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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읽기(로디지아 발 기차)

작가 소개 - 네이딘 고디머(Nadine Gordimer, 1923~2014)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여성 작가이다. 윤리와 인종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가 펼친 인종 차별 정책의 해악을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하여, 아프리카의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199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거짓의 날들’, ‘보호주의자’, ‘버거의 딸 등이 있다.

 

로디지아 발 기차

기차는 붉은 지평선을 뒤로하고 곧게 뻗은 단선 선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자그마한 벽돌로 지어진 역사는 뾰쪽한 스위스 풍의 지붕을 얹고 있었다.

역사 안에서는 주름이 반듯한 제복을 차려입은 역장이 기차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고,

역사 밖에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던 원주민 상인들이 물건 팔 준비를 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망연히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놀란 사자 목각상이 한 원주민의 자루 밖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역장의 아이들은 맨발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너저분한 지붕을 머리에 얹은 한 토담집에서 뛰쳐나온 닭들과 앙상한 뼈만 남은 개들이 선로를 따라 늘어선 흑인 원주민 아이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은 역사와 잡화점이라는 간판을 단 양철 창고, 그리고 사방으로 울타리가 쳐진 오두막과 역장의 양철집뿐만 아니라 모래 위의 모든 것을 휘감으며 하늘 저 너머로 열기가 식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복사열 속에서 모래벌판은 바다처럼 웅얼거리기도 했다.

 

어느새 노을은 흑인 원주민 아이들의 새까만 발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역장의 아내는 베란다에 쳐진 망사 위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머리 위에 매달린 양고기 한 덩이가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그들은 기다렸다.

기차는 다가오며 하늘을 향해 우렁찬 울음을 울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어요,.... 내가 간다고요.” 

기차는 갈수록 작아지는 물체를 흔들며 뜨거운 화염을 후끈하게 내뿜었다.

선로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 뒤로 급격한 소동을 한 번 치더니 기차는 헐떡이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침내 역 안에 정차했다.

열차의 창문이 일제히 열렸다

마님!”

 한 소년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이며 한 여자 승객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소년의 손에는 잘 짜인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소년은 마님! 사세요! 하고 묻듯 바구니를 그녀를 향해 들어 올렸다.

아니, 됐어요.” 

그 여자의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선로 밖의 일행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한 촌로(村老)를 가리켰다.

 

바로 저거예요.”

그녀가 길고 흰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건조목에 새겨 만든 사자상이었다

검고 흰 문장이 있는 인상적인 조각상이었다

사자상을 들고 있던 노인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들어 보였다.

떡 벌어진 입 밖으로 우렁찬 포효 소리가 들릴 듯했다

그리고 뾰쪽한 이빨 사이로는 검은 혀가 언뜻언뜻 내비쳤다아주 멋진데!.”

사자상의 목 주변에 진짜 갈기처럼 붙어 있는 털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아주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군.” 

먼지를 뒤집어쓴 상인들은 기차를 따라 위아래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공연 중인 동물들처럼 구부정하게 늘어서 기차 안을 향해 이것저것 그럴듯한 물건들을 쳐들었다.

화들짝 놀라 희고 검은 동공을 크게 열어 놓은 수사슴을 비롯해 꼿꼿하게 곧추서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제압한 듯한 사자상들이 눈에 띄었다.

쭉 째진 눈으로 단단히 창을 잡아 쥔 채 두려움 없이 서 있는 기다란 전사상들도 보였다.

"얼마요?” 

열린 차창으로 여기저기에서 흥정이 붙었다

한 푼 만 줍시오.” 

아무것도 팔지 않고 구걸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철도원이 돈과 조각상들이 교환되느라 얽혀 있는 검은 팔과 흰 팔들의 아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철도원이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큰 소리로 농담을 하자, 아이들은 돌아보고 웃으며 한 손에 빵 조각을 움켜쥔 채 황량한 들판 쪽으로 내달렸다.

열차 객실은 돈을 가지러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열차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흡사 갇혀 있고 단절된 것 같았다

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오랜지가 있었는데...,” 

그 초콜릿 어쨌지?” 

그거 별로야.”

한 어린 소녀가 초콜릿을 한 움큼 쥐더니 식당 칸 옆의 개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초콜릿이 개들의 입에 닿기도 전 닭들이 달려와 빠르고 정교한 동작으로 그것들을 낚아채었다.

황당한 개들은 어수룩한 표정으로 그 상황을 담담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안 돼, 내버려 둬, 너희들은 저리 가.” 소녀가 외쳤다

좀 비싼대요,” 

사자상을 두고 흥정을 하던 백인 여자는 그 조각품을 물리면서 말했다.

원주민 상인이 그 물건을 다시 들어 보이며 살 것을 권유했지만 그녀의 결심은 굳은 듯했다.

삼 실링 육 펜스요?” 

옆에 있던 남편이 과장된 표정으로 크게 물었다

, 나리”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삼 실링 육 펜스라!” 

남편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다음에 사요.” 여자가 채근했다

당신이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거잖아.” 

남편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에요, 다음에 살래요.” 

여자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자 원주민 상인은 사자상을 들고 머리를 갸우뚱한 채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삼 실링 육 펜스라!” 

여전히 남편은 나이 든 노인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자는 머리를 차창 안으로 집어넣고 열차 뒤쪽으로 가서 앉았다.

반대편 차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래 들판과 덤불 그리고 가시가 돋은 관목들뿐이었다

남편이 앉은 뒤편으로는 마지막 객차의 출입구가 있었다.

그 출입구의 문을 열면 역의 모습과 춤추듯 흔들거리는 동물 조각상들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고, 원주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여자의 눈은 역사의 지붕을 소용돌이치듯 휘감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자상이 생각났는지 미소를 머금었다.

특히 목 부분의 갈기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여자가 타고 있는 객차의 선반에는 사자상은 물론이고 수사슴이며 하마상 그리고 코끼리상 등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 조각상들을 집에 모셔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원래 있어야 할 장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지난 몇 주 동안 보았던 비현실로부터 현실 속으로 옮겨진다면 말이다.

여자에게 지난 몇 주 동안 보았던 풍경들은 익숙한 현실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현실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밖에 있는 남편은 비현실의 일부가 아니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언제부턴가 남편이, 아니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것들이 생전 처음 와 보는 어떤 곳에서 만나는 휴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밖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역장이 말려 있는 녹색 깃발을 들고 기차 끝에 기대서 있었다.

다리를 폈다 접었다 가볍게 몸을 푼 사람들이 기차 위로 다시 뛰어올랐다.

사람들은 철재 계단에 서 있거나 난간을 붙잡고 있었고 심지어 플랫폼에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기차가 한 차례 요동을 쳤다.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망사 뒤 역장의 아내는 기차를 등지고 거무칙칙한 고깃덩어리 밑에 앉아 있었다

고함 소리가 들리고 깃발이 날렸다. 열차가 선열에 잘 맞춰져 있지 않았는지 몸체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기차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샬레 풍의 역사 지붕이 움직였다.

기차를 따라 달리는 원주민들의 고함 소리가 가팔라졌다 물건값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무조각상 얼굴들이 마지막으로 승객들의 구매 의향을 묻는 듯 차창 너머로 뛰어올랐다 사라졌다.

일 실링 육 펜스에 가져가세요, 나리!” 

흡사 날아오는 공을 잡듯 사람들의 손들이 바빠졌다.

한 남자가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 일 실링 육 펜스를 꺼내 던졌다

따라오던 한 늙은 원주민이 숨을 헐떡거리며 마른 발가락으로 모래바닥을 세차게 차 내면서 사자상을 던져 주었다.

 

개들도 떠나는 기차를 배웅하듯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토담집의 한 여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았고, 역장은 서서히 살레 지붕의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늙은 원주민은 갈빗대 사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모래 속에서 불안한 균형을 잡은 채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무언가를 받는 자세로 떠받쳐진 손바닥에는 조각품의 값으로 받은 일 실링 육 펜스가 놓여 있었다

이제는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기차는 꼬리를 흔들거리며 역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남편이 숨을 몰아쉬며 객실로 돌아왔다

그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 이걸 보시라.”

그가 사자상을 흔들며 말했다.

일 실링 육 펜스에 샀어.”

뭐라고요?”

그녀가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장난삼아 마지막으로 값을 흥정했지. 그랬더니 기차가 막 떠나려고 할 때 그 노인이 기차를 따라오며 일 실링 육 펜스에 가져가라고 하더군.”

그가 만면에 희색을 띄며 말했다.

자 이거 당신 선물이야.”

여자는 조각상을 받아 들었다. 떡 벌어진 입, 뽀쪽한 이빨, 검은 혀 그리고 섬세한 갈기! 여자는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듯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생각대로 일이 잘 되어 가지 않을 때 아이들이 짓는 표정처럼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눈썹은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고, 입 가장자리는 신경질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여자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사자의 갈기를 어루만졌다.

당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여자의 얼굴엔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뭐가 도대체 왜 그래?”

당황한 남편이 물었다.

이걸 그렇게 사고 싶었으면...,”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왜 처음부터 사지 않고 그렇게 뜸을 들였죠? 왜 기차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샀으냐 말이에요, 그것도 일 실링 육 펜스에 말이죠

여자는 사자상을 남편에게 떠다밀었다.

이거 당신이 갖고 싶었던 것 아니야? 무척 맘에 들어했잖아.”

물론이에요. 그렇지만 이건 아주 훌륭한 조각품이라고요.”

여자는 마치 조각품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맹렬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 조각품이 맘에 드는데 너무 비싸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이봐요.”

여자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격하게 말을 내뱉었다.

당신...,”

여자는 사자상을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남편은 망연자실(茫然自失) 여자를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모퉁이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창밖을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갖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교차하는 것 같았다. 일 실링 육 펜스라!

나뭇조각과 다리의 근육과 채찍 같은 꼬리를 사는데 일 실링 육 펜스라! 그렇게 늠름하게 벌려진 입과 파도처럼 말려 있는 검은 혀에 그토록 정교한 목의 갈기까지 얻는데 일 실링 육 펜스라!

분노로 인한 열기가 여자의 다리를 타고 목까지 올라와 귀에 모래를 쓸어 내는 소리를 쏟아부었다. 그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자는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꼈다. 피로와 무기력함과 불현듯 찾아든 공허감이 여자의 사지로 퍼져 나갔다.

여자의 육신에서 소중한 그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여자는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된 외부와의 단절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다시 평상심을 회복했다.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시 요동치게 할지도 모를 물건과 말 그리고 풍경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듯 입을 꼭 다문 채 무념무상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차창 밖에서 검은 재 가루가 날아와 여자의 손등에 내려앉았다. 여자는 다리를 죽 뻗은 채 손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남편과 구석 한편에 모로 쓰러져 있는 사자상을 등 뒤로 한 채 돌아앉아 있었다.

기차는 허물을 벗듯 역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갑니다, 내가 간다고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