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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기(鐵馬山 / 鑄錦山)

鐵馬山(786.8M) / 鑄錦山(813.6M) 

                                                                 2007년 11월 25일 

오늘은 화악산 줄기의 대표적인 명산인 鐵馬山 鑄錦山을 오르기로 하고 김명환, 정달화 두 동문들과 세 사람이  아침 8시에 지하철 2호선 강변 역에서 만나기로 어제 갑자기 약속을 했었다. 기실 얼마 전부터 박홍근 동문과 수락산행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수락산이야 매월 가는 산이고, 철마산과 주금산은 초행이어서 박홍근 동문의 양해를 얻은 후 철마산쪽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절기상으로 엊그제가 소설이어서 제법 쌀쌀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특히 겨울 산행에서 필수적으로 준비 해야 하는 두터운 옷으로 무장을 단단히 하고, 물과 약간의 간식을 챙긴 배낭을 메고,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섰는데 안개가 짙게 낀 것을 보니 오늘 날씨는 생각처럼 심하게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김 교수의 동행 제안을 받은 후에 인터넷을 뒤져 보니, 鐵馬山은 양주시 진접면, 진건면, 수동면에까지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옛날 장군이 巖窟에서 철마를 타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어 철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이 산은 주금산과 천마산 사이에 있어 장거리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석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해서 천마산, 철마산, 그리고 주금산까지 12시간쯤 걸려 세 개의 좋은 산들을 한꺼번에 종주를 하여 베어스타운이 있는 포천시 내촌면으로 하산을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긴 코스를 겨울철에 한꺼번에 종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싶어 총 산행시간을 7시간으로 예상하고 철마산과 주금산만 종주하기로 한 것이다.
 
鑄錦山은 산이 부드럽고 아름다워 일명 비단산이라고도 불리는데,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과 남양주시 수동면 그리고 가평군 상면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경기 5악의 하나인 운악산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으며, 남동으로 갈라진 지맥은 서리산과 축령산으로 이어지고 이 능선사이로 흐르는 수동천 상류에는 명소 비금 계곡이 있다고 한다.
 
계획된 코스대로 강변역 앞에서 광능내행 10번 노선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진벌리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갈아 탔고, 진벌리 종점 마을회관 앞에서 철마산 등산로를 찾은 시간이 09시 30분이었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는 곧게 자란 낙엽송들이 노란 잎을 수북이 떨어뜨려 길 위를 푹신푹신하게 덮어놓아서 걸어가면서 발에 느끼지는 촉감이 부드러웠을 뿐 아니라 노란 담요로 차가운 대지를 덮어놓은 듯 한 등산로 초입의 분위기는 낮선 방문객들을 포근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계곡에서 산등성이로 길을 바꾸니 낙엽송 대신 활엽수들이 어른 손바닥 만큼씩 한 넓은 잎들로 길을 수북이 덮고 있다.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낙엽을 잘 못 밟아 미끄러지는 것을 겨울철 등산에서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쌓인 나뭇잎들을 헤쳐가며 숨차게 1시간 가까이 올라가니 비로소 우리가 찾는 천마산 – 철마산 -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나타난다.
 
10시 25분 쉴 자리를 잡아 저마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걷히는 안개 너머에 우리가 지나온 진벌리 마을이 제법 아득하게 보인다. 가까이 눈을 돌리니 산 등성이에 서있는 잎이 다 져버린 벌거벗은 활엽수들과, 메말라 퇴색된 잎을 아직도 매달고 서 있는 단풍나무를 보면서 불과 몇 週 사이에 아름답던 모습을 이렇게 변화시켜버린 흘러가는 시간의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시간 따라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을 어찌하랴? 봄에 피어난 신록에 대하여,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에 대하여, 또 가을날의 그 아름답던 형형색색의 파노라마에 대하여 우리는 그때마다 찬탄을 아끼지 않았었는데…이제는 앙상한 이 가지 위에 하얀 눈이나 소복이 내려와 마지막 계절의 아름다움을 雪花로 피워내 주기나 기대해 보아야 할까?  자연의 일 부분인 우리도 마지막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장식하여 설화와 같은 모습을 보이다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정달화 동문이 준비해 온 탐스러운 홍시를 한 개씩 나누어 먹으면서 시골에서 보내준 이 홍시에 얽힌 이야기에 잠시 옛 추억을 생각 하고, 그 때와는 너무나 변해버린 오늘의 현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변해가는 것들을 무감각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혹 순수함을 무디게 해버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다시 일어나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향해 걷는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땀 흘리며 넘고 넘어도 철마산 정상은 보이지를 않는다. 봉우리 하나를 넘을 때마다 숨을 잠시 돌리고, 1시간 40분만에 봉우리 3개를 넘고서야 다음 봉우리에 오르니 드디어 786.8미터 철마산 정상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정상비는 2개가 있다. 한 개는 둥글넓적한 별로 크지 않은 돌에 鐵馬山이라는 漢字글씨 밑에 786.8미터의 산 높이를 새겨놓았고, 다른 한 개는 보통 산의 정상비와 마찬가지로 대리석 돌 비에 새로 글씨로 한글로 된 철마산이라는 글씨 밑에 산 높이를 새겨 놓았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철마산의 높이가 711미터 였었는데, 이곳 정상비에는 75.8미터나 차이가 나게 적혀 있으니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12시 05분 정상에서 사방을 휘휘 둘러 본다.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하얀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섬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것은 도봉산의 만장봉과 선인봉이 그 끝 부분만을 구름 위로 내밀어 자신들의 수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맑은 날 늘 보아왔던 도봉산의 모습이 아닐 뿐 아니라 오늘 같은 날에 이런 곳에 올라보지 않고서 어찌 이러한 모습을 볼 수가 있을까? 그것은 천상의 신선이 그려놓은 한 폭의 신비스러운 그림이다. 취한 눈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돌처럼
서 있다가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축령산과 서리산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늘 산에 오르면서도 느껴보지 못하던 감동이다.
 
주금산쪽으로 방향을 잡아 몇 미터 자리를 옮기니 바위 위에서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멋진 형상으로 기풍을 간직하고 서있는 소나무가 있어 그 옆에 자리를 펴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풀어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떡, 과일, 부침개에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한진씩 하고 나니 피로가 풀린다. 오늘은 평소보다 긴 산행이니 오래 쉴 수가 없다. 겨울 짧은 해에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마치려면 쉬는 시간을 최소화 할 수 밖에 없다.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면 오후 3시 이전에 주금산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서 처음으로 등산객 두 사람을 만났다.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고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 첫번째 고개 위에 오르니 오후 1시 20분이다. 평평한 헬리콥터장이 있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주금산쪽에서 오는 젊은 등산객 두 명을 또 만나게 된다. 주금산에서 여기까지 40여분 걸려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려오는 길이였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임을 감안해서 우리가 올라가야 할 속도로는 최소한 1시간 30분은 걸릴 것을 예상하면 주금산 정상까지 3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어 느긋해진 마음으로 급경사진 철마산의 마지막 능선 길을 조심조심 내려와서 주금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鑄錦山 글자대로 풀어보면 쇠를 녹여 부어 만든 비단산 이겠지만, 잘못 발음하면 주검산 같이 들린다. 그러나 오르는데 초 주검이 될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길은 비단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적당히 살 오른 여인이 비단옷을 걸쳐 입은 듯 부드러워 발이 편하다.
 
送電塔쯤 올라가니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비껴 서있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들을 하면서 지나간다. 땀을 흘리며 급경사를 올라가니 독을 엎어놓은 듯한 독 바위가 있고, 그 곁에 정상인 줄 알고 올라간 봉우리 옆에 정상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다음 봉우리가 정상인 듯 싶어 쉴 새도 없이 내 달린다.
 
2시 45분 드디어 813.6미터 주금산 정상이다. 정상비가 서있는 곳은 흙이 질척거릴 정도로 돌이 없는 토산이다. 옆에는 맹호부대 장병들이 태극기를 새웠던 곳에 국기 봉은 없어지고 표석만 남아 있다. 표지판을 보니 베어스타운 스키장까지 남은 길이 2.32킬로미터, 어두워지기 전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점심때 남긴 컵 라면 2개와 주먹밥을 헤치우기 위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땀을 닦으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아득한 길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컵 라면과 주먹밥을 나누어 먹고 커피까지 한잔씩 마시고 시간을 보니 3시 10분이다. 천천히 하산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군데군데 군인들이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암거와 참호를 보면서 정 달화 동문은 벌써 40년이나 지나간 시절의 힘겹던 군대생활 당시의 추억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오후 4시 25분 정확히 7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베어스타운을 옆으로 지나 내촌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와 기다리다가 서울행 버스를 탄 시간은 4시 40분이었다. 오랜만에 한 긴 산행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 듯하여 피곤함보다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