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30일
2009년 1월 11일로 정해진 54 산악회의 기축년 첫 원거리 산행지인 제왕산의 답사를 위하여 이장섭 회장과 윤상준 총무, 이인환 회원과 필자까지 4명이 서울을 출발한 시각이 12월 29일 아침 8시 30분. 걱정했던 눈비는 올 것 같지 않은 날씨다. 기온도 혹한기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을 상태였지만 모두들 겨울 산행복장은 완벽했다.
오늘 행선지의 지리에 밝은 이장섭 회장은 거침없이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려 판교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여주 휴게소에서 30분을 지체한(미처 조반을 챙기지 못하고 나온 필자와 이 인환 회원의 빈 속을 채우게 하기 위하여) 후, 뻥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줄 곧 쉬지 않고 달려 대관령 하행선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30분이었다.
차를 세울 때 우리의 눈에 띄는 키 큰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겠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웬걸 정작 차에서 내리니 부는 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긴장하지 않고 내리는 우리 일행을 날려보낼 듯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이 느슨하게 쓴 윤 총무의 모자를 벗겨 날려버리는 통에 우리는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의 선자령 산행 때 경험한 바람에 못지않다.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해발 850 미터가 넘는 대관령은 바람이 많이 불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친 환경 에너지 개발의 일환으로 풍력발전을 하는 시설이 많이 건설되어 있고, 우리 경제가 한창 발전되기 시작할 무렵, 이 험준한 고개를 넘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 지방의 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교통사정이 어렵던 그 옛날 이 고개를 넘는 옛길에는 애환 서린 전설도 많다.
그 한 예로 조선시대 중종 때 고형산이라는 사람은 사재를 털어 수개월간에 걸쳐 강릉과 한양간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험한 오솔길을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넓혀 많은 사람들을 편리하게 했는데, 그 후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해로를 통하여 주문진에 상륙하여 이 길을 통해 쉽게 한양을 침범하게 되었다고 하여, 못난 인조가 훌륭한 일을 하고 죽은 그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근대에 영동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국비를 들였지만, 그 공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돌에 새겨 남긴 것과 비교가 되는 이야기다. 또 강릉에 모친을 남겨두고 한양으로 가던 신사임당이 강릉을 돌아보면서 썼다는 思親詩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고, 아흔아홉구비 험한 길, 구식제무시(GMC)트럭에 짐을 싣고 넘어다니던 운전자들의 사연 많은 이야기들도 전해지던 곳이다.
우리는 대관령 하행선 휴게소 주차장에서 능경봉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세워진 영동고속도로 개통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눈 쌓인 길을 따라 제왕산 등반을 시작했다. 실은 등반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은 것이 우리가 출발하는 대관령의 높이보다 목표하고 가는 제왕산의 높이가 10여 미터 낮으니, 하산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등산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기묘한 산행이다. 아무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산행임에는 틀림이 없다.우리들의 예정 코스는 - 대관령하행선 휴게소 – 능경봉입구 – 제왕산 – 원울이고개 – 대관령박물관까지 총 거리 7.6 킬로미터를 3시간 30분 정도에 산행을 마칠 계획이었다.
지난주에 약 70 CM 의 적설량을 기록하였다는데, 그 동안 녹아 잦아들기도 했지만 엊그제 다녀간 듯한 등산객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이 우리들의 산행을 수월케 해주었다. 영동고속도로준공비에서 우측으로 눈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니 林道가 나오고, “인풍비” 라는 표석이 세워진 약수터가 있는데, 여기에서 능경봉으로 가는 길과 제왕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평평한 산길을 또 10여분 걸어가면 다시 임도와 만나고 여기서 약간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오른쪽 앞에 선자령(1157m)의 멋있는 설경이 펼쳐지고, 왼쪽 앞에는 능경봉(1123m) 의 장엄한 봉우리가 버티고 서있는가 하면 뒤쪽에 제왕산의 봉우리 너머에 묵호시의 하얀 건물들의 모습이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시야에 들어온다.
낮 12시 40분쯤 841미터의 제왕산 정상에 오르니 역시 거센 바람은 수 백년을 버티고 서 있었을 것 같은 고사목과 비슷한 나이쯤 되어보이는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를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도 시련을 겪고 이겨내면 더 강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온갖 풍상과 눈비와 한파를 견디어온 이 소나무가 범상한 나무로 보이지 않아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나무 곁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장갑을 낀 손이 시릴 정도로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5, 6 명이 앉을 만한 아늑한 바위 아래 자리를 잡고, 우리는 이장섭 회장이 준비해온 과매기 안주에 50도 증류주를 두어 잔씩 마시니 허기와 추위를 한꺼번에 잊을 수 있었다. 충분한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덧 40분쯤 시간이 지났다. 오후 1시 20분쯤 우리는 어흘리 방향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도중에 원주에 있는 김명환 동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돌아가는 길에 원주에 들려 저녁을 먹고 가란다. 고마운 제안이다.
넓은 설원과, 하늘높이 빽빽하게 솟아 곧게 자란 낙엽송림과 소나무 숲길을 지나 내려오니 대관령 옛길과 만나게 된다. 옛길 따라 이어지는 계곡은 겨울철인데도 바위 위로 맑은 물을 소리 내어 흘러내리고 있어, 그 소리는 마치 나무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와 잘 어울리는 자연의 합창과도 같이 들린다. 옛 주막터를 지나 내려오니 현대식 팬션들이 들어서 있고, 길가의 등산객들을 위한 공중변소는 도심의 호텔 화장실만큼이나 깨끗한데, 거기에 더하여 은은하고 아름다운 경음악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거용 화장실을 사용하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빠르게 좋아진 것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과 대관령박물관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박물관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니 옛날 고을 원님이 두 번 울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원울이고개(員泣峴)를 지나게 된다.
옛날 강릉에 발령을 받은 지방관이 한양에 그 가솔들을 두고 홀로 부임하면서 한스러워서 울던 고개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강릉 사람들의 따뜻했던 정을 두고 떠나는 아쉬움에또 한 번 울고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이 고개의 이름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보도 블록과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천천히 걸어 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가 조금 지났다.
다시 우리의 차를 주차시킨 대관령 휴게소로 넘어가기 위하여 택시를 불러놓고 잠시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니 택시가 도착하였다. 박물관 아랫마을에 식당을 예약할 생각으로 몇 군데를 들러보았으나, 시설이나 음식이 적당치 않아 지난해 선자령 등반 때 들렸던 횡계의 황태정식을 먹었던 곳이 적합하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택시로 구불구불한 대관령 고개를 넘어와 식당 예약을 마치고 원주를 향해 출발한 시간은 4시 25분,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해서인지 산간지방의 어두움은 일찍부터 드리우기 시작한다.
저녁 6시쯤 원주에 도착해서 김교수가 안내하는 “산정식당”에서 '말이고기'(얇게 썰은 소고기를 적당한 길이로 자른 파에 말아 기름에 튀기면서 먹는 안주)에 소주 각 1병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적당히 취하여 7시가 넘어 귀경 길에 올랐다. 운전하느라 좋아하는 소주도 마시지 못한 이장섭 산악회장의 노고에 감사하고, 함께 한 이인환 윤상준 동문들도 고마웠고, 산행은 같이하지 못했지만 우리를 위하여 마음 써준 김명환 동문의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