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0 19:02:36
산행기간 : 2008년 5월 21일 – 2008년 5월 23일
동반 산행자 3 명 : 김 명환, 정 달화, 이 휴재
산행 코스 및 거리: 성삼재 - 노고단(3.5 KM) - 임걸령, 피아골 삼거리(2.8 KM) - 노루목(1.7 KM) -
반야봉 왕복(2.0 KM) - 화개재, 삼도봉(1.8 KM) - 토끼봉(1.2 KM) - 명선봉, 연하천(3.0 KM) - 벽소령(3.6 KM) -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세석평전(6.3 KM) - 촛대봉, 연하봉, 장터목(3.4 KM) - 제석봉, 천왕봉(1.7 KM) - 중봉, 써리봉, 치밭목,대원사(10.2 KM) 총 거리 42.2 KM – 산행 시간 24 시간
준비
새로운 장거리 산행을 하기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나이가 젊었을 때나 나이 좀 든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말했듯이 떠날 때 즐거운 것은 항상 돌아올 곳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그 보다는 마음에만 그리고 있던 곳에 직접 가서 볼 것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리라. 2 주 전에 출발 일을 결정한 뒤, 지리산에 대한 부족했던 자료를 찾아보고, 산행지도와 옷가지와 적절한 식량의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마음을 쓰면서도 전날의 실패를 멋있게 만회하고야 말겠다는 부푼 꿈에 출발하는 시간까지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지난 2월 25일 김 명환 교수와 화엄사에서 코재를 거쳐 노고단 대피소까지 갔다가 심한 눈보라 때문에 아쉽게 되돌아 왔었다. 그때 우리는 5 월에 재 도전을 기약 했었고, 이번에는 정 달화 동문이 우리와 함께 떠나기로 한 것이다.
출발
5월 21일 밤 10시 50분에 용산 역을 출발하는 무궁화 호 열차를 타고, 몇 시간 잠을 자고 나니 기차는 구례구 역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3시 23분이다. 구례구역에서 구례읍까지 버스로 갔다가,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려 올라가려면 5시 가까이 되어야 산행을 시작 할 것 같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는 정확히 새벽 4시에 성삼재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성삼재의 하늘은 맑아 별이 총총한데 보름을 갓 지난 음력 4월 18일 아직도 둥근 달이 밝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3.5 KM) – 1시간 소요(04:00-05:00)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평탄한 비포장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는데, 지금 한창 시멘트로 포장을 하는 중이라 군데군데 장비가 세워져 있었다. 나무 숲 사이로 달빛이 훤해서 랜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다. 우리 세 사람 외에도 먼저 도착했던 몇 사람의 등산객들과 같이 걸으면서 인기척을 줄이며 조용조용히 걷고 있었지만, 산새들은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를 알고 새벽잠을 깼던지, 계속 우리를 따라 날아오며 끼익끼익 소리를 지르고, 노고단 대피소를 지날 때는 산토끼 한 마리가 우리의 앞길에서 길을 안내하듯 가다 서서 뒤돌아보고 가다 서서 뒤돌아보기를 반복하다 5 시 가까이 되어 날이 밝아지면서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침 5시 정각 노고단(1507m)에 도착했다. 산행 때마다 늘 건장한 모습을 보이던 김 교수가 먹거리를 준비한 배낭이 너무 무거운 듯 오늘따라 조금은 힘이 든 모양이다. 임걸령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김 교수는 기다리고, 우리 두 사람만 배낭을 길 가에 내려놓고 짙은 안개 속에 노고단을 다녀왔다. 노고단 정상부분은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출입을 하루에 100 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는데, 이른 새벽이어서 인지 관리소의 직원이 나와 있지 않았다.
노고단의 운해와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청류가 지리산 10경중에 제 6 경과 제 10 경 이라는데, 오늘은 노고단의 운해는 볼 수 있지만, 섬진강의 청류는 운해 때문에 보이지가 않는다. 운해가 있으면 청류를 볼 수가 없고 청류를 볼 수 있는 날에는 운해가 없을 테니 언제나 이 둘을 한꺼번에 볼 수가 없겠다. 더구나 3 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천왕 봉의 일출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이 장엄한 산이 자랑하는 10경을 다 보고자 한다면 계절과 날씨에 맞추어 그 얼마나 수없이 오르내려야 할지 모른다. 산이 차지하고 있는 총 면적이 약 472 평방 킬로미터에 둘레가 320 KM 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지리산의 명승을 다 찾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지리산 10 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 1 경 천왕봉의 일출,
제 2 경 반야봉의 낙조,
제 3 경 벽소령의 명월,
제 4 경 세석의 철쭉,
제 5 경 불일 폭포,
제 6 경 노고단의 운해,
제 7 경 피아골의 단풍,
제 8 경 연하 선경,
제 9 경 칠선 계곡,
제 10 경 섬진강의 청류 .
노고단- 피아골 3 거리, 임걸령, 노루목 (5.5 KM) – 2 시간 30 분 소요(05:00-07:30)노고단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시야가 탁 트여 수많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돼지평전을 지나는 길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꽃들이 유난히 많이 피어 있는 평탄한 길이다. 피아골 3 거리에 있는 임걸령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6시 30분에 도착했다. 돼지령과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면서 지리산 제 7 경 피아골의 단풍 대신 신록의 부드러움과 야생화의 향기에 취해보기도 한다.
지리산에서 제일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의 시원한 샘물이 파이프를 통해 콸콸 쏟아지는 샘 가에 앉아 집에서 준비해 간 아침식사를 한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구례구 역전에서 해장국을 먹을까도 생각했었지만,너무 이른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 산행에 부담을 줄 듯해서 여기까지 가벼운 몸으로 왔던 터라 다들 맛있게 조반을 마쳤다. 빈 물병에 식수를 보충한 후, 7시 30분 노루목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로 힘들지 않은 길이다. 이제 반야봉을 다녀 갈 것인지, 그냥 삼도봉으로 직행을 할 것인지? 잠시 망서리다 반야봉을 여러 차레 다녀온 김교수는 천천히 삼도봉으로 직행하기로 하고, 초행인 달화와 나만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지리산종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삼도봉으로 직행을 한다.
노루목-반야봉-화개재-삼도봉-토끼봉(5.0 KM) – 3 시간 소요(07:30-10:30)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조금 오르다 삼도봉쪽으로 가는 3 거리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반야봉으로 오른다. 내려와서 삼도봉으로 갈 때 다시 배낭을 메고 가면 된다. 길가에 배낭을 두어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전혀 손을 대지 않을 것을 서로가 믿는다. 8시 정각에는 1732m 반야봉 정상에 올라설 수가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사방을 휘휘 둘러본다. 반야봉의 표지석을 안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비록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 지리산 제 2 경 반야봉의 낙조는 보지 못하고, 대신 빛나는 태양 아래 흘러가는 구름 위로 섬처럼 솟아있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반야봉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이 흘린 땀보다 더 큰 기쁨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8시 50분 삼도봉 표지석에서 반야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삼도봉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그리고 전라북도 등 삼도의 경계가 겹치는 봉우리다. 다시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으로 가면서 잠시 길가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화개재는 옛날 뱀사골쪽 사람들이 화개장을 가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구하기 위해 물물교환에 필요한 무거운 짐을 지고 이 험하고도 먼 산길을 넘었을 것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의 이 힘든 산행은 거기 비하면 한갓 호사일 뿐이다. 10 시 30 분 토끼봉에 도착 할 때까지 가파른 길을 몇 번을 쉬면서 올라갔다.
토끼봉-연하천-벽소령-세석(12.9 KM) - 8시간 10분 소요(10:30-18:40)
화개재와 토끼봉을 지나 12시에 연하천 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 가볍게 점심을 먹고, 7시간 여의 강행군에 지친 다리도 쉴 겸 30 여분간의 편안한 휴식을 취한 후 벽소령을 향한다. 산행시의 식사는 가능하면 가볍게 하고 대신 초코렛 등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오후 2시 10분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오늘 밤을 이곳에서 쉴 수 있다면 달 뜨는 시간이 조금은 늦을지라도 지리산 제 3 경 벽소령의 명월이 우리를 맞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세석평전 대피소다. 앞으로 3시간 여의 여정이 남아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1시간쯤 쉬어도 된다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피소 건물 그늘에서 편한 자세로 누어서 휴식을 취한 후 3시가 가까이 되어 세석평전을 향해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벽소령에서 보충해간 식수를 다 마셔서 식수 걱정을 하던 차에 선비샘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갑던지? 짐이 조금 무겁더라도 식수는 충분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장거리 산행에서는 항상 고생이다.
덕평봉(1521.9 M), 칠선봉(1558 M), 영신봉(1651.9 M)을 지나 오후 6 시 40 분쯤 오늘의 목적지 세석대피소에 닿을 수 있었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각 대피소에는 빠짐없이 붙어 있는 “시인마을”이라는 작은 간판이 있다. 병술년에 시인 김지하 선생이 쓴 글씨인데 각 대피소마다 국립공원에서 휴게실을 만들어 놓고 등산 인들의 휴식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상당량의 시집을 비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처럼 하루에 15시간씩이나 산행을 한 사람들이 시를 읽을 여유를 갖을 수 있을까? 언제쯤 한 열흘이나 보름의 여정으로 하루 두 세 시간 천천히 산행을 하고 각 대피소마다 들려 시도 읽고 좋은 책도 갖고 다니며 읽는 여유를 갖을까 생각해 본다.
세석평전의 휴식 (5월 22일 18 시 40 분– 5월 23일 05 시 26 분)
세석평전의 대피소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부터 그렇게 무겁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새벽 4시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총 14 시간 40 분만에 파김치처럼 지친 몸으로 세석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 시 40 분쯤 이었다.
지리산의 제 4 경 세석평전의 철쭉 또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철쭉꽃은 낮은 곳에서는 벌써 다 시들어 떨어졌건만 이곳에서는 이제 겨우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6월 초에나 붉은 철쭉의 잔치가 벌어질 모양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북적대는 대피소 취사장에 닿으니 저녁 식사를 준비할 테이블이 없다. 조금 기다리다 식사를 끝마친 사람들이 비워주는 테이블에서 저녁을 준비한다. 대피소에서 한참을 내려가 식수를 받아다가 점심과 마찬가지로 밥과 라면을 끓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몇 잔씩 기울이니 몸 안에서 다시 생기가 돈다.
물이 귀해서 식수를 받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발에 물을 적시는 정도의 세족으로 만족해야 하고 곧바로 잠자리로 들어간다. 김 교수가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편한 잠자리는 걱정이 없다. 저녁 8시 반쯤 일인당 모포 2장씩을 받아 침상 위에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이불 삼아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 9시에 소등을 한다는 조용한 실내 방송과 함께 내일 아침 5시 15분에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하여 출발을 하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훈훈한 실내 온도가 긴 산행으로 지쳐 경직된 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데 효과가 있을 법 한데 너무 덥다는 느낌에 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더워진 몸을 식힐 겸 지리산의 밤 정감을 느껴보고 싶어 밖으로 나오니 남쪽 하늘에 달이 밝다. 벽소령에서의 명월은 보지 못했지만, 모두가 잠들어 있는 산장에서 홀로 세석평전의 달을 감상 할 수 있는 나만의 행운을 만끽한다. 빈 산장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다시 침상에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쉬 깊은 잠에 들지를 못하다 뒤늦게야 잠이 들었다.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촛대봉의 일출을 보기로 했던 약속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나 뿐만 아니라 고단했던 두 사람도 제시간에 일어나지를 못한 것이다. 뒤늦게 일어나 보니 벌써 5시10분.
지리산의 10경 중 이번 우리의 종주코스에서 볼 수 없는 곳이 섬진강의 청류, 피아골의 단풍, 불일폭포, 그리고 칠선계곡 인데, 섬진강의 청류는 날씨에 따라 노고단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雲海 때문에 보지를 못했다.(노고단의 운해와 섬진청류는 하나를 보면 하나를 볼 수 없다는 모순을 갖고 있다) 피아골의 단풍 또한 가을이었더라면 피아골 삼거리를 지났으니 멀리 千山萬紅의 아름다움을 감상 할 수 있었겠지만, 계절 탓에 5월의 신록으로 대신 했다. 불일폭포는 세석평전에서 쌍계사쪽으로 하산 해 대략 10 시간쯤은 내려가서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칠선계곡 또한 천왕봉에서 하산 길을 함양군 마천면 쪽으로 잡았더라면, 10년 동안 환경복원을 위해 통제했던 길을 금년부터 통행을 허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자연의 보고를 볼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산행 중에 생각났던 이야기들
세석평전에서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을 오르면서 우리는 불일폭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불일암의 이야기와 옛날 사람들의 산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고 인공적인 사다리와 계단을 설치해 놓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당시의 선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산행을 했을까 하는 이야기도 하면서,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그냥 지나치게 되는 아쉬움을 옛사람들이 남긴 詩를 이야기 하며 위로를 삼았다.
佛日庵贈因雲釋 (불일암증인운석) 불일암의 인운스님에게 드림
寺在白雲中 (사재백운중) 절은 흰 구름 가운데 있고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흰 구름이라 스님이 쓸지를 않네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손님이 와 비로소 문을 열어보니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노) 온 골짜기의 송화꽃은 이미 쇠어버렸네.
이 시는 1500 년대에 살던 선조시대의 시인이며, 허균의 스승이기도 했던 李達의 詩 이다. 흰 구름 속에 잠겨있는 산사에서 세월을 잊고 사는 스님을 찾아 땀 흘리며 올라간 시인의 마음을 읽으며 못 가본 불일암을 마음에 그려 본다.
望廬山瀑布 (망여산폭포)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며
日照香爐生紫煙 (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長川 (요간폭포괘장천) 멀리서 폭포는 강을 매단 듯
飛流直下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 물줄기 내리 쏟아 길이 삼천자
疑是銀河落九天 (의시은하락구천)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가.
이 시는 너무나 유명한 당 나라의 詩仙 李白이 중국 강남성에 있는 여산을 올라 그 장엄한 폭포를 보면서 쓴 시인데, 나는 각각 다른 곳에서 폭포를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李白이 이 시에서 표현한“강을 매단 듯” 하다거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가” 하는 표현을 생각하곤 하였다. 중국 사람들의 과장법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런 비유를 할 수 있는 것은, 천재적인 시인이 아니고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당시 李白과 쌍벽을 이루던 詩聖 杜甫의 “登高”라는 시는 역시 산에 올라가서 쓴 것인데, 그때의 풍속에 음력 9월 9일에 조상께 제사를 올리고는 높은 산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이 시를 생각하면서 사진으로만 보던 불일폭포를 그냥 지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촛대봉을 지나 삼신봉으로 가던 도중에 길 가에서 만난 고사목이 싱싱한 작은 가지 하나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신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무에 내 느낌을 붙여주고 싶었다.
智異山 枯死木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버틴다는
장수의 화신인 너는
지리산 촛대봉에서 삼신봉으로 가는
호젓한 길목에 서서
비바람 모진 풍상 다 견디며
하마 천년은 그곳을 지켜 왔으리라.
너 아직도
애타는 기다림 있어
차마 죽지를 못하고
가지 한 끝
강한 생명줄 남겨
영원의 눈을 부릅떴는가?
네가 지켜보아 온 기나긴 우리들의 역사와
이 땅에 뿌리 내린
흰 옷 입은 사람들의 핏속에 흐르는
더러는 혼탁한 영혼들이
더 이상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고
세계가 다 우리를 부러워하는 날에
너는 죽음도 기뻐하며
다시 천년을 거기 서 있으라.
2008년 5월 23일 이휴재
세석-장터목-천왕봉(5.1 KM) – 3 시간 50분 소요 (05:30-09:20)
어제는 15시간 가까운 산행으로 세석대피소에 도착 할 때 허리도 아프고 다리는 천근이나 되는 듯 했지만, 7,8 시간의 수면과 휴식이 다시 몸을 가볍게 해주었다.
세석을 출발한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은 5시 55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일출은 보지 못했을 망정 천왕봉 옆으로 빛나는 태양이 장관을 연출한다. 명작에 가까울 만큼 멋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6시 20분 삼신봉에 도착하여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면서 기막히게 아름다운 배경을 하고 사진을 몇 컷 촬영했다. 구름위로 반야봉(1732m)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침 7시 40분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여 조반을 먹고 8 시 30 분 천왕봉을 향해 출발 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들의 옆 식탁에서는 60 대의 할아버지와 40 대의 아버지 10 대의 손자가 함께 등반을 하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 산행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얻는 것은 집 안에서 수백마디 말로 가르치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 숨차게 올라가야 할 험한 길이 있고, 위험한 내리막 길이 있는가 하면 평탄한 숲길도 만난다. 이러한 과정이 수없이 반복 될 수도 있는 것이 등산이다. 여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로 . 智異山 을 풀이하는 깊은 의미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젊은이에게 깨닫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옛날 이곳에서는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각각 자기 지역의 산물들을 짊어지고 지리산을 넘어와 물물교환을 하던 場이 섰다는 장터목이다. 장터목에서 조반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 시간이 8시 30분이다. 제석봉(1808m)을 거쳐 통천문을 지나니 천왕봉(1915m)이 눈앞에 펼쳐진다.
2008년 5월 23일 오전 9시 20분 마침내 우리는 천왕봉 정상에 섰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밝은 태양 아래 흰 구름이 발 밑으로 흐르고, 그 위에 작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데, 우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천왕봉 표지석을 안고 사진을 촬영한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려면 3 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데, 이런 절호의 기회를 우리가 시간을 맞추지 못해 그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각각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내들에게 감격을 전한다. 황홀 그 자체에 정신을 잃고 20 여 분을 머무르다 우리는 천왕봉을 뒤로하고대원사쪽으로 방향을 잡아 하산을 시작한다.
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 대피소-대원사 (10.2 KM) – 6 시간 40 분 소요(09:40-15:40)
우리가 천왕봉 정상에 20 여분 동안 머무르면서도 준비해 간 정상주를 마시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펼쳐지는 사방의 경관에 정신을 잃고 있기도 했었지만, 숭고한 산의 정기에 모두가 경건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원사쪽으로 방향을 잡고 중봉으로 가던 도중에야 그걸 깨닫고 우리는 웃었다. 그제서야 길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비축했던 술과 안주를 얼큰할 정도로 다 마셨다. 중봉(1874m)과 써리봉(1602m)을 지나면서 뒤 돌아본 천왕봉은 구름 속에 그 모습을 감추기를 자주 하였다. 고도 300 미터를 내려온 써리봉에서 바라보니 천왕봉이 아득히 높다.
천왕봉에서 대원사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등산객이 별로 없는 편이다. 12시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 할 때까지 우리가 만난 등산객은 모두 4 명 뿐이다. 코스가 험할 뿐 아니라 거리 또한 만만하지를 않기 때문이리라. 치밭목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낭에 있는 무거운 먹거리는 이제 다 소비해도 된다. 저녁은 하산 후 유평리에서 해결하면 되기 때문에 남은 라면과 식량을 다 소비하고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대원사를 향해 3 시간여의 남은 길을 떠난다.
치밭목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12시 40분쯤 출발 할 때, 이제 힘든 길은 없을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다. 짐은 가벼워 졌지만 어제부터 22 시간 가까운 강행군으로 지친 몸에 느껴지는 배낭의 무개는 줄어든 것 같지 않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는 다시 무겁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다시 산 등성이를 넘고 내려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 하여 새재삼거리를 지나 계곡에 내려오니 오랜만에 물이 있다. 얼마나 반갑던지 우선 세수를 하고 발을 씻으니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다시 산죽이 우거진 능선 길을 내려오는데, 올라오던 젊은 비구니 두 사람이 인사를 하며 새재 삼거리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1 시간 이상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며 대원사는 내려가야 있을 터인데 절이 없는 곳을 왜 가느냐고 물으니 그냥 가고 있단다. 나중에 유평리의 민박집 “무릉도원”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대원사는 비구니들만 있는 절이고 그 절에 젊은 학승들이 공부를 하는데 운동 삼아 새재 삼거리까지 다녀 온다는 것이었다.
오후 2시 30분쯤 유평리의 첫 상점 “무릉도원”에 내려와서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두어 사발씩 마시고 나니 정말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원지까지 가려면 여기서 1 시간을 더 걸어나가 시외버스를 타야 하고, 그 버스를 또 기다려야 하고, 너무 복잡하니 택시를 타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택시를 대원사 앞으로 3시 40분까지 오도록 불렀다. 샤워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며 쉬다가 천천히 아름다운 대원사 계곡 길을 따라 걸어 절에 도착하니 아주머니의 말대로 25분이 걸렸다. 절 구경을 하고 나오니 택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원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있는 절이다. 548년 신라의 진흥왕 9 년에 창건된 절로써 지금은 양산의 석남사와 충남의 수덕사의 견성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주변이 아름다운 경관으로 둘러쌓여 있어 수도하기에 알맞다고는 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비구니들의 수도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3시 40분에 택시를 타고 원지에 도착하니 서울행 버스표가 매진되어서 다시 진주로 가야만 서울을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시외버스로 진주에 와서 고속버스를 탄 것이 오후 6시 30분, 그리고 4 시간 후에 우리는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5월 21일 밤 9시30분에 집을 떠났다가 5월 23일 밤 11시에 아내가 걱정하며 기다리는 집에 돌아왔다. 총 산행 거리 41.2 KM 를 24 시간동안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도 하지만 우리 생애에 또 다시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동안 고생과 기쁨을 같이한 김명환, 정달화 두 동문의 깊은 우의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끝