仲美山 (834미터)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가평군 설악면 가일리
산행일 : 2007년 9월 28일 산행자 명단 : 김명환 부부, 정달화, 이휴재 (총 4명)
산행 코스 : 정배초등학교 명달리 분교 – 임도따라 양현리 – 선어치 – 중미산 정상 – 절터고개 – 임도 – 정배 초등학교 명달리 분교 (4시간 소요)
어제 김 명환 동문으로부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새로 지은 정 달화 동문의 집을 방문해 볼 겸해서 양평 쪽 산행을 하자는 제의를 받고 정달화 동문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은 잠실에 머물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 잠실 부근에서 같이 출발하자는 대답을 받았던 터였다.
8시 15분 지하철 2호선 잠실역 7번 출구에서 정달화 동문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휴대폰이 울린다. 김 교수가 부인과 같이 나와서 KTF 건물 뒷길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을 흘려야 했던 무더위는 언제였더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도심에서도 가을을 느끼게 한다.
별로 체증이 없는 미사리까지의 도로를 따라가다가 양평대교를 건너 양수리에서 북한강의 잔잔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청평 쪽으로 10여분을 가다, 길 가의 하얀 펜션 앞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문호리의 정 달화 동문의 새로 지은 집이 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안주인도 없는(안주인은 잠실에 머물고 있었음) 집 내부를 잠시 둘러보면서 아래층 위층 할 것 없이 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에 우리는 탄성을 금치 못했다. 울타리 밖에는 그가 가꾸어 놓았다는 채마밭에서 무 배추들이 자라고 있어서 친구의 행복한 전원생활을 눈에 보는 듯하다.
정달화 동문의 집에서 30분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중미산을 찾기 위해 다시 차를 달려 서종 면소재지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어 2차선 시골길을 구불구불 지나고 산속으로 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30분쯤 천천히 달려 우리가 산행지도에서 찾던 서종면 명달리에 있는 정배초등학교 명달리 분교를 찾아가니 언제였는지 학교는 폐쇄되고, 무슨 산림체험학교가 대신 간판을 붙여놓고 있었다.
새끼줄로 막아놓은 정문에서 줄을 늘어뜨리고 학교 마당에 들어가 차를 세워두고 옆에 있는 식당에서 등산로를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하여 준다. 택지개발을 하고, 펜션을 짓고, 길을 넓히는 등 지역개발이 한창인 명달리 마을을 가로질러 개울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걷기 시작할 때가 11시가 다 되었고, 양현 마을을 지나 선어치에 이르니 11시 40분, 지나가는 등산객은 물론 새워놓은 표지판 하나 없었지만 우거진 풀숲에서 등산로를 찾아 오르다 보니 길은 차츰 등산로의 모습을 나타내고, 먼저 지나간 산악회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이 하나 둘 보였다. 우리가 길은 제대로 찾은 것이다.
한참을 올라가다 가평군 설악면 쪽에서 혼자 올라오는 등산객을 만나니 반갑다. 그가 묻는 소구니산 가는 길을 친절히 안내해 주고 우리는 중미산을 향해 반대편으로 간다. 김 교수가 처음 종주하고 싶었던 산행코스는 명달리에서 삼태봉(683m)을 지나 절터 고개에서 중미산(834m)을 지나고 선어치 고개에서 다시 소구니산(888m)으로 갔다가 유명산(862m)까지 돌아서 설악면 가일리 쪽으로 하산하는 것 이었지만 오늘은 출발시간도 늦었을 뿐 아니라 자동차를 운전해와서 명달리에 주차시켰기 때문에 주차지로 하산하기 위해서 산행코스를 짧게 잡았던 것이다.
땀을 흘리며 한 고개를 올라가니 여기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중미산 정상이 1.3Km라니 얼마 남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과일과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오르는 길은 아주 푹신푹신한 산행하기 좋은 토산인데 정상은 바위산으로 되어 있다. 834미터 중미산 정상에 섰을 때가 오후 1시가 조금 지났다. 멀리 동쪽으로 용문산 정상이 손짓으로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휘휘 사방을 둘러보며 땀을 식히고 나서 정상비를 안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저마다 조금씩 준비해온 떡과 과일을 펼쳐놓으니 푸짐한 성찬이 부럽지 않다. 여기에 한잔의 頂上酒는 항상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배불리 음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자리를 양보해야 할 등산객이 전혀 없다. 오늘 중미산 정상뿐 아니라 전 상행 코스가 거의 전부 우리들 차지가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행 때마다 겪던 복잡함과는 너무도 다르다. 절터 고개로 내려오는 급경사 길을 지나니 다시 올라가던 임도가 나타난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은 야생화가 탐스럽게 피어있고, 여기저기 서있는 밤나무에서는 머지않아 알밤이 쏟아질 것이다. 길에서 잣송이를 물고 사람을 피하지 않는 다람쥐는 풍성한 가을을 혼자서 만끽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보는 가을 풍광도 좋지만, 나는 이런 길을 걸을 때마다 어린 시절 옛 고향에서의 경험이 행복이었던 것을, 그때는 그것이 행복이었던 것조차 모르고 살았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늘 아늑한 행복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산행을 즐긴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작은 것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으면 그것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하며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 돈이 많지 않아도 항상 넉넉한 부자가 된다.
길가에 떨어진 잣송이 두세 개를 주워 들고 내려와 정달화 동문과 함께 발로 비벼보니 한 주먹 가득 잣 알이 쏟아진다. 생각해보니 다람쥐의 겨울 양식을 내가 빼앗은 것은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3시가 넘어 산림체험학교에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문호리 쪽으로 온 길을 되짚어가다가 “풍년목장가든”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막걸리도 한 사발 곁들이니 부러울 것이 없다. 오늘 산행은 그야말로 가을의 풍성함을 몸과 마음에 가득 담았다. 다음에는 禾也山을 올라 보자는 기약을 하면서 어두워지는 서울행 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