년을 뒤로하고 산길을 달리며 주변에서 보이는 나무는 온통 케이밥이라고 하는 향나무 뿐이다. 토질에 맞는 수목이어서 인지 경제적인 가치가 별로 없어 보이는 이 향나무가 몇 시간을 달리는 동안 우리의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폐이지는 인구 3,0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오후 5시쯤 시골 같은 폐이지의  Quality Inn 이라는호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 석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지 말라는 가이드의 당부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호텔 바로 뒤에는 그린이 잘 다듬어진 골프코스가 있었다. 사막 위에 나무가 자라게 하고, 잔디가 푸른 골프코스까지 갖춘 마을을 만든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이다. 저녁은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서 중국인이 경영하는 일품향 이라는 식당에서 뷔페로 하고 돌아왔다. 

 

6. 서부(4) -브라이스, 자이언캐년

6월 7일 - 06시 호텔에서 조반을 들고 부라이스 케년으로 가기 위하여 유타주 쪽으로 이동한다. 콜로라도의 강 줄기를 막은 후버댐을 보면서 지난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토목공사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댐이다. 그 덕분으로 지금 사막에 물을 공급하고, 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여 초원을 만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주의 경계선을 통과하는데 차량을 검문한다. 우리의 버스는 이제 아리조나주를 벗어나 유타주로 접어들었다.

 

켈리포니아주의 동남부에서부터 네바다주, 아리조나주, 그리고 남부 유타주 모두가 대동소이한  사막지대가 많다. 이틀동안 심하게 불던 사막의 바람이 오늘은 잠이든 모양이다. 날씨도 맑고 기온도 서늘한 편이다. 솔트레이크가 주도인 유타주는 주민의 95%가 몰몬 교도들 이라고 한다. 델타항공과 펩시콜라가   몰몬교에서 운영하는 기업이라고 하니 그들의 재력을 알만 하다. 브라이스캐년으로 가는 길목인 이곳 역시 예의 카이밥이라고 하는 향나무가 많은 것을 보면 강수량이 사막지대 보다는 조금 많은 모양이다.

 

Red Lock Caynon을 통과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을까? 곧 부서져 흘러내릴 것 같은 기암 괴석이 도로 가까이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낙석이 쏟아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지 낙석을 막아 줄만한 철책 같은 시설은 전혀 볼 수가 없다. 아침 10시 브라이스 케년의 Sunset Point에 도착한다. 붉은색 바위들이 뾰쭉뾰쭉 솟아있는 첨탑 같기도 하고, 붉은 불꽃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한 절경은 장엄한 그랜드캐년의 모습과는 또 다른 비경이다. 우리가 자주 대하지 못한 붉은 바위로 된 때문인지 마치 황토가 홍수에 씻겨 가다 남아 있는 듯하여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과학자들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5년에 약 1 쎈티 미터씩 낮아진다고 한다.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시간 제약을 받기 때문에 계곡까지 갈 수는 없고, 사진을 찍기 위하여 중간까지  내려가다 출발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허둥대며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하루의 일정은 이 곳에 투자하여도 모자랄 판에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어찌 이 비경을 다 감상할 수가 있을 것인가? 192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협곡은 브라이스라는 목수에 의해서 발견되어서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멀리 흰 눈이 덮여있는 산봉우리가 보인다. 햄프리 봉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에 아쉬움을 남기고, 12시 30분 고풍스러운 시골마을 Camel Junction으로 내려와 Thunderbird Restaurant 에서 점심을 먹고, 135 킬로미터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볼 수 있는 또 다른 협곡 Zion Canyon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는 다시 움직인다.

브라이스 케년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Zion Canyon 은 남성적인 웅장함이 있다. 카멜 정션에서 점심을 먹고 2시간 동안을 천천히 달려온 길은 모두가 절경이다. 자이언 캐년의 입구에서 잠깐 사진을 촬영하고 이내 출발하면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되는데, 터널 중간 중간에 창문처럼 뚫린 공간이 있다. 카메라를 준비하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다가 안내원의 신호에 따라 뚫린 공간을 향해 일제히 셧터를 눌러댄다. 영화 “천국의 문”의 촬영 현장이라고 한다. 이태리의 피렌체를 여행할 때 두오모 성당 옆의 바티스테로 산조반니 세례당으로 들어가는 문에 성서의 장면을 새겨놓고 “천국의 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을 보았는데 멀리 보이는 바위가 그 문을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보아도 천국의 문이라고 하니 그렇게 보이는데 예술가들의 눈에는 어땠을까 싶다.

 

 자이언캐년은 주로 달리는 버스에서 관광을 하며 지난다. 천국의 문을 지나고부터는 유타주에서 이제 아리조나주와 네바다주를 넘나들면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달린다. 아리조나주의 Hurricane 이라는 마을을 지난다. 마을 이름치고 황당하다. 무슨 내력으로 마을 이름을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허리케인을 마을 이름으로 사용하다니?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네바다주를 지나면서 또 다시 대 협곡을 거쳐 끝없는 사막을 달린다.  네바다는 스페인어로 눈 덮인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매스키토, 15만 인구의 카지노 도시를 지난다. 골프로도 유명해서 PGA나 LPGA도 열리는 곳이라 한다. 땅이 넓은 나라일수록 불모의 땅을 이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거기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사막을 지나올 때 도로변에 가끔씩 독립가옥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정부에서 집을 지어놓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가를 몇 년을 두고 연구하고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라스베거스에서
라스베거스의 야경을 배경으로

1950년대 지하 핵실험을 했던 사막 위에 지금은 비옥한 목축지라는 뜻을 가진 라스베거스 라는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과문한 나에게는 도박과 환락의 대명사로만 알려졌던 이 곳이 지금은 MGM Grand Hotel, 베네시안 호텔, Ballys Hotel 등 유명한 호텔들이 세계 경제인들은 물론이고,  환경 전문가들, 유명한 과학자들, 국제 정치가들의 컨벤션 쎈터로 자주 활용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당당히 건전한 국제 회의장으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라스베거스에는 오후 6시쯤 도착하여 외각지대에 있는 한국인들의 상가와 식당이 즐비한 곳을 찾아가 “사하라”라고 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시내로 들어갔다.

 황홀한 조명, 무대의 방대함, 웅장한 음향, 화려한 의상을 입은 수많은 단원들이 펼치는 Ballys Hotel 의 Jubilee Show 는 1인당 미화 $80불을 별도로 지불하고 관람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내 야경 관광은 1인당 미화 $30,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베네치아 호텔의 내부를 돌아보고, 벨라지노 호텔의 분수 쇼와 조명예술의 극치라고 자랑하는 전구 쇼(우리나라 LG에서 설치했다고 한다).를 관광 하고 Riviera Hotel에 투숙한다. 

 

7. 서부(5) – 요세미티

6월 8일 -  저녁에 들어왔다가 아침에 나오는 라스베거스, 화려한 밤의 세계만을 보고 떠난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물결 속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닌 몇 시간의 밤에 비하면 아침의 라스베거스는 사뭇 다르다. 아무리 잘 지어진 멋있는 건물들도 휘황한 조명이 없는 아침에 보는 나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도시의 빌딩숲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침 8시 아직 조용한 거리,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그 빛을 밝게 비추고, 거리를 가득 메우던 그 많은 인파는 다 어디로 숨어 들었는지 지금은 지나가는 차량의 행렬만이 있을 뿐이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한국식당 “사하라”에서 해장국으로 조반을 마치고,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삭막한 사막을 따라 켈리코 은광촌을 가기 위하여 길을 재촉한다.

 켈리코 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주름치마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색갈이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띄워 마치 주름치마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는 은의 광맥이 넓게 깔려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정하게 줄을 따라 있어, 은 광맥이 있는 곳은 푸른 색깔을 띄우고 그렇지 않은 곳은 붉은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폐광이 된 은광촌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옛일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폐광이 된 은광촌인 고스트 타운(민속촌)에서 관광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하여 카우보이의 결투 장면을 연출하는 배우와 함께

오래 전부터 채산성이 없어 광산이 폐쇄된 상태이고, 옛날 채광당시의 시설들을 그대로 박물관처럼 보존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고스트 타운(민속촌)을 형성하고 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들이 있고, 관광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하여 서부극에 나오는 카우보이들의 코믹한 결투를 연출해 보이기도 하며, 당시의 보안관 복장을 한 안내원이 관광객들과 기념촬영도 한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한국말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점심은 바스토우로 가서 지난 번 그랜드캐년으로 갈 때 들렸던 Sizzler에서 현지식으로   먹고, 요세미티로 가기 위하여 프레지노를 향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1시간쯤 달리다 버스가 말썽을 부린다.  지난 번 라플린으로 가는 도중 고장으로 새 버스로 교체했었는데, 이번에는 타이어가 터진 것이다. 써비스쎈터에서 사람이 나와 타이어를 교체하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 동안 관광객들은 지루하지만 차내에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갓 길에 주차하여 있을 때는 승객이 밖으로 나오면 교통위반으로 티켓을 받는다.

 

프레지노까지 가기 위하여 바스토우에서 58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395번으로 바꾸어 타고 가면서 동쪽으로 대스벨리, 서쪽으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최고봉이며 미국의 본토에서는 제일 높다는 휘트니산(4,418m)의 정상에 쌓여 있는 흰 눈을 달리는 버스에서만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3시간쯤 북쪽의  켈리포니아로 달리니 이제 사막은 끝이 나고 푸른 초원과 목장, 과수원이 펼쳐진다.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지나니 바다 같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유명한 켈리포니아 포도주의 생산지이다. 이 엄청난 포도를 어떻게 수확 할까? 나는 바보 같은 걱정을 한다. 물론 기계를 이용하겠지만, 궁금하여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포도주용 포도를 따는 진공청소기 같은 수확기가 있다는 것이다.

 

오후 7시 45분에 도착한 농촌 마을의 작은 도시 프레즈노(Fresno), 서양물푸레나무라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농업이 발달되었고, 유명한 건포도 Sun Maid 공장이 있으며, 이곳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프레즈노대학의 농과대학은 그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한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독립운동의 발판으로 삼았던 흥사단을 처음으로 세우신 곳이 이곳이었다고 하여, 처음 왔으면서도 어딘지 정이 가는 곳이다. Americas Best Value Inn 이라는 호텔 체인의 Water Free Hotel에 투숙한다.

 

호텔의 조용한 분위기는 좋았는데, 저녁을 먹은 “가야식당”이라는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은 써비스를 제공 하는 데는 뒷전이고, 주인이 직접 팁을 챙기는 데는 앞장을 서서 우리 일행의 불평을 샀다. 식후에 조용한 마을 길을 산책하다 돌아와 쉬었다. 아침 6시 호텔 옆의 그 불친절한 한국인 식당에서 조반을 먹는다. 먹기 싫은 식당에서도 정해진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단체관광에서 선택권 없이 감내 해야 하는 고통중의 하나이다. 모두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향해 41번 도로를 타고 달린다.

 

요세미티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은 1868년 스코틀랜드 사람인 존 무어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1890년 미국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Dome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절반 쪼개어 놓은 듯이 보이는 Half Dome, 그리고 700미터가 넘는 곳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와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등이 있는 벨리지역, 해발 3,000미터 이상에서 만년설을 안고 있는 투올러미(Tuolumne), 그리고 수령이 2,700년이 넘는 거목들이 늘어서 있는 메리포서(Mariposa) 등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거리를 찾는다는데, 우리는 South Entrance를 통해 벨리지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7시 30분 성난 곰이라는 뜻의 인디안 언어에서 유래한 요세미티의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스페인 언어로 영원히 산다는 뜻을 지닌 아름드리 세코야 나무(Family Tree)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왕복 2차선의  좁은 산 길을 구불구불 돌아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와우너 호텔이 있다. 

요세미티에서는 half dome과 700미터가 넘는 곳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와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유명하다.
요세미티에서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요세미티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수령 2,700년이 넘는 거목들이 늘어서 있는 메리포서(Mariposa)에서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이는 그림 같은 골프장이 있는데, 옛날 이 호텔에서 쉬던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예약도 하지 않고, 비서들에게 골프채를 들려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했다고 한다. 따르던 비서들이 신분을 밝히고, 라운딩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골프장 관리인은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일지라도 예약을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며 거절을 해서 들어가지 못한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겁도 없는 골프장 관리인은 그렇게도 무섭던 우리 대통령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 햇살이 거대한 바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수목사이를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을 때,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사진촬영을 한 곳이 글레이셔 포인트이다. 하프 돔과, 케피탄, 브라이덜 베일 폭포를 보면서, 2시간 여 동안 5,6명이 팔을 벌려 둘러도 닿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세코야 나무 숲의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이 나라 사람들이 자연보호를 위하여 얼마나 신경을 쓰는가를 실감한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주어진 시간이 짧음을 아쉬워하며 또 다시 버스에 올라, 140번 프리웨이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를 향한다. 

 

8. 서부(6) - 샌프란시스코

9시 45분,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이라는 엘 캐피탄(표고 2,271m)의 거대한 모습을 사진으로만 담고, 요세미티를 출발하여 140번 프리웨이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를 향한다. 2시간동안의 요세미티 관광을 위해 달려온 거리와 소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쉽지만, 어차피 여행사의 일정에 우리가 맞출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서부여행을 시작하면서 거의 매일 황량한 사막만을 보면서 달리다가, 요세미티를 오가며,  푸른 초원과 거울처럼 맑은 호수와, 푸른 숲 사이를 흐르는 강, 그리고 울창한 밀림을 보게 되면서 어딘가 마음은 편안해지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다.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크데일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그 옛날 골드러쉬로 서부 개척의 발판이 되었던, 캘리포니아의 주도가 있는Sacramento의 남쪽을 달리는80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오후 2시쯤 캘리포니아 대학의 본부가 있는 버클리를 지나, 오클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는 베이 브릿지를 건넌다. 동부에서 듣기로는 미국의 모든 도로는 동서로 뚫렸을 때는 짝수의 번호가 붙여지고, 남북으로 뚫린 도로일 경우 홀수의 번호가 붙여진다고  하는데, 서부에서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명문 스텐포드대학, 첨단산업의 도시 산 호세(실리콘 벨리)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데, 우리의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아서 들리지를 못한다. 오늘의 샌프란시스코 날씨는 바람이 부는 탓인지 모처럼 보기 드물게 안개가 끼지 않은 날 이다.

금문교를 건너가 소살리토를 돌아보고, 소노마, 나파까지 올라가 와이너리에서 와인 시음도 해 보고 왔더라면, 캘리포나아의 넓은 포도농장을 직접 눈으로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샌프란시스코 일정은  Fisherman’s Wharf 의 39번 부두(Pier 39)에서 유람선을 타는 베이 크루즈 관광으로 정해져 있다.  유람선으로 금문교 아래까지 갔다가, 알카트래즈 섬과, 베이 브릿지까지 갔다 돌아 나와, 다시 버스로 금문교 아래에 있는 Golden Gate Park 까지 다녀오는 코스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
금문교의 4,200 핕트나 되는 메인 스펜이 얼마나 육중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악명 높던 갱 두목 알 카포네가 수감되어 있기도 했던 무서운 감옥의 대명사 알카트래즈 섬이지만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카트래즈 섬은 무서운 감옥의 대명사이다.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나 나올 수 있었다는 연방교도소가 있던 곳인데, 1934년까지는 육군 교도소로 쓰이던 것을, 그 후 감옥을 개조하여 흉악범들만 수용하던 연방 교도소로 사용했다. 한 때는 그 악명 높던 갱 두목 알 카포네가 수감되어 있기도 했었고, 무려 14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죄수의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 감옥도 1963년에 재정적인 이유로 폐쇄되어  지금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데, 유람선을 타고 지나면서 옛 감옥의 겉 모습만 보면서 지난다.

 오후 4시에 유람선에 승선했다가 1시간 남짓을 돌아와 하선하여 금문교 공원을 다녀와서 버스 안에서 시내관광을 한다. 늦게 시내에 나와 아담한 “한일관”이라는 식당에서 모처럼 입에 맞는 저녁을 먹었다. 거리가 어찌나 한적한지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도시에 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가로수에는 탐스럽게 생긴 빨간 꽃이 예뻐서 꽃 이름을 물어보니 “Bottle Brush” 라고 일러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꽃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름을 듣고 보니 모양이 병을 닦는 브러쉬처럼 생겼다. 식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Sunnyvale이라는 교외로 나와 쉐라톤 힐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6월 10일 -  새벽 4시 Wake-up Call, 5시 Sunnybale 의 쉐라톤 호텔을 출발하여 1시간쯤 달려가 Seaside라는 곳에서 한국식당을 찾아 설렁탕으로 조반을 먹고, 태평양 연안의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라는 몬트레이의 바닷가를 달리는데, 얄궂은 안개 때문에 우리들의 환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바닷가 도로 옆에 있는 숲의 나뭇가지에는 주렁주렁 이끼 같은 해초가 해풍에 날려와 메달려 있고, 나무의 몸통에도 다닥다닥 붙어서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살기 때문에 나무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주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는데, 아직도 좋은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면 아마도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경험이 있는 pebble Beach 골프장은 한 때 빙 그로스가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 세리 선수가 LPGA에서 우승 한적이 있는 Pebble Beach 골프장에 차를 멈추고, 사진도 촬영하면서 퍼팅 연습장을 돌아 바닷가에 이어지는 아름다운 코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골프장은 미국의 유명한 가수이며 배우였던  빙그로스비가 운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얼굴과 업적이 동판에 새겨져 있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차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여, 늦게나마 남은 코스의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가 있어 다행이다. 이 아름다운 해변은 크린트 이스트우드, 샤론 스톤, 등 유명 연예인들이 별장을 갖고 있는 고급 별장 지역인데, 우리나라의 연예인도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단지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LA나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집값의 약 2.5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몬트레이의 해변 도로를 지나 Greenfield 라는 곳은 지난다. 1960년대 Brothers Four가 불렀던 팝송이 생각나는 곳이다. 비행기로 씨앗과 농약을 살포 한다는 말을 듣기만 했는데, 그렇게 농사짓는 농부들을 실제로 목격하면서 지나간다. 어쩌다 몇 가구의 농가가 그 넓은 농장의 중간중간에 있을 뿐 끝없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농장지역에도 지역마다 특용 작물을 재배 한다고 한다. 즉 포도는 주로 Lock Wood paris Valley 지역에서, 오랜지는 샌프란시스코지역, 그리고 쌀 농사는 주로 세크라맨토 지역에서 생산을 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일대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소피아 리와 함께
미국 안의 덴마크라는 쏠뱅에서

미국 안의 덴마크라는 쏠뱅을 가기 위하여 101번 Free Way 라고 부르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마돈나 인 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호텔을 구경한다. 126개의 방이 세계 각국의 특색을 살려 각각 다르게 꾸며졌다고 한다. 한국식의 아담한 방도 준비해놓고 있다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한번쯤  들려볼 일이다. 샌 루이스 오피스 포에서 홈 타운 뷔페로 점심을 먹고, 덴마크 말로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을 지닌 쏠뱅에 도착한다. 밀 농사와 꽃 농사를 주로 짓는 농촌 마을의 민속촌이다. 와인 매장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시음도 하게 하고 제품 설명도 한다. 싼타클로스에서 싼타바바라를 거쳐 싼타 크라라로  태평양을 안고 이어지는 길도 몬트레이에 버금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16시 50분 드디어 6박 7일간의 서부 여행을 마치고 LA의 JJ Grand Hotel에 도착 했다.

 저녁에 김전평 동문과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고, 서울의 친구들 소식을 전하며 세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짧게 지났다.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씨애틀행 비행기를 타러 나가야 하는 바쁜 일정과 따로 최삼섭 목사와의 약속 때문에 다시 전화로 남은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LA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짧고, 만나야 할 친구는 많아서 최 목사와 같이 식사도 할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내 바쁜 일정을 이해하는 최 목사에게 다시 사과하고, 같이 여행하는 친구 내외와 같이 최 목사의 안내로 밤 12시가 넘도록 헐리우드의 야간 관광을 했다.

 

최 목사는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은 아니지만 고교시절의 절친한 친구다. 서울에서 대학 강사를 하다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미국에 갔다가, 목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친구다. 가난한 작은 교회를 맡고 있지만, 직업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자기가 일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도교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포교 활동을 하고, 불우 노인 복지원에 봉사와 전도를 겸하는 그야말로 진실된 크리스쳔이다. 내게도 성경책과 찬송가를 보내는가 하면, 수년동안 빠지지 않고 매월 전도의 편지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 그의 성의에 부응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다. 목사들에 대하여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는다는, 오래된 불교 신도인 같이 여행하는 친구도 최 목사를 만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목사들 중에 과연 최 목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었으며, 자기는 불교 신자이지만 존경할만한 기독교인 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늦게 그를 보내고 호텔에 돌아왔다. 

 

9. 캐나다 록키 (1) - 밴쿠버

6월 11일 – 어제 늦게까지 헐리우드 거리를 구경하고 최 목사와 헤어진 후, 3시간을 잤을까? 새벽4시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아침 6시 10분에 출발하는 시애틀 행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공항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북적 인다. 전자 티켓을 확인하고 짐을 부칠 사람들의 늘어선 줄이 수백 미터는 될 것 같다. 출발시간을 2시간이나 여유 있게 일찍 나왔는데, 짐 검사가 까다로운 것인지? 근무자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줄이 도무지 줄어들지를 않는다. 줄을 따라 서서 기다리면서 시간이 없어 아침은 굶겠구나 생각을 했다.

 

 겨우 출발 30분 전에 탑승 구 앞에 와서, 아침 먹을 것은 시간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기다리다 탑승을 한다. 이륙 후 곧바로 뚱뚱한 아줌마(여승무원)들이 음료수와 과자를 나누어 준다. 미국은   항공사마다 국내선일 경우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고, 간단한 스낵만을 제공한다.  2시간 30분을 비행하여 09시 40분에 시애틀-타코마 공항에 도착 한다.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이 생각 나는 도시, 보잉사, 마이크로 소프트, 코스트코, 스타 벅스 라는 세계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걸출한 기업들이 본부를 두고 있고, 와싱톤 주립대학 건너편에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위도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기후도 비슷하여, 상당 수의 교민들이 이 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머리가 벗겨진 50대의 여행사 직원(Mr. Kim)이 봉고차를 몰고 와서 우리를 맞았다.  Mr. Kim은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한 인텔리로 한국에서 방송사에 근무하다가 언론 통폐합 때 직장을 잃고,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고생고생 하다가 여행사에서 임원으로 일하게 된 사람이다. 우리에게 5,60대에 장노나 목사가 되지 말라고 당부를 하여 이유를 물어보니, 장노 = “장기적으로 노는 사람”, 목사 = “목적 없이 사는 사람” 이기 때문 이라나?

 

마운트 버넛이라는 곳의 뷔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여기도 나이 많은 노인 손님들이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식성에 맞는 식단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장점이, 노인들에게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면하게 해 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점심 후 붐비지 않는 비교적 한가한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미국 서부의 최 북단(북위 49도)에 위치한 벨링 햄에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한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다. 옛날에는 두 나라 사이의 출입국 수속이 간단 했었는데,  9.11 테러가 있은 후 상당히 까다롭게 되었다고 한다. 짐을 검사하고 여권에 도장을 받고, 검사대를 통과한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을 통과 한다.

 

국경을 넘으면 곧 밴쿠버로 들어간다. 여기저기에서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2010년 동계 올림픽을 대비하여 벌이는 공사라고 한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우리나라의 평창과 경합을 하다가 밴쿠버가 유치에 성공을 했다.

밴쿠버에서

 세계의 환경 전문가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히기도 했고, 시드니, 리오데자네이로, 나폴리와 더불어 세계 4대 美港 중의 하나인 밴쿠버는 인구 180만으로 토론토, 몬트리올에 이어 캐나다의 3번째로 큰 도시이며 서부 캐나다 제일의 도시이다. 1792년 이곳에 처음 상륙한 영국의 해군 중령 조지 밴쿠버 선장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매년 주민의 4배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120만평에 달한다는 스텐리파크,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 숲을 버스로 한 바퀴 돌아, 시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프로스펙트 포인트에서 석양의 밴쿠버를 바라본다. 

이땅의 주인들이었던 이들 사이에 앉아서
Capilano Suspension Bridge

캐필라노 캐년에서 137미터의 깊은 계곡 위에 길이가 70미터인 현수교 흔들다리(Capilano Suspension Bridge)도 건너 본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비견된다는 라이온스 게이트 브릿지를 건너 시내로 들어와 한국인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Holiday Inn Express 호텔에 들었다. 호텔 로비에서 전혀 생각치 않던 고향 선배를 만났다. 시애틀에서부터 같은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서로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아들이 회사에서 선발되어 와싱턴주립대학으로 와서 MBA과정을 밟고 있는데, 칠순 잔치를 생략하고  아들한테 와서, 아들 부부와 돌박이 손자와  5명의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소주라도 한잔 나누자 하고 각자 방으로 가 쉬었다.

생각치 못했던 곳에서 고향 선배 박종희씨를 만났다.

6월 12일 - British Columbia 주의 주도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20배 정도의 면적을 가진 Vancouver Island 에 있는 빅토리아 市이다. 인구 30만의   섬 한쪽에 치우쳐져 있는 이 도시가 British Columbia 주의 주도가 된 것은, 1867년 캐나다 건국 당시 오레곤 조약에 의하여 국경선을 결정 할 때,  분쟁의 소지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급조된 것이라 한다. 밴쿠버의 선착장에서 폐리호를 타고   Victoria 시로 들어간다.

 The Butchart Garden 은 6만평의 대지위에 썬 캔 가든, 이탈리아 가든, 일본 가든, 그리고 장미 가든 등 4개의 정원을 특색 있게 꾸며, 잘 가꾸어 놓았다. 광산이었던 곳을 아름답게 꾸며1906년부터 일반인들 과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기 시작 했다고 하는데, 밴쿠버를 찾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들리는 곳이다.

Butchart Garden은 원래 광산이었던 곳을 개발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Butchart Garden에는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기도 하다.

커네티컷주의 햄던에 있는 친구집을 처음 방문 했을 때, 옆집의 정원에 피어있는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자세히 보았던 일이 있었다.  잎이나 꽃이 마치 진달래와 흡사한데, 푸른 잎 사이에 노랗고, 빨간 꽃이 무리 지어 큰 송이를 이루고 있어 아주 탐스럽게 보였다. 이 꽃을 캐나다에서도 가끔 보았고, 이 정원에도 잘 자라고 있어, 꽃 이름이 무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는데, 마침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 임학을 전공했다는 분이 있어서   물어보니 “만병초”라고 한다. 잎은 만병엽이라 하여 콩팥이 나쁜 경우나 류머티즘에 먹으면 효과가 있고, 이뇨에도 쓰이며.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북부지역에서도 자생하고 있고, 키는 3,4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내가 보지 못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 청사 앞에 있는 왁스 박물관 입구에는 영국의 근위병 복장을 한 안내원이 관광객들의 요구에 사진 촬영을 함께 해주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형상을 실물 크기로 제작하여 역사의 자료로 전시해 놓았을 뿐 아니라, 지하에는 옛날 참혹하게 시행했던 고문하고, 처형하는 모습들까지 만들어 놓아, 옛날 유럽에서의 끔찍한 형벌제도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넓은 주 청사 앞 잔디밭에는 수령이 2,500년 되었다는 거대한 향나무가 영양제 주사를 맞으면서 아직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어 주 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쇼핑 몰에 들려 구경하다 다시 선착장으로 가 페리를 타고 빅토리아를 떠난다. 밴쿠버의 한국식당으로 와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수령이 2,500년 되었다는 거대한 향나무 앞에서
British Columbia 주의 주청사 앞에서 근위병 복장을 한 안내원과 함께

10. 캐나다 (2) – 록키,컬럼비아 빙하

6월 13일 -  호텔 식당에서 조반을 마치고, 이슬비가 오는 1번 고속도로를 따라 길을 간다. 날씨의 좋고 나쁜 것은 우리의 일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스케쥴은 그대로 강행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여행자의 행운이고, 그렇지 않으면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세계에서 영토가 두 번째로 넓은 나라이며, 북미 대륙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는 세계 제일의 담수 보유국, 최대 밀 생산국, 지하자원과 삼림자원이 풍부하지만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3.3명/Km2),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남자 75세, 여자 81세) 높은 복지 국가이다. 숲속으로 난 고속도로를 따라 가면서 보이는 수많은 호수와 강들, 그리고 산림이 울창한  가리발리와 케스케이드의 두 산맥을 좌우로 바라보면서, 4,600 킬로미터를 내리 뻗은 캐나다 로키를 찾아 가는 우리는, 이슬비가 가는 길을 적시고 있을지라도 모두가 행복하다.  면사포 폭포(Bridal veil Fall)에서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면서 구경하고, Hope라는 지역에서 다시 5번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Merritt라는 인구 9,000명 이 산다는 작은 마을까지 가서 점심을 먹는다. 

면사포 폭포(Bridal veil Fall)

원주민이 전체 인구의 절반쯤 된다는 이곳에 북 톰슨강(North Tomson River) 이 흐른다. 예전에는 구리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목재산업으로 바뀐 곳이다. 길가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둥그렇게 원형 건물을 전체적으로 나무만을 이용해 멋을 부려 지은 한국인 식당에서 먹는 점심이 맛이 있었다.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범람할 듯 강물이 넘치는 옆으로 고속도로는 뻗어 있다. 사슴과 곰이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버스의 속도를 낮춰주기도 한다.  눈을 들어 위를 처다 보면 흰 눈이 쌓여있는 봉우리들인데, 아래는 숲속에서 여름을 즐기기 위해서 동물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다. 저녁때쯤 인구가 500명 밖에 살지 않는다는 Valley Mount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 했다. 이곳에도 우리 교민이 있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의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한국인들의 낙서가 훈장처럼 액자에 보존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아주 허름한 호텔에서 일박을 한다. 

6월 14일 – 아침 7시 출발을 한다. 벨마운트에서 30분쯤 달리면 5번 고속도로는 16번 고속도로에 우리를 인계하고 그 임무를 끝마친다.  이제 보이는 것은 모두 캐나다 록키 이다. 최고봉 Mount Robson (3,954m)도 여기서 볼 수가 있고, 무스(사슴과의 동물로 물가에 산다.턱에 물주머니가 있다)가 많아서 붙여진 Moose Lake도 지난다. 재스퍼 (Jasper)에서 다시 93번 고속도로를 타고, 콜롬비아 빙원과 루이스 호수까지 가면 우리는 다시 1번 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는 부리티시 컬럼비아주를 넘어 알버타 주이다.

 

알버타 州는 넓이가 65만 평방 킬로 미터(한반도의 3배정도)이고, 8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켈커리가 州都이다. 석유(Sand Oil)의 매장량이 많아서, 주 정부의 재정이 풍부해  2005년에는 예산이 남아, 2006년 3월에 주민 1인 당 $600씩 보너스를 주기도 했다고 하니 부러운 곳이다. 여기서부터 1시간의 시차가 난다. 수도 없이 많은 눈 덮인 봉우리들을 올려다보며, 수목이 울창한 사이로 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09시 25분 현재 시간을 10시 25분으로 고쳤다

 

해발 1,200미터부터 수목한계선(Timberline) 인 해발2,500미터까지를 고산산림지대라고 하는데, 지형과 기후에 따라 흰 가문비나무, 소나무, 더글러스 전나무, 사시나무, 솔 송 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 나무들만 수출해도 현재의 캐나다 국민들이 120년 동안을 먹여 살릴 수 있단다. 벌목 한 산을 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머리를 깎듯이 깨끗하게 베어낸 자리에 어린 나무를 다시 심어 놓았다. 이런 식으로 연차적으로 벌목을 하니, 매년 재목을 생산해도 산은 항상 푸르게 유지가 된다. 12시가 못되어 콜롬비아 빙원지역에 도착 했다. 점심을 먹고,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가서 전동차를 타고, 또 빙원에서는 설상차를 타고 빙하 위를 달려보기도 한다. 지금이 6월 중순인데도 함박눈이 내린다.

콜롬비아 빙원 앞에서

만년설이 녹아 흐르며 빙하를 이루고, 그 빙하도 지구의 온난화에 밀려 조금씩 녹아 흐르기 시작한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물병들을 준비하여 가기도 하는데, 함박눈이 내리는 속에서 사진을 촬영하느라 그 빙하 물을 마시는 것을 깜박 잊고 말았다. 콜롬비아 빙하를 뒤로하고, 그 옛날 총독이 자기 아내인 루이스 공주의 이름을 붙여 명명했다는 Lake Louise와 그 옆에 있는 유명한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을 구경하고,  캘거리로 가는 중간에 있는 켄모아에서 저녁을 먹고, Kananaskis에 있는 88년 켈거리 동계올림픽 때 기자들의 숙소를 호텔로 개조했다는 Executive Resort에 투숙 한다.  주변이 아름답고 조용하기가 마치 휴양지 같다.  와인 한 병을 들고 내 방으로 온 친구와 모처럼 취흥에 젖었다. 

 

11. 캐나다(3) – 록키, 밴프

6월 15일 – 어젯밤 늦도록 비가 내렸었는데, 일찍 일어나 밖을 나서니 비는 그치고, 부는 바람이 나뭇잎에 맺은 물방울을 살랑살랑 털어내고 있다. 오늘은 비가 오지는 않을듯한 날씨이지만,  팔이 긴 셔츠를 입어야 할 정도로 약간 싸늘함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호텔 주변을 한바퀴 돌아오니 기분은 상쾌하다. 산간의 고지대, 사방에 눈이 녹아 내리는 산들로 둘러 쌓여 있으니, 우리나라의 초봄에 느끼는 기온이다.

 

아침은 캔모아에 있는, 어제 저녁을 먹었던 교민 식당에서 북어 해장국으로 하고, 어제 지나온 1번 고속도로를 달려 밴프를 거쳐 셀몬암까지 가는 중간 중간에 강과 호수를 끼고 있는 절경들을 구경한다. 마릴린 먼로가 출연했던, 옛날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 장소였다는 보우강, 에머랄드 호수, Natural Bridge, 그리고 루이스 호수와, 호숫가에 있는

샤또 레이크 루이스호텔, 또 밴프의 자랑이라고 하는 밴프 스프링스호텔 등 세계 최고급 호텔에 속한다는 호텔들과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 하고,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을 곤돌라를 타고 올라보기도 한다.

보우강의 모습
마릴린 먼로가 출연했던 , 옛날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 장소였다는 보우강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 빛은 깨끗한 법신(溪聲便是廣長舌山色豈非淸淨身)이라고 노래한 소동파가  오늘 이곳에 와서 눈 덮인 많은 산봉우리들과 옥같이 맑은 호수를 보고, 넘쳐나는 강물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웅장한 소리를 나와 같이 들었다면, 그가 내게 어떤 노래를 주었을까? 밴프에서 오랜만에 스테이크로 점심을 즐겼다.  셀몬암은 연어가 많이 올라오는 시기에는 관광객들이 맨손으로 연어를 잡기도 한다는 곳이다. 중국식당에서 뷔페로 저녁을 즐겁게 마치고,  Shuswap Lake 가 창밖에 있는 Prestige Hotel에 투숙한다. 친구, 선배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 16일 – 아침7시 에 프레스티지 호텔 식당에서 조반을 들고, 7시 35분 우리의 버스는, 길이가 동서로 150킬로미터나 된다는 셔스왑 호수를 따라 1번 도로가  끝나는 Kamloops 에서 다시 5번 도로를 따라 밴쿠버를 지나 미국의 씨애틀까지 달리는 것이다. 캐나다의 관광 일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우리의 가이드는 미국과 캐나다의 서로 달랐던 건국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대부분의 우리 일행은 눈들을 감고, 이야기를 듣는지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지 조용하다.

 

독립전쟁 이전, 과중한 세금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캐나다에 공동으로 독립을 요구 할 것을 제안 했었으나, 캐나다는 이에 협조하지 않고 반대했었다. 영국에서 캐나다로 온 사람들과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그 출신성분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 건너온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 출신들이었고, 반대로 캐나다에 온 사람들은 주로 왕실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관점이 다르면 대처하는 방법도 이렇게 다른 것이다.

 

프레이져 강에서 황금이 발견된 이래 몰려든 사람들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도시 Hope의  삼미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는다. 저녁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석식을 때우기 위하여 김밥을 시켰는데, 1인분에 미화 10불씩 받은 이 김밥을 나중에 먹어보니, 서울에서의 1천원짜리 김밥보다 별로 나을게 없었다.

 

콜롬비아의 아이스 필드에서 발원한 프레이져 강위에 놓인 알랙스 브릿지를 건너 밴쿠버를 관통하여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리치몬드를 지나 공항으로 간다. 리치몬드라는 도시는 영국과 미국에도 있는데, 아마도 영국에서 처음 건너온 사람들이 자기 고향의 이름을 붙여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Vancouver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출발지로 돌아갈 사람들을 내려주고, 우리는 씨에틀을 향하여 다시 달린다.  우리와 같이 캐나다 록키를 여행한 사람들 33명은 미국의 동부, 남부, 서부 그리고 하와이 등 각처에서, 그 지역 여행사를 통해 캐나다에 있는 여행사로 합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합류한 지점도 다르지만, 떠나는 공항도 각각 다르다.  오후 3시 50분 다시 국경을 넘어 6시경 씨에틀 공항에 도착하여, 준비했던 김밥으로 탑승 전에 저녁을 먹는다. 뉴욕행 Jet Blue 비행기는 저녁 11시 50분에 출발 할 예정이다.

 

12. 동부 (1) - 뉴욕

6월 17일 – 어젯밤 11시 30분에 시애틀을 이륙한 Jet Blue가 아침 8시 30분에 우리를 JFK 공항에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New York에서 LA로 갈 때는 현지 시간에 3시간을 더해 주어야 실제 비행시간이 되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현지 시간에서 3시간을 빼야만 정확한 비행시간이 나온다. 아무튼 실제 비행시간은 6시간이 걸린 셈이다.

 

택시로 플레싱으로 가서 금강산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한국에서 보다 오히려 더 한국식품이 많아보이는 식료품점에서 식품을 산다. 다시 2주동안이나 비워 두었던 햄던의 친구집으로 왔다. 2주일 동안의 단체여행을 하느라 긴장도 되었고, 피로가 쌓였는지 집에 돌아오니 네 사람 모두 고단하여 다음날은 늦도록 잠을 잤다.

 

오후부터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의 숙원 사업이던 400장이 넘는 음악 CD, 영화와 오페라 DVD 들의 목록 표를 작성하여 같이 정리하기로 하였다. 꾀나 넓은 지하실에는 습도 조절기까지 비치해 놓은, 다분히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내 친구의 음악 공간이다. 여기 있는 책들 또한 온통 클래식 음악에 관한 것들과, 불교 서적들이다. 

 

컴퓨터에 약한 친구는 늘 마음속에 이들을 다른 사람도 찾기 쉽도록 목록 표를 만들어 놓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힘이 되어주기로 하고, 우선 음악 CD는 목록 표에 번호, 곡명, 작곡자, 지휘자, 연주자 순으로, 정리했다. 다음에는CD에 번호를 붙여 놓으니 누구라도 듣고싶은 곡을 쉽게 찾아 감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나 오페라의 DVD도 함께 목록 표를 만들어 놓으니 한결 좋아졌다.

 

이 작업을 도와 주는 동안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 이던 나는, 친구로부터 천재 음악가들의 이야기며, 음악을 작곡 할 때의 역사적 배경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클래식 음악에 좀 더 가까이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것 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 보다는 즐기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친구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직 아는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6월 20일 – 오늘은 서울에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친구 부부는 뉴욕으로 손님을 맞아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친구가 권하는 책(나가 사랑하는 클래식-박 종 호 지음)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늦은 시간까지 서울에서 온 친구로부터 장마가 시작 되었다는 등 궁금했던 소식을 들으며 늦도록 이야기를 했다.

 

6월 21일 – 서울에서 온 손님 (친구 부인의 친척이 되는 친구)과 함께 5명이서 자동차로 3시간쯤 달려, 이곳 커네티컷 州와 접경 州인 로드 아일랜드의 갈리리 바닷가까지 나가, 배에서 파는 바다 가재와 게를 사서, 해변의 한가한 캠프장에서 삶아 먹는 즐거움과, 대서양의 푸른 바다를 가슴 가득 품어보는 뿌듯함도 맛보았다.

로드 아일랜드의 갈리리 포구에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다.
한가한 로드 아일랜드의 갈리리 바닷가에서
갈리리 바닷가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위 사진에 있는 집에 사는 어린이들일까?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곳에서 낯선 외국인들을 보고 신기한 듯 우리를 처다보고 있다.
로드 아일랜드의 갈리리 바닷가 바위에는 해초가 무성하다.

 저녁에 양 현승 동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부와 캐나다를 여행하는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더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일은 뉴욕시내를 구경하기로 되어 있어서 모래 와싱톤 DC에 가면서  볼티모어에 들리기로 약속을 하였다.

 6월 22일 - 뉴욕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아침 10시 10분에 뉴헤븐을 출발하는  메트로를 타고 가서 뉴욕에 도착한 것이 11시 53분이다. 아주 천천히 가는 것 같으면서도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다. 42번 가에 있는 Grand Central Station에 내리니, 친구는 우선 역 안에 있는 넓은 광장에서 천정을 쳐다보라고 한다. 이 모자이크 그림이 뉴욕의 명물 중에 하나라고 하지만, 역시 그림에도 문외한인 내 눈에는 명물 같아 보이지 않는다.

뉴욕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처음 뉴욕에 올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면서 바둑판처럼 줄을 반듯하게 잘도 맞추어 놓았다고 생각 했었는데, 역시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東西를 잇는 스트리트와 南北을 달리는 애버뉴를 따라가면, 뉴욕에서 길 찾기는 초행자들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2번 街에서 59번 街까지 걸어가면서 브로드웨이와 타임스퀘어, 줄라아드 음대를 거쳐 뉴욕의 허파라고 불리는 센트럴 파크까지 구경을 한다. 피아니스트 한 동일씨를 비롯해서 많은 우리나라 출신 천재 음악가들이 공부 했다는 줄리어드 음대 앞 광장에서 쉬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센트럴 파크의 숲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는다.  세계 제일의 거대한 도시 속에 이렇게 넓은 시민의 휴식공간을 한 두개가 아닌 여러 개를 갖추어 놓은 뉴욕이 과연 땅이 넓은 나라의 도시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뉴욕의 거리에서 우리나라의 상품 광고를 만나니 낯선 도시에서 친구를 만난 듯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1시간쯤 공원을 산책하다가 30일 저녁에 있을 친구의 딸 하영이의 결혼식장을 답사하기 위하여, 58번가와 59번가의 사이에 있는 Hudson Hotel 을 찾아 갔다. 친구네 부부가 결혼식 전날에 오게 되면, 초행인 우리가  결혼 당일 식장을 찾다가 고생할 것을 염려해서다. 행사장인 호텔 24층에 있는 스카이 라운지까지 둘러보고 내려왔다.

뉴욕의 Central Park에서

다리는 아프지만,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구경을 한다. 32번가는 우리 교민들의 거리 이다. 상점과 식당들이 온통 한글 간판이다. 34번 가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구경하고, 다시 42번 가의 Grand Central Station 근처의 작은 공원 Briant Park에 와서 아픈 다리를 쉬었다. 이 공원의 의자는 쉬는 사람들이 갖고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넓은 잔디밭을 마음대로 가고싶은 곳으로 움직이며 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뉴욕하면 마천루와 자유의 여신상이 떠오르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 로어 맨하탄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그 외 많은 볼거리들을 다 볼 수가 없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너무 피곤하여 중앙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돌아 왔다. 미국에서는 절약하는 방법을 알면, 절약하는 길이 많고, 실제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절약하며 사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인 것 같다. 실 예로 기차 값을 one-Way 티켓을 사는 것  보다 Round-Trip 티켓을 사면 할인이 되어서 싸게 살 수 있다. 라운드 트립 티켓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1개월 동안은 언제라도 쓸 수가 있다고 한다.    

 

13. 동부 (2) – 볼티모어, 버지니아

6월 23일 – 와싱톤 DC에 가다가 중간에 양 현승 동문을 만나기 위해 볼티모어에서 내리기로 하고,  New Haven에서 Baltimore까지 가는 09시 11분에 출발하는 Amtrak표를 사는데, 여기에도 경노우대제도가 있다. 요금이 시니어(60세 이상)는 $90.10, 일반은 $106.00 이라며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여,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었더니 할인을 해 주었다.

 
5 시간 동안 뉴욕과 필라델피아 말고도 몇 개의 작은 도시를 거치고,  강과 숲을 지나서, 와싱톤 DC의 북쪽에 자리한 메릴랜드주의 최대 도시 볼티모어에 닿았다. 이곳은 19세기 초 미국 최초의 철도인 볼티모어와 오하이오를 있는 동쪽 출발지로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국립 수족관이 있으며,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구왕 베이브 루스가 태어난 곳이며, 그의 생가에 기념 박물관을 지어 보존하고 있기도 하고,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교가 있는 곳이다.  오후 2시 10분 양 현승 동문이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회색으로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너무 길었음을 실감 한다. 그래도 환하게 웃는 얼굴모습에서 그의 건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도 대뜸 한다는 소리가 하얗게 변한 내 머리카락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가 자기모습이 변한 것은 생각치 않고, 헤어졌던 40대 시절의 생각만 하고 만났던 것이다. 

자동차로 시내를 한바퀴 돌며, 다운타운과, 몇몇 가 볼만한 명소들을 보여주며 자상하게 설명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오늘의 이 도시에 관한 생각보다는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학창시절 우린 왕십리에서 동대문까지 같이 걸어서 통학을 했었다. 간간히 생각나는 옛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그런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한다. 어렵던 그 시절이 지금은 왜 행복했던 추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일까?

양현승 동문의 집 앞에서

그가 경영하는 가게에 가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부인을 만났다. 직장에 다니던 아들과 딸이   부모를 대신하여 가게를 봐주겠다고 나와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자동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친구의 집으로 왔다. 시내와는 다르게 조용한 신흥 주택가인데, 주위 환경이 아주 깨끗하다. 잘 다듬어진 골프코스가 바로 집 주위에 있는데, 골프 할 시간이 없어 골프는 못하고 대신 아침마다 골프장주변을 조깅코스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시작하여 이곳까지 와서 살아야 했던 친구의 파란만장 했던 미국 이민생활사를 들으면서, 孟母三遷之敎의 교훈을 실천한 친구 부부의 자식사랑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희들의 휴일을 포기하고 가게에 나온 남매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잘 자란 젊은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자식 교육을 위하여 애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부모에 그 자식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민 초기의 고생담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친구부부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낸, 그래서 이제는 마음에 평화를 얻은 그 기쁨이 나에게까지 전해오고 있었다.

 

6월 24일 -  Happy Life - The secret of life is not to do what you like, but to like what you do. Life is short to the fortunate, long to the unfortunate. 친구의 딸 나나의 책상 위에 써 붙여 놓은 이 격언을 보면서 나는 생각 했다. 친구가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체험적으로 공감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항상 교육시켜 왔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자세가 확립되어 있을 것이라고. 양 현승 동문의 집에서 하룻밤만 지내고, 오늘은 와싱톤 DC로 가서 버스로 시내관광을 마치면, 저녁에 커네티컷의 친구에게로 돌아가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 부부만 내려 왔었다. 커네티컷의 친구와는 서부와 캐나다 록키를 같이 여행하고 돌아와, 며칠을 집에서 쉬고, 와싱톤 DC까지 같이 여행하자는 것을, 하영이의 결혼날짜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니, 집에서 차분하게 쉬면서 딸의 결혼식 준비를 하라 하고, 우리부부만 볼티모어로 출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양 현승 동문은 오늘이 일요일이니 아이들에게 오늘까지 가게를 맡기기로 했다며 한사코 붙잡는 바람에 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루레이 동굴( Luray Caverns) 입구에서 양현승동문 부부와 함께

 커네티컷에서 친구가 걱정을 할 것 같아 전화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2,3일 늦겠다고 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루레이 동굴( Luray Caverns)이  집에서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점심을 준비하여 두 집 부부가 같이 떠났다. 친구 부인도 우리가 찾아주어서 덕분에 소풍을 가게 되었다며 좋아 한다. 우리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는 말 일지라도 행복해 하는 모습이 좋았다. 1878년 버지니아의 서북부에서 발견된 이 동굴은 10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세난도어 국립공원 지역의  평지에서 석회암층의 지하로 들어가는 동굴이다. 넓이가0.4평방 킬로미터, 높이 9-43미터의 규모에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환상적으로 매달린 종유석과 석순이, 설치해 놓은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스럽게 하고 있는데, 지하 폭포와 호수까지도 있는가 하면 종유석 파이프오르간을 시간 맞추어 자동적으로 연주 되도록 만들어 놓기도 했다.

어린 아이가 안내를 하는데, 얼마나 똑똑하게 설명을 하는지(너무 빨리 말해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놀라와서 나이를 물으니 14살이란다. 그러면 이 동굴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고 물으니 1주일을 공부했으며,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만 일을 한단다. 미국이란 나라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능력이 있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가 보다. 그래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6월 25일 – 어제 루레이 동굴을 가며, 오며 운전하느라 고생한 친구를 생각해서 오늘은 시내 관광을 포기하고 친구의 가게에 같이 나가 친구가 장사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쉬었는데,  저녁에 나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와 함께 아빠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예약했다는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에 근처의 콜롬비아 호수로 우리를 안내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고마웠던지 같이 산책을 하면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14. 동부(3) – 와싱톤 DC,

6 26일 – 아침 8시에 친구의 집 가까이에 있는 롯테마트 주차장으로 여행사 직원이 나오기로 해서 양 현승 동문과 우리 부부와 셋이 나갔다. 워싱턴 DC를 관광하기 위해다. 여행사에서는 우리 세 사람만을 위하여 승용차로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다. 점심 값과 가이드 팁을 합하여 1인 당 $80이란다. 친구는 자기의 승용차로 가자고 했지만,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 할 곳을 찾느라, 주차장에서 왔다 갔다 하느라, 여간 힘들지 않을 듯하여 관광회사에 맡기기로 하였다. 가게는 친구 부인이 혼자 지키겠다고, 친구에게 같이 다녀오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가이드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민 온지  7년 된 교민인데, 관광 안내원답게 지리와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것 같다.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중간에 있는 워싱턴 DC는 연방 직속의 컬럼비아 특별 구역이다.

 

포토맥 강의 상류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고, 다시 강 남쪽에서 강을 따라 달리니 시내가 보인다.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와 Georgetown University 가 나란히 있다며 강 건너를 가리킨다. 1790년 뉴욕, 필라델피아에 이어 세 번째로 미국의 수도가 된 이 도시는 프랑스의 피에르 샤를 랑팡 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설계된 계획도시라고 한다. 포토맥 강을 건너기 전에, 미국의 영웅들과 전쟁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알링톤 국립묘지를 먼저 들렸다. 알링톤 국립묘지의 상징인 알링턴 하우스가 묘역의 제일 높은   언덕 위에 하얀 모습으로 눈에 띈다. 이 집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의 사저였다고 한다.

알링턴 하우스가 묘역의 제일 높은 언덕 위에 하얀 모습으로 눈에 띈다. 이 집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의 사저였다고 한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쳐 이곳에 잠들고 있는 수많은 영령들에게 조의를 표해야 한다.

그 언덕아래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가족묘역이 있는데, 여기에는 일찍 죽은 두 자녀와 재클린의 묘도 함께 있으며, 자기가 죽으면 형의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한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묘도 같이 있다. 아주 검소하게 꾸며진 이 묘역에는 가스 불이 연 중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데, 이 가스 값은 국가에서 지불하지 않고, 케네디 가에서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35번째(제44대) 대통령이었던 죤.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검소한 무덤이다.

 건국이후 세계 각처의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묘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한국전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가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묘비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으니 안내원이 설명한다. 유족들이 원하면 나중에 그 가족들도 한 자리에 상하(각 묘지의 면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로 같이 묻히기도 한다고 한다. 오랜 후에는 유골이 한데 섞여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남녀 차별이 없는 이 나라에서 여군들의 묘역은 따로 울타리를 설치하고 들어가는 문도 별도로 되어 있어서 이상스럽게 생각이 되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녀칠세부동석을 가르쳤는데, 이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死者男女不同臥(?)를 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알링턴 메모리얼 부릿지를 건너 포토맥 강변의 도로 가에 타고간 차를 주차 해 놓고, 걸어서 링컨 기념관으로 간다.  계단을 올라가다 1963년 킹 목사가 연설했던 자리에 그의 유명했던 연설 “I have a dream” 을 새겨 놓은 곳에서 다른 관광객들처럼 우리도 사진을 촬영한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니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서 설계했다는 흰 대리석의 육중한 건물이 탁 트인 시내를 가로질러 조지 와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 법률로 정해서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 사이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건물은 지을 수 없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시내의 다른 곳에도 국회의사당보다 높은 건축물은 허가되지 않기도 한다지만. 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이가 13.4미터가 된다는 36개의 대리석 기둥은 링컨 대통령 시대의 미국 연방을 이루었던 36개 주를 상징하며, 기념관 중앙에 있는 흰 대리석 대좌에 높이 5.8미터의 대리석 링컨 좌상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앉아 있다. 상의 양손은 수화로 A와 L을 말하고 있다는데, 그것은 미국(America)과 자유(Liberty)를 의미하는 것인지?

왼쪽 벽에는 게티스버그의 연설문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그의 재임 취임사가 새겨져 있다. 1915년에 짓기 시작하여 192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가난한 속에서도 뜻을 새워 꿈을 이루기 위하여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그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짜여진 일정에 바쁜 나그네는 발걸음을 옮긴다.

링컨 대통령 좌상 앞에서 양현승 동문과 함께 아내는 링컨을 추모하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다.

 멀리 좌측에 보이는 하얀 건물은 케네디 센터라는 설명만 듣고, 포토맥 강가에 주차해 둔 자동차를 타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걷는다.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으로 가면서 가이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봄철 벚꽃이 필 때의 포토맥 강가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환상적인 산책코스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벚나무를 기증한 일본 사람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란다. 우리는 무엇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거다.

Thomas Jefferson Memorial은 타이달베이슨 남쪽 둑에 있는 기념관으로 1934년에 짓기 시작하여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1943년 4월 13일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기념관 내부는 링컨 기념관과 비슷한데, 지하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고, 많은 방들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쫓겨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가이드는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지 않고, 휘발유를 태우면서 돌아다니는지 어느 무료 주차장에 있다 오는 건지 우리에게 짧은 시간을 허락해주고 정확하게 그 시간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6.25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공원 앞에 우리나라 대사의 헌화가 눈에 띈다.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National Air & Space Museum)으로 가면서 다시 박물관 설립에 관한 설명을 하고, 건물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또 사라진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이라는 이 곳은 실물크기의 비행기와 우주선, 최초 비행기를 만들었던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아폴로 11호의 사령선까지 전시되어 있고, 아이맥스 영화관과 레스토랑까지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취미와는 맞지 않아서 시간이 남는다. 다른 곳을 구경할까 하고 밖으로 나왔으나 무더운 날씨에 가까운 곳에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 미국에 한 번도 와본 일이 없는 스미스 소니언이라는 영국사람은 자연과학과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당시로는 엄청난 50억불 이라는 거금을 미국에 출연해, 그 기금으로 미국 전역에 50개소가 되는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을 세울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 50개 중에서 19개가 워싱턴 DC에 있다는 등,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에는 4미터 짜리 코끼리,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45 캐럿의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 실물크기의 흰 긴 수염 고래의 모형, 곤충코너, 가공기술을 자랑하는 보석들과 원석 광물 전시품들이다. 2층에 한국 관이 있으니 꼭 찾아보고 오라고 한다. 한 구석에서 한국 관을 찾아 들어가 보니, 옛날 궁중 복식 몇 벌과, 인삼, 도자기 몇 점이 있고 정 송강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하는 시조가 영역되어 전시되어 있는데, 제한된 장소 때문인지 아무래도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선물했었다는 보석이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다시 포토맥 강을 건너 버지니아쪽으로 가면서 펜타곤을 지나는데, 9. 11 테러당시 비행기가 폭파 되었던 흔적을 아직도 볼 수 있다며, 국방성의 벽을 자세히 보라는 것이다. 그 흔적을 없앨 수도 있으련마는 지금껏 지우지 않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뜻을 알만 하다.  “힘은 곧 正義다”고 말한 옛날 한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힘에 의하여 정의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우리는 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게 한다.

 

한성식당이라고 하는 교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무료로 배부되는 워싱턴 미디어라는 신문을 보다가 반가운 글을 보았다. 그 신문에 “제비꽃 편지”라는 수필집이 연재되고 있었다. 작가 권 오분 여사는 최 윤기 동문의 부인이어서 마치 먼 타국에 나와서 뜻밖에 아는 사람을 만난 그런 반가운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을 가다가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을 지나면서 설명은 듣는다. 높이가 555 피트 인 오벨리스크 형식의 이 탑은 건축 중에 남북전쟁으로 중단 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건축을 계속해서 시작한지 38년 만에야 완공을 하였는데, 탑 외부의 색갈이 전쟁 전에 공사를 했던 부분과 전쟁 후에 다시 시작하여 완공한 부분이 눈에 띄게 달랐다. 색깔을 같게 할 수가 없어서 였는지? 아니면 아픈 역사를 사람들에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는 모를 일이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백악관에 들리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 천막을 치고, 반핵운동을 위하여 시위를 하고 있는 한 분을 만났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의 사상이나 주의를 남에게 알리고, 설득시키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집요하게 자기의 삶 전체를 내던지는 사람이 또 있을까? 백악관 울타리 밖에서 “이라크에서 우리의 아들을 데려오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백악관 앞에서 28년 동안 반핵시위를 하고 있는 평화주의자와 함께

 이 나라 사람들의 시위문화가 우리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은 자기의 주장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그대로 펼치는 것이다. 내부를 들어갈 수 있으려면 예약신청을 하고 신원조회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은 우리는 밖에서 사진만 몇 컷 찍고 한쪽 옆으로 가니, 이 집 주인의 실물크기의 서있는 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챙기는 사진사를 볼 수가 있었다.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백악관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한 컷.

볼 것은 많았는데 시간이 짧아 생각했던 곳을 다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에 겹쳐서 도로 체증이 심하다. 교통량이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무더운 날씨에 차분히 숨돌릴 여유도 없이 돌아다니며 메모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미진한 것들은 안내원에게 다시 물어 보완을 할 수가 있었다. 

저녁 8시쯤 아침에 출발했던 롯테마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성현이와 나나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근처의 월남식당으로 가서 처음으로 월남국수를 먹어보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쌀 국수의 뜨거운 국물에 엷게 썬 고기와 야채를 넣어 살짝 익혀 먹는 맛에 독특한 향이 괜찮은 편이었다.   

 

15. 동부(4) – 끝 글

6월 27일 -  오늘은 뉴욕을 거쳐 다시 뉴헤븐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그레이하운드의 정기 노선버스를 타기로 했다. 비행기와 관광버스로 돌아다녀 보기도 했고, 암트랙이라는 기차도 타 보았으니, 정기 노선버스도 한 번 타보고 싶기도 했었지만, 나나에게 인터넷을 통해 요금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내려 올 때 탔던 암트랙 요금의 절반 수준으로 값이  저렴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볼티모어에서12시 30분에 출발하는 그레이하운드 정기 노선버스가 4시간 걸려 뉴욕에 도착하고, 뉴욕에서1시간 30분 동안만 기다리면 핫포트 까지 가는 같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다시 표를 별도로 사지 않아도 연계해 준다. 저녁 8시에는 뉴헤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욕 터미널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충분하여 연계되는 버스를 찾아 타는 데는 별로 복잡하지 않은 듯 싶어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던가? 기차로 내려올 때는 냉방시설이 잘 되었고, 좌석도 편했는데, 아무렴 그레이하운드가 우리나라의 고속버스보다 못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 나의 착각이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다가오는 이국의 산천경계를 구경할 생각으로 전망이 좋은 앞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얼마나 오래된 버스인지 좌석도 깨끗하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이 되지를 않는다. 출발하면서 기사가 앞쪽의 에어컨이 고장이니, 덥게 느끼는 사람은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장거리노선버스나 관광버스에는 뒤에 화장실이 있게 마련인데, 더운 날씨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사람을 유쾌하지 않게 한다는데 있다. 승객이 별로 많지 않아서 가다가 너무 더우면 자리를 옮기려니 하고 그냥 앞쪽 좌석에 앉아서 가는데, 오늘따라 다른 날 보다 훨씬 더웠다. 아내에게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하니, 아내는 화장실쪽은 싫다며 그냥 그대로 있겠다고 하여 혼자 자리를 옮겨갔더니, 뒤쪽 에어컨도 바람은 나오는데 찬바람이 나오지 않고 더운 바람만 나온다. 다시 앞쪽으로 와서 더위를 참으며 갈 수 밖에 없었다. 싼 비지떡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승객이 절반밖에 채워지지 않은 이유를 그 때에서야 알 수가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정확하게 4시간 만에 뉴욕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레이하운드의 뉴욕 터미널은 지하에 있다. 시내에 들어오면서 차는 지하도로를 달리니 교통체증에 밀릴 걱정도 없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바꾸어 탈 출구를 찾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서 다시 묻고 하여 겨우 갈아탈 출구를 찾아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나나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해준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저녁을 먹는다. 다행스럽게도 뉴욕의 지하 터미널에는 냉방시설이 좋은 편이어서 기다리는 1시간 반 동안 편하게 쉴 수가 있었다. 바꾸어 탄 버스는 에어컨이 잘 작동되어서 괜찮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퇴근시간이 되어서 도로가 막힌다. 이 기사는 막히는 고속도로의 사정을 방송으로 이야기 하고, 국도로 우회하기도 하여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을 했지만, 평소 2시간 걸리는 거리를 3시간 만에 뉴헤븐에 도착해, 마중 나온 친구를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리게 했다.

 

6월 30일 – 오늘은 하영이의 결혼식이 뉴욕의 Hudson Hotel Skylounge에서 저녁 7시에 있다. 오직 외동딸의 장래를 위해 미국이민을 어렵게 결정했고, 목표했던 대로 하영이는 부모의 기대에 손색 없이 부응하여,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명문학교를 자랑스럽게 마쳤고, 원하던 변호사가 되어 마침내 딸 만큼 훌륭한 사위까지 얻게 되었으니 오늘 내 친구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무남독녀 하영이를 시집보내면서 김일평씨 부부는 어떤 심정일까?
외동딸 하영이를 시집보내는 김일평씨 부부
뉴욕에서의 하영이 결혼을 축하하면서 와인 한잔

뉴헤이븐에서 뉴욕까지는 메트로를 타면 2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점심을 먹고 오후 일찍 출발 하였다. 어제 먼저 호텔에 와서, 먼 지역에서 오는 친지들을 맞고 있는 친구와 그 행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같이 하고 싶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분명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 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으니까...

 

예쁜 꽃으로 장식된 식장은 결혼전문 자문회사에서 꾸몄다고 하는데, 가까운 양가 친지들과 신랑, 신부의 친구들까지 합하여 모두 200명만 초대를 하여서 분위기는 아주 단출하면서도 아늑하다. 여기에 예쁜 한복을 입은 친지들이 많아서 한국적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고, 특히 신부의 친척 중에 미국인 며느리가 있는데, 그 미국 며느리의 한복이 더욱 멋있었고, 거기에 상냥한 한국말로 하객 한 분 한 분께 “어서 오십시요” “고맙습니다” 하는 환영의 인사를 하는 데, 결혼분위기는 그 며느리가 다 잡고 있어서 얼마나 예뻐보이는지…. 

 

신랑, 신부의 들러리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신랑 신부의 입장에 이어 신랑의 친구 4명과 신부의 친구 4명이 짝을 지어 입장을 하는데, 이들의 예복 또한 일정한 맞춤이다. 나중에 물어본 일이지만 이 예복은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자기들이 일부러 맞추어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식순에 이들이 한명씩 신랑 신부와 친분을 맺게 된 인연과 학창시절에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한마디씩 하는 순서도 있다. 대부분이 동양 출신들인데 모두들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문학교 출신들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더라도 모두들 얼마나 예쁜지 탐나는 젊은이들이었다.

하영이의 결혼식 피로연 중에 Hudson Hotel Skylounge에서 뉴욕의 야경을 배경으로
Hudson Hotel Skylounge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

 2시간정도의 결혼식과 폐백시간이 끝나고, 식사와 칵테일 파티가 이어진다. 뉴욕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서의 피로연은 환상적이다. 불빛에 반짝이며 흐르는 허드슨의 긴 강줄기와, 휘황한 거리를 미끄러지듯 흐르는 차량들의 불빛, 빌딩숲에서 비춰주고 있는 형형색색의 네온이 너무도 아름다운 뉴욕시내의 야경을 와인 잔을 들고 내려다보는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 다른 하객들의 마음도 모두 하나같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婚主인 친구도 평소보다  마신 술이 적지 않은 듯 술기운이 거나하여 이보다 더 이상 행복한 날이 없을 것이라며 자꾸 술을 권하지만, 외동 딸을 여위는 허전한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 밤 그를 취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후기: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많은 친구들에게서 과분한 호의와 친절을 받았다. 특히 우리부부를 초청해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내 집보다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초우당 주인 김일평씨 부부, 십 수년 만에 만난 양현승동문 부부와 그 자녀들, 어린시절의 친구 김병희, 최삼섭 목사님, 그리고 김전평 동문. 이들의 정에 넘치는 친절에 마음에 간직한 고마움을 글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이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