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19 – 2007.5.20
종주 코스 : 남설악 매표소 – 설악폭포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소청봉 – 희운각대피소 – 1275봉 – 나한봉 - 마등령 – 비선대 – 신흥사 – 소공원
작년 8월에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오면서도 점봉산에만 다녀오고 대청봉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시간을 내어 꼭 한번 다녀오려니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초행길에 혼자서 떠나기에는 부담이 되어 주저하고 있던 차에 김 명환 동문의 같이 떠나자는 제의에 무조건 떠나기로 했다.
5월 19일 저녁 10시 50분에 지하철 2호선 강남역 6번 출구 앞에서 설악산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종주하기 위해 떠나는 사파리클럽 산악회에 합류했다. 익일 03시쯤 오색에 도착할 예정이라니 차에서 몇 시간이라도 자야 한다. 토끼잠을 자다가 차가 멈추어 서는 바람에 잠을 깨어보니 벌써 설악휴게소에 도착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휴게소는 성황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일행만 해도 대형 관광버스 4대에서 180명 정도가 내렸으니 붐빌 수밖에. 새벽 공기가 약간의 한기를 느끼게 한다. 따끈한 차 한잔씩을 마시고 다시 버스에 올라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한계령을 넘어 오색의 남설악 매표소에 도착한 것이 03시 10분. 랜턴을 준비하고 배낭을 메고, 차에서 내리니 긴 행렬이 벌써 산행을 시작하고 있다.
08시 30분까지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는 사람들만 공룡능선을 가도록 하고, 그 이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천불동 계곡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하여 발길을 재촉한다. 03시 15분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나무 숲길을 걷는데 간간히 걷어올린 내 팔뚝에 서늘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출발을 했는데, 설악산의 날씨는 예상을 불허한다며 비가 내릴까 걱정을 하는 김 교수다. 숲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 길을 오르면서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과 W자 형상을 한 가시오페어가 선명하게 맑은 하늘에서 반짝인다. 나뭇잎에 맺혀있던 이슬이었던지 빗방울은 아니었던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남설악 매표소에서 설악폭포까지 2.5km를 가는데 2시간쯤 걸리고, 설악폭포에서 대청봉까지도 2.5km이니까 2시간쯤 소요될 것이므로 대청봉까지 07시 15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각오로 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앞서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뒤로 쳐진다. 랜턴 불빛을 따라 돌계단 길과 사다리 길을 지나고 어제 내린 비로 질척거리는 흙 길을 숨차게 올라가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시원한 물소리에 이마의 땀이 식는 듯하다. 여기가 설악폭포다. 사위어가는 어두움 속에서 폭포의 흰 물보라가 보이는가 하면, 멀리 산의 능선이 뚜렷해지기 시작하고, 랜턴의 불빛 없이도 주변의 물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시계는 04시 45분을 말해주고 있다.
잠시의 휴식 후 다시 강행군이다. 이젠 랜턴이 필요하지 않다. 일행의 얼굴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남녀노소가 섞여있다. 아마도 우리가 최 고령자로 생각 된다. 06시쯤 선체로 쉬면서 주변의 산들을 바라본다. 모든 산들이 우리들의 발아래 펼쳐져 있다. 날씨는 쾌청할 것 같다. 등산로를 다듬기 위하여 커다란 자루에 돌과 모래를 헬리콥터로 실어다 놓은 듯 여기저기 무더기로 쌓여 있다.
06시 26분, 해가 벌써 솟아 있다. 땀 흘리며 힘들게 오직 정상만을 향해 강행군을 하다 보니 일출의 장관도 보지를 못했는데 드디어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이 우리를 맞는다. 김 교수는 이미 10여 차례 다녀간 곳이지만, 나로서는 대청봉을 처음으로 밟아본다는 흥분 때문인지 가히 쉽지 않은 코스를 한 시간 가까이 단축시켜 올라온 것이다. 아침 태양이 좋은 날씨를 예고하듯 밝게 비춰주고, 발아래 사방으로 솟아있는 모든 봉우리들도 그 위용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모두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김 교수는 우리가 거쳐 지나야 할 공룡능선의 1,275봉, 나한봉, 그리고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기암괴석이 끝없이 이어지는 코스를 설명한다. 과연 내가 저 먼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감을 갖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우리는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하여 기념사진을 남기지 못했으니, 카메라를 준비하여 다시 찾아오자는 약속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중청대피소를 향한다.
내려가면서 보니 작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정도의 높은 고산에는 소나무가 서식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의 소나무들은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땅에 누어서 자란다. 키가 3, 40cm쯤 될 듯하여 새로 나서 자라는 소나무쯤으로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팔뚝보다 굵은 꾀나 해묵은 소나무들인데 신기하게도 모든 나무들이 몸통은 땅에 누워있고 새 순만 위로 솟아 있다. 바람이 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 방법이다.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서도 느끼던 끈질긴 생명력을 다시 본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좋아하는가 보다.
06시 50분 중청대피소에서 준비해 간 주먹밥과 떡, 그리고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기가 바쁘게 희운각 대피소를 향한다. 내려다보니 바로 발아래 있는 듯 보이는데, 내려가는 데는 꾀나 힘들고 먼 길이다. 지난해 폭우로 휩쓸려 내려간 등산로를 보수하기 위하여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면서 지나간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수명을 다 한다며 작별을 고한다. 김 교수의 휴대폰은 내 것보다 먼저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제 시간을 알 수가 없다. 희운각 대피소의 계곡 맑은 물을 빈 물병에 채우고 땀을 닦고 시간을 물어보니 08시 10분이란다. 대기하고 있던 등반대장이 공룡능선으로 가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제한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왔으니,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가야 할 제2진으로 쳐질 수는 없다.
5시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피로를 느끼면서도 이제부터 힘든 길의 시작이라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출발한다. 조금 전에 대청봉에서는 훗날 다시 올 때에는 카메라를 준비해 와서 기념사진을 남기자고 말은 했지만, 김 교수도 나도 우리가 다시 이러한 힘든 산행을 하겠다는 의지를 몇 년이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웃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10시 10분에 도착한 것이 1,275봉이다. 양쪽에 거대한 암봉이 솟아 있는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평평한 고개 마루가 사람들의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먼저 온 10여 명이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는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땀 흘리며 힘든 고행을 같이 했기 때문인지 금방 허물없는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초콜릿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피로를 풀고 다시 출발이다.
12시 10분쯤 나한봉을 지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등령 3거리에서 12시 40분에 점심을 먹는다. 백담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오세암을 거쳐 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3거리이다. 마등령을 지나는 길은 공룡능선에 비하면 평지와 같다. 그러나 11시간 이상 힘든 산행을 한 피로한 몸으로 마지막 비선대 쪽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돌계단 길의 지루한 여정은 내 체력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15시 15분 비선대 휴게소에서 세수를 하고, 하늘을 향해 기운차게 뻗어 자란 금강 송 울창한 숲길을 따라 신흥사를 거쳐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16시 05분이다.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13시간의 설악산 공룡능선의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간단한 저녁 식사를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질퍽하게 앉아서 맛있게 먹고, 가을 단풍이 아름다울 때 다시 한번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귀경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